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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늘 2
하시바 마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37
서로 아끼고 살피는
― 나의 오늘 2
하시바 마오 글·그림,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3.3.25./7000원
나는 밤샘을 잘 못합니다. 다문 십 분이나 한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고는 몸이 견디지 못합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견디려 하면 얼마든지 견딜 만할 테지만, 깊은 밤에 굳이 잠을 안 자면서 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밤샘을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내도록 어떤 일을 시킨다면, 이런 일은 참 안 좋구나 하고 느껴요. 어떤 일이라 하더라도, 해가 뜰 때에 함께 일어나서 하고, 해가 질 때에 함께 잠들며 쉬어야 마땅하다고 느껴요.
나는 밤샘을 잘 못하지만, 새벽에 일찍 잘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밤 열한 시나 열두 시에 잠들었어도, 밤 한 시나 두 시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납니다. 새벽 세 시나 네 시에도 멀쩡하게 일어납니다. 새벽 대여섯 시에 잠이 깨는 날은 몸이 무겁다고 느껴요. 하루를 새벽 대여섯 시 사이에 열 때면 몸이 찌뿌둥하면서 고단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도 세 시 언저리에 잠에서 깹니다. 밤이랄는지 새벽이랄는지 알쏭달쏭한 때인데, 퍼뜩 눈을 뜨고는 기지개를 켜는데, 곁에 누운 작은아이가 끙끙 소리 냅니다. 밤오줌 마렵구나. 나지막하게 작은아이를 부릅니다. 보라야, 보라야, 일어날 수 있니, 일어나서 쉬 하자. 그냥 일으키면 싫어하거나 안 일어나지만, 아이 곁에서 조곤조곤 말을 걸며 일으키면 얌전히 일어납니다. 아버지 어깨에 온몸 푹 맡깁니다.
작은아이 안고 마루로 나옵니다. 쪼그려앉습니다. 아이 웃몸은 내 어깨에 기대도록 하고, 두 손으로 아이 바지를 내립니다. 오줌그릇 들고 말합니다. 자, 쉬, 쉬. 엉덩이를 살살 문지릅니다. 조금 뒤, 작은아이는 우렁찬 소리 내며 쉬를 눕니다. 잘했어, 잘했어, 자, 이제 들어가서 다시 자자. 작은아이는 다시 품에 안기고, 자리에 눕히자마자 깊이 곯아떨어집니다.
- “그게 마음에 들어?” “…….” “좋아. 그 하모니카 아카에게 줄게.” (19쪽)
- “아카는 커서 뭐가 될까?” “글쎄, 모르겠어.” “응. 맞아.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모든 일은 될 대로 되게 마련이고, 되는 대로 될 수밖에 없어.” (31쪽)
작은아이 쉬 누이고 이 분쯤 뒤, 큰아이도 일어나서 쉬 마렵다 합니다. 그래, 쉬 누렴. 큰아이는 혼자서 씩씩하게 쉬를 누고는, 혼자서 다시 씩씩하게 잠자리에 눕습니다. 잘 컸다, 많이 컸다, 앞으로도 무럭무럭 더 크렴.
시곗바늘은 천천히 천천히 돌고 돕니다. 세 시를 지나 네 시 되고, 네 시를 지나 다섯 시 됩니다. 바깥은 찬찬히 밝습니다. 새까만 어둠이 시나브로 걷혀 어느덧 환한 빛 집안으로 밝게 스며듭니다.
세 시 언저리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가뭇가뭇 잦아듭니다. 네 시 언저리에는 멧새 노랫소리 하나둘 늘어납니다. 다섯 시 언저리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아주 가라앉고, 멧새 노랫소리 온 집과 마을 감돕니다.
나는 이 노랫소리 듣는 새벽이 아주 즐겁습니다. 하루를 개구리 노랫소리 잠기는 결과 멧새 노랫소리 새로 흐르는 무늬로 맞아들이며 열 적에, 마음 뿌듯하고 홀가분합니다. 이 좋은 결과 무늬를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붕붕거리는 소리 아니라,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 들으며 하루를 닫고 하루를 연다면, 사람들 마음자리에 고운 이야기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 ‘그때 하모니카를 받은 것보다, 늘 무뚝뚝해서 무섭기만 했던 이모의 미소가 왠지 기쁘게 느껴졌다.’ (20쪽)
- ‘여기 온 목적은 하나였다. 이 사람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다야.’ (38쪽)
방바닥에 드러누워 마당을 내다봅니다. 처마가 보이고, 후박나무가 보입니다. 처마는 나무로 이루어졌고, 마당에서는 후박나무 씩씩하게 자랍니다. 저 후박나무 한 그루로도 그늘이 예쁘게 지고, 저 후박나무 한 그루로도 작은 숲 이루어진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 오른쪽에는 동백나무 있고 장미나무 있습니다. 왼쪽에는 초피나무 세 그루 있습니다. 초피나무는 맨 처음에 한 그루만 있었을 텐데, 한 그루 있던 초피나무에서 열매 떨어져 두 그루 되었고, 다시 세 그루 됩니다. 이제 네 그루째 올라오려는 낌새 보이고, 새로 떨어지는 씨앗 그야말로 씩씩하게 돋으려 합니다. 그래, 씨앗 떨구어 자라는 어린 초피나무는 집 곳곳에 옮겨 볼까. 마을 곳곳에 슬쩍 옮겨 볼까.
초피나무 열매 맺으면 훑어서 이웃한테 선물하기도 하지만, 매달린 채 그냥 두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을 멧새들이 초피 열매 곧잘 따서 먹거든요. 조그마한 새들은 초피 열매도 후박 열매도 맛나게 먹습니다. 때로는 동백꽃 쪽쪽 쪼면서 꽃가루나 꽃술을 파먹기도 합니다. 풀이든 나무이든 사람만 헤아리며 심거나 돌볼 수 없어요. 풀벌레와 멧새를 함께 헤아리면서 살아가요. 나와 집식구 누리는 풀과 나무 있고, 들과 숲에서 함께 자라는 숨결들 누리는 풀과 나무가 있어요.
우리 집 텃밭에서 자라는 갓과 유채는 노란꽃 피워 벌과 나비를 부릅니다. 벌과 나비는 우리 집 갓꽃과 유채꽃에 날마다 수없이 찾아들며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뽑을 때에는 뽑고 벨 때에는 베지만, 한동안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참말, 벌과 나비로서는, 숱한 풀벌레로서는, 모든 풀 낱낱이 베거나 뿌리를 뽑거나 약을 쳐서 없애면, 그예 숨이 막혀 죽어요. 그리고, 사람도 풀 없는 데에서는 숨이 막히지 않을까요.
- ‘요리. 빨래. 청소. 학교. 엄마가 집을 나간 지 3년.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동안 엄마의 연락은 한 번도 없었다.’ (63쪽)
- ‘내가 뭘 하는 걸까? 학교도 빠지고, 대낮에 이런 곳에서 춤을 추다니. 하지만, 이 느낌은 뭘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아.’ (68∼69쪽)
- ‘와쿠에게는 내가 나로 있는 것을 용서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와쿠랑 있으면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74∼75쪽)
사람 손길 안 닿는 들과 숲과 바다와 멧골과 냇물이 차츰 늘어나야지 싶습니다. 꼭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어야 하지는 않아요. 보호구역 같은 이름, 이를테면 상수원 보호구역 같은 이름이 없어도 돼요. 그저, 사람 손길과 발길 안 닿는 들이 있어야 하고, 뻘이 있어야 하며, 숲이 있어야 해요. 숲짐승끼리 살아가고, 숲벌레끼리 살아갈 숲이 있어야 해요. 물고기끼리 살아가고, 개똥벌레와 다슬기끼리 살아갈 냇물이 있어야 해요. 멧새 노래하고 온갖 나무 어우러질 멧골 있어야 해요.
서로 아끼고 살피는 보금자리가 있어야지요. 포근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삶터가 있어야지요. 사랑스럽고 믿음직하며 넉넉한 마을이 있어야지요. 사람도 벌레도 새도 짐승도 개구리도 나비도,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지구별이 되어야지요.
- ‘그럼 (새) 루루가 죽은 건 내 탓인가? 그럴지도 몰라. 왜냐하면, 눈치채 줄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걸.’ (109쪽)
- ‘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나 자신뿐.’(145쪽)
-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 부디 좋은 날이 되기를.’ (183쪽)
하시바 마오 님 만화책 《나의 오늘》(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태어난 이야기’ 모르는 채 열 몇 살 푸름이로 지낸 아이가 ‘저를 낳은 어머니’이지만, 이제껏 ‘이모’라고만 알던, 어쩐지 자꾸 끌리며 함께 있고픈 사람한테 찾아가서 방학 내내 보내는 줄거리가 흐르는 만화책 《나의 오늘》 둘째 권을 읽습니다.
얽히거나 설킨 삶자락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낳은 아이를 스스로 보살피며 지낼 수 없었기에 아픈 삶이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스스로 낳지 않은 아이를 보살피며 지냈기에 힘들었다거나 더 보람찬 삶이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모두 삶입니다. 그예 모두 사랑입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생각밭에 따라 삶을 새로 일굽니다. 마음결에 맞추어 삶을 품습니다. 생각씨앗 심는 손길로 삶을 새삼스레 가꿉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루에 한 차례 꼭 일 분이나 십 분쯤이라도, 풀밭에 쪼그려앉아 풀잎 어루만지면서 아주 조그마한 풀꽃송이 들여다볼 수 있기를 빌어요. 지율 스님은 도룡뇽 한 마리를 말하며 숲과 멧골 지킬 때에 우리 모두를 지킨다고 밝혔는데, 들풀 한 포기와 들꽃 한 송이를 말하며 시골과 도시 모두 아우르는 지구별 지키는 길 밝힐 수 있어요. 서로 아낄 때에 서로 살지요. 서로 지킬 때에 서로 사랑하지요. 4346.5.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