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안도현 지음, 정문주 그림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시를 사랑하는 시 16

 


어린이는 모두 그냥 놉니다
―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안도현 글,정문주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2007.3.26./8000원

 


  언제였더라 떠올리면 참 옛날 일 같은데,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학생은 나뭇잎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는다고. 나이 들어 둘레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줌마도 나뭇잎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까르르 웃을 수 있다고. 둘레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적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남학생은 나뭇잎 구르는 소리에 웃는다고 하지 않을까. 왜 아저씨는 나뭇잎 구르는 소리에 웃음꽃 피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 개구리가 / 풍덩, / 뛰어들면 / 연못은 팔을 벌리고 / 개구리를 / 덥석, / 안아준다 ..  (개구리)


  아이들은 나뭇잎 구르는 소리를 들어도 웃고, 나뭇잎 바람에 살랑이는 소리를 들어도 웃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옆구리를 살짝 찔러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도, 손을 살포시 잡아도, 까르르 웃습니다.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웃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웃습니다. 덥석 안아 하늘놀이 시켜도 웃지만, 방바닥에 드러누워 붕붕 띄워도 웃습니다. 가위바위보로도 웃음노래 피어납니다. 손가락 조물조물 움직이며 놀아도 웃습니다. 나뭇가지로 인형을 삼고, 풀잎으로 모자를 삼습니다. 자전거를 달려도 웃고, 두 다리로 뛰어도 웃습니다.


  마당에서 맨발로 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웃습니다. 서로 잡기놀이 하듯 후박나무 그늘 빙빙 돌면서 웃습니다. 풀을 꺾고 꽃을 바라봅니다. 구름을 지켜보고 제비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모든 것은 놀이입니다. 아니, 모든 삶은 놀이입니다. 모든 삶은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놀이요, 어떤 놀이가 되든 일이자 삶입니다.


  놀이는 힘들지 않습니다. 놀이는 웃음을 낳습니다.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은 웃음과 사랑을 낳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직업’은 ‘일’이 아닌 ‘돈벌이’로 기울어지면서 웃음도 사랑도 재미도 쫓아냅니다. 오늘날 젊은이는 즐겁게 웃을 일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쥘 직업과 자격증에 휘둘립니다.


.. 10월은 감나무 밑에서 홍시 조심해야 하는 달 / 11월은 엄마가 장롱에서 털장갑 꺼내는 달 / 12월은 눈사람 만들어놓고 발로 한 번 차보는 달 ..  (농촌 아이의 달력)


  아이들이 놀이와 일을 잊으면서 언니한테서 놀이와 일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언니한테서 놀이와 일을 물려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동생한테 놀이와 일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놀지 못하고 일하지 못한 아이들은 꿈을 꾸지 못합니다. 꿈을 꾸지 못하니, 사랑씨앗을 마음밭에 심어 키우지 못합니다. 마음밭에서 사랑이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푸름이가 되고 어른이 되는 동안 ‘놀이’와 ‘일’이 아닌 ‘직업’과 ‘자격증’에 붙들립니다. 꿈을 찾아 보금자리 일구는 씩씩한 젊은이 아닌, 경력과 자격증과 졸업장으로 돈을 더 벌어들이려는 철부지로 살아갑니다.


  어른이 된 젊은이 스스로 놀 줄 모르고 일할 줄 모르는 탓에, 재미나게 웃으며 시원스레 이야기하는 잔치마당과 마을살이 사라집니다. 잔치마당과 마을살이 사라진 곳에 찻길과 고속도로와 공장과 골프장과 발전소와 관광지와 아파트와 쇼핑상가 들이 끝없이 들어섭니다. 즐거운 놀이와 일을 잊은 사람들은 자가용을 장만합니다. 자가용을 몰아 여행을 다니려 합니다. 비행기표를 끊어 나라밖으로 관광을 다니려 합니다. 놀이가 사라진 자리에 돈이 춤춥니다. 놀이가 없어진 자리에 개발과 경제가 판칩니다.


  가만히 보면, 어른들 스스로 놀이를 잊고 일을 잃으면서, 아이들이 놀이를 배우지 못하고 일을 익히지 못해요. 어른들 스스로 삶을 세우지 않기에, 아이들도 삶을 세울 줄 모르면서 점수따기와 대학졸업장에 목을 맵니다. 어른들 스스로 꿈을 꾸지 않는 바람에, 아이들도 꿈을 꾸지 못하는 한편, 사랑도 가뭇없이 스러지고 말아요. 책이 넘치고, 문학하는 사람 많지만, 막상 꿈도 사랑도 노래하지 않아요. 시와 소설과 수필이 쏟아지고, 비평과 평론과 토론 그득하지만, 정작 이야기잔치 하나 없어요.


  아이들은 논술 공부를 하고, 어른들은 논술 교재를 만듭니다. 아이들은 이른 나이에 영어에 길들고, 어른들은 영어 장사를 하며 돈을 거머쥡니다.


.. 옛날에는 / 별들이 밤마다 / 지붕 위로 / 내려와 / 놀았어 // 집집마다 / 지붕이 / 있었거든 ..  (옛날에는)


  어린이는 모두 그냥 놉니다. 놀이책 보고 노는 어린이 없습니다. 놀이 교사나 놀이 강사 있어야 노는 어린이 없습니다. 놀이교재 나와야 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와 웃고 떠들면서 노래하는 어린이입니다. 마음속에서 샘솟아 까르르 웃음짓고 활짝 웃음꽃 피우며 가득 웃음잔치 이루는 어린이입니다.


  어른들이 굳이 말놀이나 말장난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애써 말을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어른들이 꿈꾸며 사랑하는 삶이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이어지는 꿈꾸며 사랑하는 삶 됩니다. 어른들 스스로 꿈꾸는 하루일 때에 아이들 누구나 꿈꾸는 하루를 누립니다. 어른들 모두 사랑하는 이웃 될 때에 아이들은 서로를 따사로이 보살필 줄 아는 어깨동무를 해요.


.. 도화지 위에 / 딱 쌀알만 한 점 한 개만 찍은 아이도 있었다 ..  (배를 그리는 법)


  안도현 님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실천문학사,2007)을 읽습니다. 어른시 쓰던 안도현 님은 어떤 어린이한테 읽히고 싶어 동시를 써서 책 하나 꾸렸을까요. 안도현 님 동시집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어린이가 읽을 만한 이야기꾸러미 될까요.


  어린이마음 되어 쓴 동시인가요. 어린이 눈높이를 살피며 쓴 동시인가요. 어린이마음이란 무엇인가요. 모두 도시로 가는 오늘날 흐름에서, 이제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만 있는데, 시골에 조금 남은 어린이한테 동시란 무엇이고, 죄 도시에서 학교와 공부와 시험에 얽매인 어린이한테 동시란 어떤 값을 할까요.


  그저 즐겁게 노는 어른 되어 즐거운 삶을 동시나 어른시로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쁘장한 말이나 신나는 말놀이 아닌, 어른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하루를 살포시 동시나 어른시로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시도 어른시도 글솜씨나 글재주 아닌 꿈과 사랑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이렇게 치레하거나 저렇게 꾸미기보다, 이렇게 꿈꾸고 저렇게 사랑하는 빛을 글줄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쓰고, 꿈을 쓰며, 사랑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뿐이에요. 아이들은 ‘노는 어른’ 보기 너무 어려워요. 아이들은 ‘놀며 일하는 어른’을 거의 못 만나요. 아이들은 ‘직업에 매여 돈 많이 거머쥐거나 이름값 드높이거나 힘 드센 어른’만 마주하는 요즈음이에요. 시를 쓰는 어른부터 놀 수 있기를 바라요. 시를 쓰고 시를 읽으며 시를 나누는 어른부터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놀 수 있기를 바라요.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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