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된 김일체육관
[고흥 길타래 10] 고흥 찾아온 손님들은 무엇을 볼까
따사로운 봄햇살 내리쬐는 오월 십구일 낮, 서울서 고흥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녹동항을 돌아보고, 소록다리와 거금다리를 건넙니다. 금산면 거금섬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면소재지에 커다랗게 선 김일체육관을 들르기로 합니다. 지난날 ‘박치기왕 김일’을 떠올리는 서울 손님들은 레슬링선수 김일 님 기리는 체육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 합니다.
지난해 태풍 때 날아간 지붕은 새로운 빛깔로 곱게 손질했습니다. 돌로 빚은 김일 선수 기념물도 새롭게 꾸몄습니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빨간 관광버스 한 대 있습니다. 서울 손님들과 함께 체육관으로 들어섭니다. 체육관 안쪽 마룻바닥 경기장에 그물 하나 걸리고, 이곳에서 작은 공으로 족구 하는 아저씨들 보입니다. 그런데, 김일체육관에서 족구를 즐기는 아저씨들은 소주병을 들고 놉니다. 관리하는 사람 따로 없어, 체육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소주를 마시면서 족구를 할까요. 관광버스 타고 김일체육관으로 찾아온 분들은 김일 선수를 기리려고 소주 한 잔 올리려 했다가 그만 당신들 술잔치를 체육관에서 하는 셈일까요.
소주 마시며 족구를 하던 아저씨들은 사진기를 들고 체육관으로 들어온 우리들을 보고는 이내 술병을 치우고 족구를 그만두며 자리를 뜹니다. 김일체육관 술잔치를 굳이 사진으로 찍을 생각이 없기에 아저씨들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체육관 안쪽에 큼지막하게 붙은 김일 선수 사진을 보고 밖으로 나오려다가, ‘김일 선수 박물관’은 아직 ‘유품 정리가 안 되어 준비한다’는 알림말만 붙습니다.지난해에도 ‘준비중’이라 했는데, 올해에도 ‘준비중’이면 이듬해에는 ‘준비 끝’ 될까요. 아니면, 다음 군수 선거 때에는 ‘준비 끝’ 되려나요.
김일체육관 나들이를 온 서울 손님들은 다리쉼을 할 자리를 못 찾다가 길게 펼쳐진 어느 돌무더기에 앉습니다. 체육관 앞마당 널찍하게 마련해서 예쁘기는 하지만, 정작 다리쉼을 할 만한 걸상 하나 없습니다. 계단에 앉아도 되고, 길바닥에 앉아도 되겠지요. 풀밭에 앉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걸상이 하나도 없는 김일체육관 앞마당은 어쩐지 쓸쓸합니다.
그런데, 서울 손님들 앉은 돌 뒤를 문득 보니 ‘기념식수’라는 글월 보입니다. 김일체육관 앞마당에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 있는데, 이 나무들 심은 분들 이름 적은 듯합니다. 그런데, 왜 거님길 자리에 ‘기념식수 기념비’를 나란히 세웠을까요. 걸어가면서 들여다보고 꾸벅 절하며 인사하라는 뜻일까요.
변변한 걸상도, 나무그늘도 없는 김일체육관 앞마당에는 ‘기념식수 기념돌 무더기’에다가 ‘체육관 짓는 데에 돈 보탠 사람들 이름 새긴 커다란 돌’이 아주 크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박치기왕 김일’을 느낄 만한 어느 것도 없는 김일체육관에서 술잔치 벌이는 관광버스 아저씨들하고 섞이고 싶지 않아, 서울 손님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기로 합니다. 5월 19일 한낮, 금산면소재지 둘레에 문을 연 밥집 잘 안 보여, 다시 거금다리 건너고 소록다리 건너 녹동항으로 갑니다. 자동차 몰아 여섯 시간 서울서 달려온 손님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면 좋을는지 참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고흥에 어떤 기념관이나 박물관이나 전시장 있는지 참으로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관광이나 문화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만, 김일체육관 짓는 데에 들인 돈과 품을 헤아린다면, 애써 돈들여 무엇 하나 만든다 할 적에,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아끼며 어떻게 사랑할 때에, 고흥 문화와 삶이 빛날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떤 ‘새로운 소식’ 있지 않고는, 앞으로 고흥 찾아온 손님들하고 김일체육관에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