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99 : 걸으며 읽는 책

 


  걷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뛰는 사람도, 기는 사람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자가용을 몰 적에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오직 걷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걷는 사람은 걷는 동안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걷다가 가만히 서서 책을 읽으며, 가만히 섰다가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합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를 살피니 조용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책을 쓴 사람과 마음으로 사귀니 싸우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책을 일구고 다루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니 사랑을 합니다.


  일본사람 이마모토 나오 님이 빚은 만화책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1) 3권을 보면, 시골마을 ‘벚나무 꽃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골마을 떠나 도시로 간 잘생긴 젊은이가 연예인이 되고 나서 이녁 고향마을 벚나무 꽃잔치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려줍니다. 이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는 거의 눈여겨보지 않던 시골마을에 몰려듭니다. 주차장이 꽉 찰 뿐 아니라, 자동차가 들어설 길도, 다시 돌아나갈 길조차 없습니다. 이때 어느 할배가 시골 면사무소 일꾼(공무원)한테 말합니다. “하하하, 요즘 관광지는 차로 휙 하고 왔다가 휙 하고 가는 게 대세니까요. 그래도 여긴 산이 많으니 역에서부터 천천히 걷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튼튼하거든요. 그나저나 정말 좋네요. 저 벚나무를 보면서 휘파람새 소리까지 듣는 건 최고의 사치죠. 역에서 걸어오는 내내 유채꽃도 피어 있고요. 지역사람들한테야 별 감흥이 없겠지만(97쪽).”


  만화책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아메나시 면’이라는 곳에는 문화유적지도 대단한 경관도 없다고 해요. 조금 오래된 제법 우람한 벚나무 한 그루 있어요. 면사무소 일꾼이 된 젊은이가 이 벚나무를 도시사람한테 알려 구경하러 오도록 하면, 젊은 기운 거의 사라진 시골마을에 새빛 드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만화책 줄거리를 찬찬히 살핍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줄거리로뿐 아니라, 참말 오늘날 한국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시골사람도 으레 자동차로 움직입니다. 도시사람은 아주 마땅한 듯 자동차로 움직이고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걷지 않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느긋하게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걸어서 볼일 보는 사람 적어요. 자전거를 몰아 봄바람 여름볕 가을빛 겨울눈 골고루 누리는 사람도 적어요.


  걷지 않기 때문에 마을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걷다가 서서 쉬지 않으니 이웃집이 어떤 무늬인지 똑똑히 모릅니다. 걷다가 털썩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며 구름바라기 해바라기 하지 않으니 내 보금자리와 이웃 삶자락이 어떤 숲이요 풀이며 나무로 이루어졌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책하고 사귀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자가용 손잡이를 놓아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전쟁이나 경쟁을 물리쳐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걸어다니는 어른들이 책을 읽습니다. 4346.6.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06-10 19: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듯 싶습니다. ^^

저는 외출할 때마다 바쁠 때는 큰 길로 가지만 그렇지 않을 적이나 돌아오는 길은,
이 골목 저 골목을 천천히 걸어오지요. 저 집에는 어떤 꽃들이 피었고, 또 저 골목의 그 집에는 오동나무의 보라빛 꽃이 탐스럽게 피어 감탄을 자아내고 또 그 파란대문 집의 대문 아래에는 늘 누렁이가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 보고 있는 모습들로 즐거워요...^^

숲노래 2013-06-11 00:24   좋아요 0 | URL
천천히 걸어다닐 때에는
'삶책'이라 하는
아주 재미난 책을
늘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