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고화질] 술 한잔 인생 한입 1 술 한잔 인생 한입 1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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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39


 

꽃 한 송이에서 삶을
― 술 한 잔 인생 한 입 1
 라즈웰 호소키 글·그림,김동욱 옮김
 AK커뮤니테이션즈 펴냄,2011.9.20./5000원

 


  오늘 듣는 아이들 말소리는 어제 듣던 아이들 말소리와 안 같습니다. 오늘 듣는 풀바람 소리는 어제 듣던 풀바람 소리와 안 같습니다. 오월 막바지에 이르는 요즈음 전남 고흥 시골자락 보금자리를 헤아립니다. 요 이레 사이에 마루문 모두 열고 밤잠 이룹니다. 다만, 모기그물은 치지요. 어제는 그예 뒷문도 열어 앞뒤로 바람 드나들도록 합니다. 어느덧 여름이 코앞입니다.


  모기그물까지 열면 집안으로 바깥소리 한결 크게 스며듭니다. 마루문 닫아도 집안으로 바깥소리 제법 잘 들어옵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바깥소리를 그리 잘 막지 못하거든요.


  여름이 코앞이기에 여름이 코앞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겨울에는 겨울 한창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요. 겨울바람에 이은 봄바람, 봄바람에 이은 여름바람, 그리고 이 여름바람 지나 다시 찾아올 가을바람, 바람마다 소리와 맛과 내음과 결이 사뭇 다릅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하루를 엽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고단한 몸 누여 잠을 이룹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아이들 놀이와 웃음 바라봅니다.


- “어? 이건 유채? 아, 이 향기. 그야말로 봄이 왔구나 하는 느낌인데요?” “어쭈, 제법 먹을 줄 아는데?” (30쪽)


  봄이 왔구나 하는 느낌은 바람을 마시며 깨닫습니다. 갑자기 따스한 날씨 찾아오는 겨울 한복판에는 봄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겨울 한복판에도 살짝 따스한 날씨 깃들기도 한다고 느낄 뿐입니다. 봄날 문득 찬바람 분다 해서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봄 한복판에도 곧잘 봄 시샘하듯 찬바람 불기도 하네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떠올립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얼굴 바라보면서, 이 얼굴에 어떤 사랑 깃들었을까 생각합니다. 놀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일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내 얼굴 헤아립니다. 내 얼굴에는 어떤 꿈 깃들었을까 헤아립니다.


  내 손으로 내 얼굴 문지릅니다. 내 손으로 아이들 옷가지 빨래합니다. 내 손으로 내 종아리 주무릅니다. 내 손으로 식구들 밥을 짓습니다. 내 손으로 자전거를 달립니다. 내 손으로 아이들 품에 안으며 마실을 다닙니다.


- “솔직히 말해 봐요, 주인장. 실은 하나 더 숨겨 뒀지? 국물 밑바닥에 있는 게 슬쩍 보이던데?” “저, 그러니까. 이, 이건 못 드립니다! 우리 마누라 갖다 줄 거라서요!” (108쪽)


  시골에서는 군내버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도 잘 지나가는 셈입니다. 그런데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이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 기다려야 합니다. 멍하니 두 시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멍하게 두 시간 보내는 일 없습니다. 한 시간 반 즈음 시골 들길 걷습니다. 한 시간 반 즈음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거나 꽃구경을 합니다. 아이들은 버스를 제때에 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뛰고 그저 달리며 그저 놀면 즐겁습니다.


  도시에서라면 버스 한 대 놓치고 십 분이나 오 분 뒤에 다시 오더라도 갑갑하거나 애가 탈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도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맑은 노랫소리나 밝은 햇살이나 고운 바람이나 싱그러운 풀벌레 이야기 누리지 못하거든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가 물결치는 도시에서는 고작 1분 기다리는 틈조차 고달픕니다.


  사람들은 으레, 아니 도시사람은 으레 시골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골은 시간이 느리게 가지 않아요. 시골에서는 1분도 1초도 한껏 누립니다. 1분도 1초도 한껏 누리며, 이렇게 누리는 하루가 깁니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1분이나 1초를 아끼려고 모두 달음박질입니다. 달리고 겨루고 부딪히고 싸우는 도시예요. 이런 도시에서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요. 시간이 넉넉하거나 느긋한 사람이 있을 수 없어요.


- “사실 제가 워낙 전근을 많이 다녀서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각 지방 술이란 술은 다 마셔 보게 되더군요. 하지만 아직 가 본 적 없는 지방이나 술도 얼마든지 있지요.” (121쪽)


  라즈웰 호소키 님 삶을 보여주는 만화책 《술 한 잔 인생 한 입》(AK커뮤니테이션즈,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라즈웰 호소키 님은 술 한 잔에서 삶 한 자락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럼요. 술 한 잔뿐이겠어요. 꽃 한 송이에서도 삶 한 타래 느껴요. 나무 한 그루에서도 삶 한 꾸러미 누려요. 풀 한 포기에서도, 개구리 노랫소리 한 가락에서도, 제비 한 마리한테서도, 우리는 언제나 삶을 살포시 마주합니다.


  꼭 술을 마셔야 하지 않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골골샅샅 맛난 물줄기 찾으러 마실 다니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골골샅샅 예쁜 꽃송이 만나러 나들이 다니겠지요.


  맛집과 멋집 찾아다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해바라기 누리면서 마실이 됩니다. 들길에 서고 흙을 맨발로 밟으며 나들이가 됩니다. 어디에서나 삶이고, 언제나 삶입니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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