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반란 삶의 시선 32
안오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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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생각
[시를 말하는 시 11] 안오일, 《화려한 반란》

 


- 책이름 : 화려한 반란
- 글 : 안오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10.8.10.)
- 책값 : 6000원

 


  글을 쓰는 까닭을 누군가 묻는다면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여는 일이란 무엇이냐고 다시금 묻는다면 한 마디로 덧붙일 수 있습니다. 삶을 짓는 하루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짓는 하루를 누리려고 생각을 열 마음이기에 글을 쓴다고 하겠습니다.


.. 흙만 있는 빈 화분에 / 자꾸만 물을 주는 어린 조카 / 언젠가는 싹이 나올 거란다 ..  (물을 준다는 것)


  호미질을 하거나 맨손으로 풀을 뜯을 적에도 생각을 엽니다. 생각을 열며 삶을 짓습니다. 개구리나 멧새 노랫소리를 들을 적에도 생각을 엽니다. 생각을 열면서 삶을 가만히 짓습니다.


  아이들 재우며 자장노래 부를 적에도,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일 적에도, 아이와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놀이 할 적에도, 아이하고 나란히 들마실 다닐 적에도, 언제나 생각을 열면서 삶을 짓습니다. 누구나 온 하루는 생각열기요 삶짓기입니다.


..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고르는데 / 때깔 좋은 것만 골라 담는 봉지들마다 / 상처 난 것 한두 개씩을 덤으로 얹어준다 ..  (상처에 대한 다른 생각)


  모든 하루는 새롭습니다. 어느 하루나 다릅니다. 똑같은 날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백 해를 살거나 천 해를 살거나 만 해를 살더라도, 모든 하루는 다 다르게 찾아오며 다 다르게 누리고 다 다르게 마무리짓습니다. 똑같은 하루가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 정부가 생기고 관료가 나타내며 지식인이 생기면서, 사람들 삶과 삶터를 틀에 맞추려는 움직임이 불거집니다. 몇 시 출근 몇 시 퇴근 같은 틀이 생깁니다. 근무시간 얼마 월급 얼마 같은 틀이 생깁니다. 자격증과 졸업장 같은 틀이 생깁니다. 옷차림과 몸매와 얼굴 같은 틀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찾아들면서 틀에 길들려고 합니다. 날씨도 달도 날도 해도 느끼지 않는 도시에서 똑같은 틀에 스스로를 맞추면서 돈과 숫자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들이 나이 차면 학교에 보내야 하는 줄 여기고, 때 되면 예방주사 놓아야 하는 줄 여기며, 때 되면 바깥밥 사다 먹고 케익 장만하고 뭣뭣 해 주고 선물받고 챙기고 하는 틀에 사로잡힙니다.


.. 나는 / 쇠똥구리 앞에 서면 / 쇠똥구리가 되고 / 나무 앞에 서면 / 나무가 되고 / 바람 앞에 서면 / 바람이 된다 ..  (거울)


  천 해를 살아온 나무는 천 해 동안 날마다 다르게 하루를 짓습니다. 천 해를 거쳐 어느 하루 똑같이 나뭇잎춤 춘 나무는 없습니다. 천 해 동안 나무꽃 똑같은 갯수로 피운 적 없습니다. 나무꽃 피는 자리가 똑같은 적 없습니다.


  모판에 빽빽이 채운 볍씨가 자라 볏모 되어도, 이 볏모 심은 논에서 가을날 거두는 새 나락은 지난해와는 다른 알맹이입니다. 같은 감나무에서 맺는 감알도 지난해와 올해가 다릅니다. 딸기도 능금도 복숭아도 살구도 배도 포도도, 모두 해마다 다른 맛과 멋을 살포시 풍기는 숨결 되어 태어납니다.


  감옥과 학교와 공공기관과 회사는 사람들을 판박이처럼 틀로 쩍 찍어서 똑같은 꼴이 되도록 내몹니다. 사람들은 왜 왼걷기나 오른걷기를 해야 할까요. 시골 논둑길에서 왼걷기나 오른걷기를 해야 할까요. 숲에서, 바다에서, 들에서, 마당에서, 뜰에서, 골짜기에서, 왼걷기나 오른걷기가 얼마나 뜻있거나 값있을까요.


  학교에서는 왜 치마길이 머리길이를 따질까요. 공공기관에서는 왜 으레 양복차림을 할까요. 영업사원 노릇 하려면 목댕기로 목을 꽉 조이며 까만 구두 꿰어야 할까요. 손전화 없거나 인터넷 안 하면 오늘날 사회에서는 ‘사람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텔레비전 안 들이고 텔레비전 안 보는 삶은 ‘현대인 되기를 거스르는’ 꼴이니, 사회에서 내동댕이쳐 주어도 될까요.


.. 하얀 목련, 크게 입을 벌려 / 나무를 명명하고 있다 /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는데 / 꽃이 피니 목련나무인 줄 알겠다 ..  (나무의 세제곱센티미터)


  생각을 열 때에 삶을 짓습니다. 생각을 열 때에 글을 씁니다. 생각을 열 때에 사랑을 나눕니다. 생각을 열 때에 즐겁게 놀고 신나게 일합니다. 생각을 열 때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생각을 열 때에 시를 쓰지요. 생각을 열 때에 시를 써요. 생각을 안 열고 시를 쓰거나, 생각을 안 열었는데 시를 읽는 사람 틀림없이 있어요. 그러나, 시를 쓰거나 읽고픈 사람이라면, 언제나 마음가짐부터 새롭게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생각을 환하게 열며 시를 환하게 쓸 노릇이에요. 생각을 맑게 열며 시를 맑게 읽을 노릇이에요.


  착한 마음 되지 않고는 시를 착하게 못 씁니다. 참다운 마음 되지 않고는 시를 참답게 못 읽습니다. 노래하는 마음일 때에 노래하듯 시를 써요. 춤추는 마음일 때에 춤추듯 시를 읽어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스럽게 시를 씁니다. 꿈꾸는 마음으로 꿈을 꾸듯이 시를 읽습니다. 언제나 삶 그대로 쓰는 시요, 읽는 시입니다. 늘 삶과 같이 써서 나누는 시요, 읽으며 누리는 시입니다.


.. 서로가 멀어질수록 깨달은 건 /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한 몸에서 나왔다는 것 ..  (뿌리와 가지)


  안오일 님 시집 《화려한 반란》(삶이보이는창,2010)을 읽습니다. 무엇이 눈부시고, 무엇이 뒤집기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안오일 님으로서는 눈부시다 여길 수 있고, 뒤집기라 여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눈부시다 여기기에 눈부시다 노래하며 시를 써요. 스스로 뒤집는다고 여기니까 이것저것 뒤집으려고 시를 써요.


  그예 즐겁게 바라보며 눈부신 빛 누리면 됩니다. 그저 신나게 뒤집으면서 삶과 꿈을 일구면 됩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큰도시에서 살든, 두멧시골에서 살든, 생각을 열어 이웃을 넓게 헤아리면 됩니다. 생각을 일구어 삶을 지으면 됩니다. 삶을 지어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씨앗 심으면서 날마다 꿈날개 펄럭이면 됩니다. 4346.6.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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