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 책읽기

 


  옆지기가 올들어 두 차례째 미국 나들이를 한다. 옆지기는 마음과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라, 스스로 마음과 몸을 되찾는 공부를 오래도록 했다. 이번 미국 나들이도 옆지기 마음과 몸을 되찾는 길을 도와줄 길잡이와 만나는 ‘배움 나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식구는 아직 시골마을에 ‘집숲’으로 일굴 땅을 사지 못했고, 책을 놓은 도서관(폐교 자리)을 사지 못했다. 다만, 믿는다. 앞으로 언제쯤 될는 지 잘 모르지만, 머잖아 집숲도 숲도서관도 즐겁게 장만해서 오래오래 곱게 지키는 ‘숲으로 이루어진 보금자리와 도서관’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무튼, 옆지기는 바로 이듬날 아침에 먼길을 떠난다. 옆지기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배움삯이랑 비행기표값이랑 이래저래 들 돈을 형한테서 얼마쯤 얻고, 카드빚으로 긁으며, 다음달쯤 들어올 글삯과 근로장려금으로 보태려 한다. 이러고 보니, 옆지기가 미국 나들이를 하는 동안, 시골집에 남는 세 식구 쓸 살림돈이 없다. 지갑을 열면 꼭 칠만칠천 원쯤 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뭐, 잘 지내겠지. 즐겁게 잘 놀고 일하면서 보낼 만하리라. 옆지기는 늦도록 짐을 꾸리고 부엌이며 방이며 불을 껐다 켰다 어수선하게 무언가를 찾고 뒤진다. 이렇게 찾고 뒤지다가, 아마 내가 여러 해 앞서 작은아버지한테서 받은 설날 세뱃돈 그대로 둔 빳빳한 새돈일 텐데, 책상서랍에서 봉투에 든 만 원짜리 도톰한 흰봉투를 보여준다. 나더러 이 돈뭉치 ‘빳빳한 1만 원 종이돈’이라서 안 쓰고 모았느냐고 묻는다. 그래, 맞다. 안 쓰고 숨긴 돈 맞다. 안 쓰고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묵히면, 우리 아이들 앞으로 ‘와, 예전에는 이런 종이돈 있었어요?’ 하고 재미나 할까 싶어 일부러 잊어버리듯 숨긴 돈이다. 옆지기가 이 빳빳한 돈 10만 원(돈뭉치라고 했지만, 꼭 10만 원)을 보여줄 때에 0.1초쯤 생각한다. 어떻게 할까. 0.1초 지난 뒤 말한다. “살림돈 보태야겠네요.” 옆지기 미국 나들이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 “열 곱으로 불려서 오셔요.” 하고 말했는데, 배움삯이랑 비행기표값이랑 이래저래 해서 열 곱 벌이를 불러들여 줄 수 있을까? 불러들여 주겠지. 시골마을 밤개구리 신나게 울어대니, 열 곱 아닌 백 곱이나 천 곱도 불러들여 주리라 믿는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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