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남주, 애 엄마 김남주
배우 김남주라는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나는 1991년부터 텔레비전을 안 보며 살았고, 1994년부터 텔레비전 없는 집에서 살았다. 얼핏설핏 다른 사람들 수다 사이에 섞인 이름으로 ‘김남주’를 듣기는 했지만, 나한테 익숙한 ‘김남주’란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자라며 시를 깨달아 시골 흙일꾼 마음으로 싯노래 읊은 투박한 아저씨이다.
배우 김남주라는 분이 어떤 배우하고 만나 혼인을 했는지, 또 아이를 낳았는지, 이런 말 저런 얘기 들은 일이 없고, 내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런데 책방마실을 하다가 아주 뜻밖에 ‘애 엄마’인 김남주 님을 만난다. 배우 김남주 님이 내놓은 책은 《김남주의 집》이지만, 나는 이 책을 책방에서 만나며 ‘어, 육아일기 책이네.’ 하고 느꼈다.
책을 사 놓고 두 달 남짓 묵힌다. 애써 장만한 책을 두 달씩 묵히고서 읽는 까닭을 ‘애 엄마’인 사람이라면 쉬 알리라 느낀다. 아무리 반갑고 즐겁고 고맙고 신나는 책이라 하더라도 그날 그때 손에 못 쥐기 일쑤이다. 아이들 밥 차려 주고 옷 갈아입히고 몸 씻기고 함께 놀고 글씨쓰기 이끌고 뭣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책을 잊거나 잃는다. 사 놓은 책도 어디에 처박혔는지 까마득하다. 누군가 기쁘게 선물한 책조차 어디에 틀어박혔는지 아리송하다. 이러구러 《김남주의 집》을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지 두 달 지나서야 찾아내어 찬찬히 읽는다. 늦은저녁까지 잠 안 자고 노는 아이들 목소리 뒤로 하고 부엌에 앉아서 2/3쯤 내처 읽는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사이사이 무슨무슨 살림살이 장만하는 얘기 나오는데, 물건 장만하는 얘기는 설렁설렁 훑고 지나간다. 대문 갈고 샹들리에 체코서 사오고 하는 얘기란 그저 김남주 한 사람 취향인걸. 이녁이 돈이 있어서 대문 갈고 샹들리에 체코서 사온다거나, 또 침대를 프랑스에서 맞춰서 들이고 하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그저 취향일 뿐 아니라, 아무 물건이나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느낀다. 갓 배우로 일할 적에 반지하 축축하고 눅눅한 집이 얼마나 안 좋은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잖은가. 그래서 마당 있고 빛 잘 드는 집에서 살아가고픈 꿈을 품으며 푼푼이 돈을 그러모았다잖은가. 쓸 만한 데에 돈을 쓰고, 꾸밀 만한 집을 꾸미는 삶이라고 느낀다.
책 사이사이 아이들 방 꾸민 모습이 사진 몇 장으로 드러난다. 난 이 사진들 가운데 ‘예쁜 손글씨’로 알록달록 종이에 한글 적어서 한글놀이 함께 하는 모습 살며시 드러나는 사진이 참 좋다. 나도 아이들과 살아가며 느끼는데, 책방에서 한글교본 사서 가르치기보다는, 어버이 스스로 글씨를 정갈하게 써서 한 글자 두 글자 가르칠 적이 훨씬 낫고 즐거우며 재미있다. 어버이부터 글씨를 정갈하게 쓸 때에 아이들도 글씨를 정갈하게 쓴다. 어버이부터 한글을 또박또박 예쁘게 써야 아이들도 한글 처음 익히면서 찬찬히 또박또박 온힘 기울여 쓴다.
배우 김남주 님 책 《김남주의 집》을 다 읽고 나면 느낌글을 하나 쓸 생각이지만, 배우 김남주 님이 ‘집’을 말하는 책을 내놓은 만큼, 이 다음에는 ‘아이’와 ‘삶’을 말하는 책도 한 권 내놓으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아이들과 누리는 이야기를 더 조곤조곤 수다스레 들려준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아이들 옷가지나 배냇저고리 장만하려고 백화점 들렀을 적에 다른 사람 눈길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처럼, 아이들 사진이건 이야기이건, 배우 김남주 님 스스로 즐거운 결 살피면 될 노릇이다. 아이들은 씩씩하고 슬기롭게 살아가리라 믿고 생각하면 된다. 글을 쓰면, 미처 말로는 드러내지 못한 깊은 사랑을 새록새록 적바림할 수 있다.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