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책읽기

 


  다른 사람들은 국밥을 즐기면서 맛나게 잘 먹는다. 그러나 나는 국밥을 안 먹는다. 못 먹는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나치게 맵고, 지나치게 자극이 세다. 국을 끓여도 거의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어쩌다 된장 살짝 풀며 때로 간장 조금 탈 뿐인 나로서는, 고춧가루 한 톨만 들어도 혀끝뿐 아니라 살갗이 낱낱이 느낀다. 내가 김치를 못 먹는 까닭은 삭힌 먹을거리라서 못 먹을 뿐 아니라, 고춧가루가 들어가서 못 먹는다. 그런데, 여러 사람 어울리는 자리에서 국밥집에 찾아가면, 으레 머릿수대로 국밥을 먹어야 하는 줄 여긴다. 나는 아무것 안 먹어도 된다. 국밥도 그릇밥도 안 먹어도 된다. 사람들은 자꾸 먹으라 한다. 맛있는데 왜 안 먹느냐 묻는다. 맛있으면 이녁한테 맛있겠지요. 소한테 돼지고기 먹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참새한테 소고기 먹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기한테 세겹살 먹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이한테도 국밥 먹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대단하거나 훌륭하다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읽지 못한다. 덧붙여, 사람들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린 뒤에라야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거의 다 읽었다 하는 책이라 하지만, 굳이 나까지 나서서 읽어야 하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당신은 이 책을 아직 안 읽었나요?’ 하고 물을 까닭 없다. 이를테면, 나는 ‘김훈 소설’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도 아직 한 권조차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권조차 사들이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오직 하나이다. ‘저는 제가 읽을 책만 읽습니다.’


  그렇다고 거꾸로 되묻지 않는다. ‘권정생 할배 동시 읽으셨나요?’ 하고 묻지 않아도 된다. ‘현덕 동화 읽으셨나요?’ 하고 묻지 않아도 된다. ‘권태응 동시 읽으셨나요?’라든지 ‘이원수 동화 읽으셨나요?’ 하고 묻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오면 그때 읽으면 된다. 그리고, 참말 훌륭하거나 거룩한 책이라 하더라도, 삶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삶책’ 읽는 사람이다. 따로 글책을 손에 쥐지 않아도 좋다. 굳이 종이책 펼쳐야 하지 않다.


  열 차례 넘게 나더러 국밥 먹으라 말씀하신 분한테 마지막 한 마디를 한다. “한 번 더 저한테 국밥 먹으라 하시면 저는 이 자리에서 그만 일어나고, 앞으로 이녁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분은 이 말을 듣고도 다섯 차례 더 얘기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앞으로 그분을 다시 만나야 할 까닭이 있을까 하고 곰곰이 곱씹는다. 4346.5.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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