배웅
잘 다녀오라고 배웅한다. 지난 4월에 이어 6월에 다시 한 차례 미국 람타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옆지기를 배웅한다. 가는 길에 빗줄기 살짝 들고, 빗길에 큰가방 끌며 우산 쓰고 가다가 어디에선가 우산을 잃었단다. 괜찮아. 우산은 잃어도 누군가 그 우산 고맙게 쓸 테니까.
군내버스에 큰가방 싣고 손 흔들어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잠에서 깬 채 마루문에 붙어서 마당을 내다본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으니 아이들 딴에 걱정스러웠나 보다. 얘들아, 그러게 어제 일찍 자고 오늘 일찍 일어났으면 함께 배웅할 수 있었잖니.
옆지기를 배웅한 지 어느새 닷새 흐른다. 닷새 동안 눈하고 코가 어디에 빠졌는지 잘 모르기도 했지만, 눈하고 코가 어디에 붙었는가는 잘 느끼며 지낸다. 둘레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무슨 돈으로 옆지기를 미국까지 보내 공부를 시켜 주느냐고. 나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딱히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할 만하다면 벌써 했을 텐데, 처음부터 ‘물어 볼 만한 이야기’를 물어 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야기를 할 수 없기도 하다. 옆지기 공부하러 떠난 지 닷새째 된 오늘, 비로소 한 마디를 해 본다면, 집안에 아픈 사람 있어 약값 치러야 할 때에 ‘약값 아깝다’고 여기는 집식구 있을까요, 하고 묻고 싶다. 그뿐이다. 마음과 몸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다스리는 배움길 떠나는 사람한테 들려줄 말이란, 느긋하고 사랑스럽게 꿈을 가슴에 담아 기쁘게 돌아오기를 바라요, 하는 한 마디라고 느낀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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