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책읽기
은행잎이 돋는다. 시골에는 은행나무 드물어 은행잎 돋는 모습을 구경하기는 퍽 힘든데, 도시에는 찻길 한켠에 으레 은행나무 심으니, 도시에서는 조금만 눈여겨보면 늦봄으로 접어든 이즈막에 은행잎 여린 잎사귀 푸르게 빛나는 물결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에 국민학교에서 ‘도시에 은행나무 심는 까닭’을 배웠다. 은행나무는 공해나 매연을 잘 견디고, 공해나 매연을 잘 걸러낸대서, 도시에서 으레 심는다고 어른들이 가르쳤다. 이런 말을 듣고 배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언젠가 한 번 담임 교사한테 여쭈기도 했으리라 느낀다. 아마, 이렇게 여쭈었겠지. “선생님, 그러면 은행나무 많이 심은 곳은 사람이 살기 나쁜 공해로 더러운 곳이네요?” 담임 교사는 이렇게 여쭙는 개구쟁이 꼬마 머리통에 꿀밤을 먹였겠지.
어느 때부터인가 도시에서 은행나무 사라지고 벚나무 늘어난다. 은행나무 사라지는 까닭이 ‘도시에서 공해와 매연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다. 은행나무 은행꽃 알아보는 사람 없으니, 벚나무 벚꽃을 구경시켜서 ‘도시가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러우며 슬픈 공해와 매연으로 얼룩졌는가를 감추려’ 할 뿐이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은행나무를 거의 못 보지만, 우리 집 한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도시 아닌 시골이라지만, 자동차 거의 안 드나드는 시골이라지만, 우리 집 한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시골마을 이웃집들은 비닐이나 비료푸대나 농약병이나 가리지 않고 날마다 태운다. 오늘은 이 집에서 태우면 이듬날은 저 집에서 모레에는 그 집에서 태운다. 어느 시골집이건 흙과 바람과 물을 헤아리지 않고 아무 쓰레기나 아무렇게나 태운다. 이런 시골에서 시골내음 마시며 즐겁게 살아가자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도 은행나무 두 그루쯤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손을 뻗어 은행잎 만진다. 살살 쓰다듬는다. 얘들아, 씩씩하게 자라고 튼튼하게 크렴. 푸른 잎사귀처럼 푸른 꽃망울 한껏 터뜨려, 사람들한테 푸른 숨결 곱게 나누어 주렴.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