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는 책 눕는 책
책꽂이 가득 차면, 책은 책꽂이에 반듯하게 선다. 책꽂이 살짝 헐렁하면 책은 기우뚱하게 선다. 책은 책꽂이에 누운 채 있을 수 있고, 책은 바닥에 찬찬히 놓여 어느덧 책탑 이룰 수 있다. 책은 다 다른 크기로 태어나 다 다른 모양새로 책꽂이에 꽂히는데, 옆에 어떤 책이 나란히 꽂힐는지 책 스스로도 모른다. 오직 책임자 마음에 달린 일이라 할 텐데, 책 하나 장만한 이가 어떤 삶 일구면서 어떤 길 걸어가는가에 따라 책꼴 달라지고 책꽂이 모양 바뀐다.
철학책 곁에 만화책 놓여도 예쁘다. 그림책 곁에 화집이나 사진책 놓여도 아름답다. 동화책과 시집 나란히 놓여도 곱다. 국어사전과 소설책 하나 놓여도 아리땁다. 자전거로 온누리 다닌 이야기 깃든 책하고 할머니 옛이야기 풀어놓은 책이 나란히 놓여도 어여쁘다.
이렇게만 꽂으란 법이 없다. 십진분류법대로 책을 꽂아야 하지 않아. 도서관에서 책을 꽂듯 여느 살림 책을 꽂을 까닭이 없어. 마음 가는 대로 꽂을 뿐이다. 마음 보드랍게 보듬는 결을 살려 꽂으면 즐겁다. 날마다 조금씩 마음밥 살찌우는 흐름을 돌아보면서 한 권 두 권 마주하면서 책꽂이 한 칸 열두 달에 걸쳐 채워도 기뻐.
손바닥으로 살포시 안을 만한 책이랑 두툼하고 무거워 두 팔로 겨우 안을 만한 책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 그만 뒤틀리거나 다치고 만 책하고 갓 태어난 책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 어느 책이든 알맹이를 읽는다. 어느 책이든 속살을 읽는다. 어느 책이든 껍데기를 읽지 않는다. 어느 책이든 겉모습을 읽지 않는다.
겉장 떨어진 책이라 하더라도 알맹이는 즐겁게 읽는다. 누군가 김치국물이나 라면국물 튀긴 자국 있더라도 속살은 기쁘게 읽는다. 아이들이 놀다가 책 한 귀퉁이 복 찢거나 뜯었어도 책에 깃든 이야기는 사랑스레 읽는다.
얼굴 잘생긴 사람이 마음도 예쁠 수 있지만, 옷차림 눈부신 사람이 생각도 빛날 수 있지만, 책도 사람도 모두모두 겉차림으로만 헤아리지 않는다. 오직 마음으로 헤아린다. 오직 속내, 속마음, 속사랑, 속생각으로 사귀고 만나며 어깨동무한다. 마음 따스한 사람하고 있을 때에 따스하다. 생각 사랑스러운 사람하고 있을 적에 사랑스럽다. 꿈 넓고 깊은 사람과 이야기꽃 피울 때에 꿈꽃 길어올린다. 삶을 읽듯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듯이 삶을 읽는다. 4346.5.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