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의 집
김남주 지음 / 그책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34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
― 김남주의 집
 김남주 글
 그책 펴냄,2010.10.20./15000원

 


  일찍 잠든 아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어제는 저녁 일곱 시 즈음 아이들 눕히고 함께 잠들었습니다. 어제 하루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서 바지런히 놀며 많이 힘들어 하는구나 싶어, 다 함께 일찍 불 끄고 일찍 잤어요. 이듬날, 큰아이는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번쩍 뜹니다.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듯합니다. 곁에 누운 아버지가 잠에서 깼는지 안 깼는지도 모르면서 문득 “아버지, 비 와요?” 하고 묻습니다. “그래, 비 온다.” 빗물에 젖으면 안 될 것이 마당에 있는지 헤아립니다. 엊저녁 잠자리 들기 앞서 다 치우기는 했지만, 마당에 내려와서 둘러보고, 집 뒤꼍을 돌아봅니다. 이럭저럭 괜찮구나 싶어 방으로 들어옵니다.


  작은아이가 언제 일어날까 싶지만, 오늘도 두 아이는 하루를 일찌감치 여는 만큼, 오늘 저녁에도 하루를 일찍 닫아야겠지요. 그러니까,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요.


.. 가정을 가꾸고 한 인격체를 성장시키기 위해 엄마들이 하는 모든 일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 나 역시 하루 종일 집에서 육아에 시달린 날에는 남편을 만나면 투정부터 늘어놓게 된다. 사실 아이들과 씨름하는 얘기를 남편 아니면 ..  (11, 44쪽)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 새롭게 놉니다. 아이들은 나날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배웁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어른대로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배워요.


  아이들만 날마다 새롭게 배우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날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골라서 써야 하는가를 새롭게 배우고, 아이들과 누릴 밥과 보금자리와 옷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아름다운가를 새롭게 배웁니다.


  배우지 않는다면 아이도 어른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언제나 배우기에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숫자와 글자를 배우고, 어른들은 숫자와 글자를 어떻게 가르칠 때에 서로 즐거운가를 배웁니다.


  책을 좋아하는 어른이라면, 아이와 함께 어떤 책을 즐길 때에 참으로 좋은가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온 하루 보내면서, 아이 없던 때에 즐기던 책을 똑같이 즐길 수 없다고 배우는 한편, 아이하고 보내는 하루를 쪼개어 읽을 만한 책이란 어떤 책일 때에 가슴 깊이 새록새록 스며드는가 하고 배웁니다. 또한, 아이 없던 때에 읽은 책을 아이와 살아가며 다시 읽으면, 지난날에는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한 다른 대목을 숱하게 짚고 헤아립니다.


.. 내가 독립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집은 반지하 원룸이었다. 유독 습했던 그 집에서 살며 지하의 습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난생 처음 알게 됐다 …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책을 볼 수 있도록, 거실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아동서적이 빼곡한 책장 하나를 들여놓았다 … 늘 바쁜 아빠, 엄마 때문에 라희와 찬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집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  (50, 60, 86쪽)


  빗소리를 듣습니다. 빗물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뿌리기도 합니다. 비와 함께 바람이 찾아들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잎을 간질입니다. 이 비와 바람에 떨어지는 오월 꽃잎 있을 테고, 이 비와 바람을 먹으며 무럭무럭 익을 열매 있을 테지요.


  문득 한 가지 떠올라 여섯 살 큰아이를 부릅니다. 혼자서 씩씩하게 놀던 큰아이가 공책을 가지고 옵니다. “자, 연필도 가져오렴.” 큰아이가 연필 두 자루 찾아옵니다. 공책을 펼쳐 빈 자리 찾습니다. 깍두기 여섯 칸 공책에 ‘빗소리 노란꽃’ 여섯 글자를 적으며 읽습니다. 큰아이는 엎드려서 여섯 글자를 하나하나 읽으며 베낍니다. ‘붉고 달콤 딸기’ 여섯 글자를 적으며 읽습니다. 오늘은 비가 올 듯해서 어제 하루 우리 딸기밭에 가서 들딸기를 꽤 많이 땄습니다. 오늘 먹을 몫까지 신나게 땄어요.


  스스로 글을 쓰기 어려운 큰아이는 아버지가 천천히 반듯하게 적는 글을 눈여겨보며 하나하나 베낍니다. 이번에는 ‘알록달록 치마’ 여섯 글자를 씁니다. 큰아이는 치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 너 치마 좋아하니, ‘치마’라는 글을 혼자서 쓸 줄 알아야 하고, 어디에 ‘치마’라 적힌 글 있으면 스스로 읽을 줄 알아야 해. 다른 낱말보다 ‘치마’는 여러 번 다시 써 봐.


  좋아하는 일은 일이라고 느끼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놀이를 하듯 일을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늘 같아요. 좋아하는 삶을 누릴 때에 활짝 웃습니다. 좋아하는 길을 걸을 때에 홀가분한 몸과 마음 됩니다. 좋아하는 하루라 느끼며 즐겁게 놀거나 일할 때에, 삶이 빛나고 사랑이 샘솟아요.


.. 내가 살아오면서 읽었던 책보다 임신과 출산, 육아 기간 동안 읽었던 책이 훨씬 많을 것이다 … “라희야, 고마워. 너는 엄마의 보석 같은 존재야.” … 아이들이 조금씩 커 가면서 나는 매일 ‘오늘은 어디에 갈까?’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백화점과 미용실이 고작이었지만 점점 미술관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고, 조만간 박물관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  (101, 114, 126쪽)


  배우 김남주 님이 쓴 《김남주의 집》(그책,2010)을 읽습니다. 이 책은 김남주 님이 꾸미기 좋아하는 집과 살림과 옷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배우 김남주라는 이름값만으로는 나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배우 김남주이면서 ‘어머니 김남주’가 되었기에 나올 수 있습니다. 책에서 2/5쯤은 배우 김남주로서 좋아하는 집과 살림과 옷 이야기를 다루지만, 3/5쯤은 ‘어머니 김남주’로서 아이들과 보낸 삶을 돌아본 이야기를 다룹니다.


  나는 집치레나 옷치레를 그닥 즐기지 않기에 《김남주의 집》이라는 책에서 2/5는 눈에 안 들어옵니다. 나는 두 아이와 날마다 복닥복닥 얼크러지며 살아가기에 이 책에서 3/5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다른 배우들도 이렇게 이녁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해서 책으로 낸다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여자 배우뿐 아니라 남자 배우도 이녁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글로 찬찬히 적바림하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배우이건 아니건, 이름값 날리지 않는 여느 사람들도 이녁 아이들과 알콩달콩 빛내는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즐겁게 적바림하면 좋겠구나 싶어요.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는 집집마다 다릅니다. 아이가 모두 다르고, 어버이가 모두 다르거든요.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는 집집마다 재미납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서로서로 날마다 새로운 삶 누리면서 새로운 웃음과 새로운 빛을 누려요. 사랑이란 바로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고, 꿈이란 바로 조그마한 삶터에서 샘솟습니다. 김남주 님이 집치레를 하고 옷치레를 할 수 있는 까닭은, 이녁이 어린 나날부터 사랑스레 살아온 보금자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김남주 님 아이들도 김남주 님을 좋은 어버이로 여기며 하루하루 삶을 새롭게 배우는 나날 이으면, 앞으로 씩씩하고 푸른 마음 아끼는 예쁜 숨결 되겠지요. 4346.5.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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