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4.5.
 : 이웃마을 봄마실

 


- 봄바람 따사롭게 부는 한낮에 자전거를 끌고 아이들과 마실을 나온다. 빨래를 마치고, 아이들 밥 배불리 먹인 이즈음, 오늘은 어디 좀 멀리 나갔다 와 볼까 생각한다. 어디로 갈는지 생각은 안 했으나, 아무튼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놓는다. 수레 달린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자마자 작은아이는 수레에 얼른 타려 한다. 그래, 네 누나 머리띠도 하고 수레에 앉으렴. 대문을 연다.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자전거 잡아 준다. 대문을 닫는다. 집 앞으로는 왼쪽이 안 보이는 내리막이라, 아래까지는 자전거를 끌고 내려간다. 마을 앞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는 거의 없지만 설마 모를 노릇이니, 10미터 즈음 늘 걸어서 움직인 뒤 둘레를 살핀다.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운다. 자, 이제 달려 볼까.

 

- 이웃 신기마을과 원산마을 앞을 지난다. 동호덕마을과 서호덕마을 옆을 스친다. 도화면 소재지에 닿는다. 가게에 살짝 들렀다가 자전거머리를 돌린다. 오늘은 마복산 언저리로 가 볼까 싶다.

 

- 도화면 보건소 앞에서 청룡마을 쪽으로 들어서는 오르막에 선다.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는다. 이렇게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으면서 훅훅 용을 쓰면,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힘들어요?” “응.” 말할 기운 없단다. 아니, 말할 숨을 고르기 힘들단다. “괜찮아. 벼리가 노래 불러 주면 돼.”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버지 기운 내라며 노래를 부른다. “영차, 영차.” 하는 말도 해 준다. 작은아이는 어느새 잠들었다.

 

- 오르막을 다 넘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오리나무를 바라본다. 오리나무 새잎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똑 따서 씹는다. 처음에는 보드랍고 물기 있더니, 끝맛이 아주 쓰다. 졸던 사람은 잠이 확 깰 만큼 쓰다.

 

- 청룡마을 옆을 지난다. 미후못을 지나고 미후마을 옆을 지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심심하다고 한다. 그래, 자전거를 오래 탔니? 그럼 좀 쉬어 보자. 자전거를 세우고 큰아이더러 내리라 한다. 큰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전거 앞쪽으로 달린다. 달리고 싶었구나. 그러면, 너도 샛자전거에 앉아서 발판을 구르면 돼. 넌 샛자전거에 가만히 서기만 하잖니. 너도 발판을 굴러 보렴. 그러면 아버지도 더 힘을 받아 잘 달릴 수 있어.

 

- 오늘은 더 멀리까지 가지 말아야겠다 싶다. 미후마을에서 장촌마을까지 자전거를 끌며 걷는다. 장촌마을에 집 고치며 지낸다는 분한테 전화를 건다. 빈집에 잔뜩 있던 쓰레기를 싣고 읍내 쓰레기처리장으로 나가셨단다. 돌아오려면 한참 있어야 한단다. 그러면 나중에 뵙기로 해야지. 장촌마을 어귀에서 작은아이가 잠을 깬다. 꽃나무 그득한 장촌마을 어귀에서 작은아이를 수레에서 내린다. 두 아이가 꽃길을 달리면서 논다. 그래, 여기에서 한 시간 즈음 가볍게 뛰고 달리면서 놀자. 그러고서 집으로 돌아가자.

 

- 물을 대는 논 둘레에서 놀고, 논에 물을 보내는 호스 앞에서 물놀이도 한다. 작은아이 신을 더 챙기지 않았는데 신이 다 젖는다. 안 되겠군. 너희 그냥 맨발로 놀아라. 꽃잎을 따서 논다. 꽃잎을 물에 띄우며 논다.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꽃잎을 갖고 싶단다. 누나가 꽃잎을 따서 작은아이한테 건넨다. 보라야, 너희 누나처럼 이렇게 예쁘게 꽃잎 따서 건네는 누나가 또 있을까. 예쁘고 좋은 누나이지?

 

-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인다. 더 뛰면서 놀게 한다.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된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듯하다. 자, 아이들아, 집으로 가 볼까.

 

- 미후마을부터 청룡마을까지는 오르막. 처음에 만나는 오르막은 괜찮다. 처음에는 다리힘이 있으니 괜찮고, 이 다음에는 내리막 되니 홀가분하다. 도화면 보건소에서 도화고등학교 쪽으로 꺾는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공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때인 듯하다. 군내버스 둘레로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렸다. 너희들은 줄 서서 타는 줄도 모르니. 학교나 집에서 줄 서서 타라고 안 배우니. 자전거가 버스 왼쪽으로 크게 돌아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아이들이 자전거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찻길에서 옆도 안 보고 그냥 뛰어든다. 자전거를 재빨리 멈춘다. 끼익 소리가 나니 그제서야 자전거 쪽을 쳐다본다. 참 철이 없구나. 찻길에서건 골목길에서건 사람이 먼저이기는 한데, 너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일은 안 좋단다. 버스 타는 모습이고, 찻길에서 옆도 안 보고 그냥 건너는 모습이고,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까지 되는 동안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리송하다.

 

- 다시 동호덕마을 옆을 스칠 때에, 찻길 말고 논둑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동호덕마을부터 논둑길을 달려 신기마을에 이를 무렵, 아까 그 군내버스 이제서야 우리 옆으로 지나간다. 고등학교 아이들 태우는 데에 그만큼 시간 많이 걸렸나 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디까지 군내버스 타고 가려나. 꽤 먼 데에서 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니나. 자전거를 타고 집과 학교 사이 오가는 아이는 몇쯤 될까. 아이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면서, 군내버스 타고 집과 학교 사이 오가는 동안 ‘이웃마을 모습’ 얼마나 느끼거나 살피면서 하루를 누릴까. 봄빛 어여쁜 고흥 시골마을인 줄 군내버스에서 창밖 바라보며 헤아리려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