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14. 마음을 사로잡는 빛깔
―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말

 


  지난해에 못 본 꽃을 올해에 구경합니다. 그러께에 못 본 꽃을 올해에 새롭게 구경합니다. 이제껏 못 본 꽃을 올해에 비로소 구경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죽 보기는 보았지만, 이름을 몰라서 못 알아챈 꽃이 있습니다. 여태 으레 스치기는 했으나, 눈여겨보지 않아서 못 보았다고 생각하는 꽃이 있습니다.


  올해 오월 우리 집 꽃밭에서 피어나는 노란붓꽃 바라봅니다. 마을 곳곳에는 오월 첫머리부터 붓꽃이 피었으나, 우리 집 꽃밭에서는 오월 저물 무렵 드디어 붓꽃이 핍니다. 우리 집 동백나무도 마을 동백나무보다 보름쯤 늦게 꽃송이 환해요. 볕이 살짝 적게 드니까 꽃도 살짝 늦구나 싶은데, 마을 다른 나무와 풀이 꽃을 일찍 피우면 그만큼 꽃이 일찍 집니다. 우리 집 나무와 풀이 꽃을 늦게 피우면, 그만큼 더 오래 한결 느긋하게 꽃을 누려요.


  아이들과 이웃마을로 자전거 타고 나들이를 가다가, 어느 빈집 앞에서 우뚝 섭니다. 아이들 모두 자전거에서 내리라 하고는 빈집으로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이 빈집에는 창포가 무리지어 자라거든요. 집은 빈 지 열 해 가까이 되었다는데, 예전 살던 사람이 심어서 가꾼 창포는 열 해 가까이 스스로 씩씩하게 피고 지면서 씨앗을 맺어요. 우리 식구는 지난해와 그러께 이 빈집에서 창포씨 얻어서 곳곳에 뿌리기만 했지, 아직 창포꽃은 못 보았습니다.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창포꽃 노란 송이송이 잔치마당 마주합니다.


  한참 노란창초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우리 집 노란붓꽃하고 서로 많이 닮았구나 싶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우리 집 꽃하고 견주니, 붓꽃과 창포가 어떻게 다른 줄 알겠습니다. 사진으로만 살필 때에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면서 헤아립니다.


  우리 집 여섯 살짜리 큰아이는 충청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할머니하고 언젠가 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꽃 좋아해요?” “나? 나는 노란 꽃. 벼리는?” “벼리는 빨간 꽃.” 이날 뒤로 여섯 살짜리 큰아이는 길을 가며 노란 꽃을 볼 때마다 말합니다. “아버지, 저기 봐요.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란 꽃이다. 그치?” “아버지, 저기요. 벼리가 좋아하는 빨간 꽃 있네.”


  네 식구 함께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새롭게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 앞서까지 시골들과 시골숲에서 어떤 꽃과 풀이 피고 지며 시들다가 새롭게 피어나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책 많이 읽고 도감 많이 살피며 이야기 많이 들었대서 알 수 없어요. 몸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안다고 할 수 없어요.


  봄부터 여름과 가을 지나 겨울을 나며 가만히 꽃을 생각합니다. 시골들과 시골숲에서 스스로 나고 지는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노란 꽃’이 매우 많아요. 거의 다 노란 꽃이라 할 만해요. 숲에서 나고 지는 나무꽃 말끄러미 쳐다보면, 나무꽃은 ‘푸른 꽃’이 아주 많아요. 이를테면, 느티나무 느티꽃은 오롯이 풀빛입니다. 초피나무 초피꽃도 옹글게 풀빛이에요. 사철나무도 뽕나무도 꽃송이는 풀빛입니다. 투박하고 못생겼다 하는 모과나무 모과열매인데, 모과꽃은 옅게 볼그스름합니다. 분홍이라 말하기에는 분홍하고는 좀 다른 모과꽃빛인데, 옅은 볼그스름한 빛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지 싶어요. 살구꽃과 배꽃과 능금꽃과 복숭아꽃도 그래요. 이 꽃들 바라보며 빛깔말 섣불리 못 씁니다. 앵두꽃과 딸기꽃과 탱자꽃과 찔레꽃을 바라볼 적에도 그렇지요. 앵두꽃 빛깔은 ‘앵두꽃빛’ 아니고는 나타내지 못하겠어요. 찔레꽃 빛깔을 그냥 ‘흰빛’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요. ‘찔레꽃빛’이 가장 걸맞아요.


  배우 김남주 님이 쓴 《김남주의 집》(그책,2010)이라는 책을 읽다가 215쪽에서 “요즘에는 옐로, 레드, 오렌지 등 다양한 원색의 페이턴트 소재는 물론이고” 같은 글월을 만납니다. 책을 살짝 덮습니다. 눈을 조용히 감습니다. 김남주 님은 이녁 아이들 낳아서 돌보는 자리에서도 “옐로, 레드, 오렌지” 같은 빛깔말 살그마니 이야기하겠지요. 김남주 님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옐로, 레드, 오렌지” 같은 낱말을 익숙하게 들을 뿐 아니라, 입으로도 말하겠지요.


  우리 집 아이들이 시골 아이라서 ‘노란 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할머니가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이라서 ‘빨간 꽃’을 말하지 않아요. 노란 꽃송이 아름다우니까 ‘노란 꽃’이라 말합니다. 빨간 꽃송이 어여쁘니까 ‘빨간 꽃’이라 말해요. 나는 찔레꽃이 하얗게 빛나기에 ‘하얀 꽃’이라 말하지만, 하얗다는 낱말만으로는 모자라다 여겨 ‘찔레꽃빛’을 생각합니다. 딸기꽃도 하얀 꽃송이로 빛나는데, 딸기꽃이랑 찔레꽃을 나란히 바라보면 두 흰꽃은 사뭇 다른 흰빛이기에 딸기꽃한테는 ‘딸기꽃빛’이라는 이름을 붙여 봅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주고픈 말을 헤아리면서 ‘노랑, 빨강, 살구빛’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에 앞서 어른인 나 스스로 노란 빛깔 보면서 ‘노랗다’ 하고 말합니다. 살구빛이로구나 싶어 ‘살구빛’이라 말합니다. 파란 빛깔 볼 적에는 ‘파랗다’ 하고 말하며, ‘쪽빛’이라고도 말하며, 때로는 ‘현호색빛’이라고도 말합니다. 어느 날에는 ‘짙은하늘빛’이라고도 말합니다. 하늘빛은 낮과 밤이 달라 ‘낮하늘빛’과 ‘밤하늘빛’이 다르지요. 검정도 그냥 ‘검정’이라 말할 때하고 ‘밤하늘빛’이라 말할 때에는 다릅니다. ‘까마중 열매빛’이라 말할 때에도 또 달라요. 어느 때에는 ‘그림자빛’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삶이 생각을 빚습니다. 생각은 다시 삶을 빚습니다. 삶이 생각을 빛냅니다. 생각은 새삼스레 삶을 빛냅니다. 삶이 흐르면서 말이 하나둘 태어납니다. 생각을 북돋우면서 말을 하나둘 낳습니다.


  ‘예쁜이’라는 낱말은 예쁜 사람 가리키고 마주하면서 저절로 태어납니다. ‘고운이’라는 낱말은 고운 사람 만나고 사귀면서 시나브로 태어납니다. 누군가는 ‘멋진이’ 되고 누군가는 ‘사랑이’ 됩니다. 누군가는 ‘착한이’ 되며 누군가는 ‘꿈이’ 됩니다. 누군가는 ‘바른이’ 될 테고 누군가는 ‘믿음이’ 되겠지요.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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