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텔레비전 새소식에서 ‘사재기 출판사’를 다룬 뒤, 사재기 짓을 저질렀던 출판사는 불이 활활 피어나는구나 싶다. 그런데, 앞으로 석 달쯤 지난 뒤, 또는 한 해가 지난 뒤, 다섯 해나 열 해가 지난 뒤에는 어떠할까? 그때에는 이러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가 퍼질 만할까?


  사재기 짓 저지른 출판사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책을 집어넣어 ‘책 어마어마하게 팔아서 돈 많이 벌고픈 생각’을 했겠지. 그러면, 인터넷책방에서 ‘반값 후려치기’로 책을 판다거나 ‘적립금 잔뜩 주는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해서 매출을 높여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어서게 하는 일은 어떤 이름으로 가리켜야 옳을까.


  책을 책으로서 섬기지 못한다. 출판사에서 책에 붙인 값 그대로 팔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책을 책답게 섬긴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출판사로서는 가장 알맞춤한 값을 붙여서 책을 팔 노릇이고, 이 알맞춤한 값으로 책을 팔아 돈을 벌면, 앞으로 새로운 다른 책을 즐겁게 펴내어 사람들한테 좋은 이야기 들려주는 책밭 구실이 되겠지. ‘어차피 인터넷책방에서 에누리할 값 생각해서 책값 비싸게 붙인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자. 이런 출판사도 많지만, 이렇게 안 하는 출판사도 제법 많다.


  그런데 왜 사재기를 할까. 그런데 왜 사재기까지 하려 할까. 그런데 사재기 아니고서는 책을 팔 길이 없나.


  사재기를 해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건드리면, 사람들은 거짓놀음에 휘둘리는 꼴 아닌가. ‘사재기를 했다지만, 좋은 책 아닙니까?’ 하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사재기를 안 한 좋은 책’은 뭐가 되는 꼴인가. ‘사재기를 하면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손에 처음부터 다가설 길 막힌 책’은 뭐가 되는 셈인가.


  책방에서 책을 파는 사람이라면,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해서 잔뜩 쌓아서 팔지는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책방에는 ‘베스트셀러 순위’부터 없애야 한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책을 넓고 깊이 갖추어, 사람들이 넓고 깊은 책을 골고루 살피면서 골고루 읽도록 북돋울 노릇이라고 느낀다. 몇 가지 책 꽂는 자리를 넓게 마련하면서, 사람들이 몇 가지 책만 읽도록, 그러니까 틀에 박힌 흐름으로 가도록 내몰지 말면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르게 사랑하도록 북돋우는 ‘다 다른 아름다운 책’이 책방 책시렁에서 빛나도록 가꿀 노릇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새책방도 도서관도 출판비평가도 언론매체도 몽땅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 책을 너무 자주 말하거나 들먹이거나 다룬다. ‘아름다운 좋은 책’을 골고루 이야기하는 매무새 찾아보기 참 어렵다. 낱낱이 따지고 보면, ‘사재기 출판사’만 사재기를 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책방 반값 후려치기 하는 출판사도 똑같이 사재기 짓이다. 적립금 잔뜩 안기는 출판사도 똑같이 사재기 짓이다. 끼워주기라든지 덤 얹어주기도 사재기 짓이다. ‘서평단 책읽기’와 ‘서평단 독후감’도 사재기를 부채질한다. ‘베스트셀러 비평’ 또한 사재기로 이끌고 만다.


  책방은 책을 다루어야 한다. 책지기는 책을 보살펴야 한다. 책손은 책을 사랑해야 한다. 그뿐이다. 책을 쓰고, 책을 엮고, 책을 읽고, 책을 다루고, 책을 이야기하면 넉넉하다. 4346.5.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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