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먼저... 자기가 쓴 책에 별을 다섯 개 붙이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로서는, 제가 쓴 원고 가운데 1/10만 담아서 얇게 만든 책이라 아쉬워서 4.5점을 매기고 싶으나, 그렇게 점수를 주기 어려워 이렇게 했습니다. 아무튼, 책을 펴낸 사람으로서, 답변을 해야겠다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저는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라는 모임을 꾸리고 있습니다. 책으로는 아쉽거나 모자라는 이야기는 이 모임 게시판에 올려놓은 엄청난... 글과 자료로 도움 받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목표나 목적은, 사람들이 헌책방을 제대로 알고 느끼며, 그 맛을 헤아리는 데에 있습니다. 나나 님께서 제가 펴낸 책을 모자라다고 평가해 주셨지만, 헌책방에 얽혀서 여러 가지 펼치신 말씀은, 제가 펴낸 책에 다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여, 한편으로는 고맙고 다행이라고도 봅니다. 아무튼 ^^
서울 용산 <뿌리서점>

 

'나나'님에게

먼저, 제가 쓴 책을 시간 내어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헌책방을 즐겨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이런 책을 내도 제대로 읽힐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나나 님이 쓴 다른 글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제가 이 책에서 다루고 짤막짤막하거나 길게 소개한 '헌책' 가운데 저 말고 눈길을 지긋이 두고 찾거나 보거나 알려고 하는 책도 드물 테고, 읽어 보신 책도 드물 테니, 낯설고 지루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책들을 굳이 이야기하고 헌책방을 소개하고 헌책방이 어떤 곳이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헌책방이란 곳을 가 보지도 않고 자기 선입견과 편견으로 매도하는" 잘못된 흐름과 분위기를 일러 주고 싶어서입니다.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헌책방이든 "묻혀 있는 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보통은 "널리 알려지거나 남들이 많이 읽거나 추천을 서로서로 하는 책"을 보지, "거의 알려지지도 않고 남들도 거의 안 읽고 추천도 하지 않"는 책은 거들떠보는 사람도 드뭅니다. 송건호니 리영희니 박현채니 이오덕이니 성내운이니 김교신이니 인정식이니 하는 분들이 남긴 책을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서 읽겠습니까? 고전이라고 해도 서양고전이나 몇몇 나라안 이름난 사람들 책만 볼 뿐이지 박제가나 유형원이나 홍대용이나 서재필이나 유길준 같은 사람들이 남긴 주옥 같은 책을 찾아서 꼼꼼히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이런 책들, 이런 사람들이 남긴 책들을 참 좋아합니다. 볼테르가 쓴 <깡디드>를 얼마 앞서 어느 출판사에서 퍽 비싼 고급판으로 새로 냈는데, <깡디드>는 헌책방에 가서 옛날 범우사 작은 판으로 1000원이면 사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헌책방이 우리에게 "책을 보는 눈을 새롭게 틔우는 구실"을 하는 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껍데기가 낡든 헐든 깨끗하든 곱든, 가장 중요한 것은 속에 담은 알맹이입니다. 속에 담은 알맹이가 허술하고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책은 알맹이로 진실을 말하고 겨루는 그릇이니까요.

그러나, 깊이가 얕고, 문체도 가볍고, 글솜씨도 모자라서 죄송합니다.

저는 깊은 것을 찾고 싶은 생각은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어설프게 깊이나 너비를 찾는 일은 달가이 여기지 않습니다. 살면서 자기 모자람을 늘 깨달으면서 조금씩 거듭나고 고쳐나가면 좋을 텐데, 죽는 날까지 제대로 거듭나거나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저는 가볍게 쓰는 글을 좋아합니다. 글에 어려운 말을 집어넣는 일을 참 싫어합니다. 제가 쓰는 글은 초등학교 3~4학년쯤만 되어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초등학교 1~2학년쯤만 되어도 읽고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하게 쓸 생각이지만, 그렇게까지 쓸 수 있으려면 한두 해 갈고닦는다고 해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 부지런히 애쓰고 있으니 열 해나 스무 해 안에는 이 뜻을 이룰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말하는 비평책이나 수필이나 문학이나 다른 무슨무슨 책이나... 다들 참 글을 딱딱하고 메마르게 씁니다. 저는 이런 글을 싫어합니다. 시골에서 일하면서 사는 몸으로 생각해 보면, 시골 분들 가운데 책이나 신문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책은 자기들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울이나 도시만 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뭐 그리 보는 것, 읽는 것이 많은지... 또 이 도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왜 그리도 어려운지... 껍데기만 잔뜩 뒤집어쓴 채 알맹이는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지...

나나 님이 비평글을 쓴 이명원이나 강유원 씨 책은 저도 읽고 있습니다. 둘 모두 나름대로 자기 뜻과 생각을 찬찬히 펼치고는 있는데, 글에 쓴 말을 보면 '잘못되고 엉터리'인 낱말과 말투가 참 많습니다. 어설픈 일본 말투와 낯선 번역투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하나 고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는 알맹이도 알맹이이지만, 알맹이를 나타내고 드러내는 말은 글을 읽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손쉽고 즐겁게 헤아리고 읽는 한편, '말 공부'도 시켜 주는 터라,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우리네 교과서와 방송과 온갖 책들은 우리 말 문화와 어긋나는 한편, 우리 말 문화를 죽이는 낱말과 말투와 문장을 너무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고등학교만 마쳐도, 대학교까지 나온다면, 참으로 문제투성이 말에 길들고 찌들어 이런 말이 아니고는 자기 생각을 펼쳐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 글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요즘은 아이들도 티브이와 컴퓨터에 찌들고 물들어 엉터리에다가 얄궂은 말로 바뀌어 가고는 있는데, 그래도 아직은 나은 편입니다. 저는 이 아이들 말투로, 아이들이 쓰는 말로 글을 쓰는 일을 즐깁니다. 문장은 되도록 짧게, 낱말은 되도록 쉽게, 말투는 되도록 살갑게 해야 이 이지러지고 어지러운 지식인들 세상, 먹물들이 망쳐 놓고 있는 세상에서 숨구멍을 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펴낸 책이 모자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너그러이 봐 달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음에 낼 책에서 더 곰삭이고 다듬어 내겠다는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이미 펴낸 책에서 여러 가지 모자람과 아쉬움이 드러나니, 이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제가 쓴 글이 모자라든 형편없든, 글솜씨가 없든 그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글쓰는 사람이 이런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참말로 문제 많은 사람일 텐데요, 저는 그래도 좋습니다. 그럼 뭐가 중요하느냐? 하면, 부디 사는 곳에서 가까운 데에 있는 헌책방에 나들이를 가 보시면 좋겠고, 서울에 일이 있어 오실 때면, 서울 곳곳에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 좋은 헌책방에 한 번이라도 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바쁘시고 다른 일도 많아서 모든 헌책방을 다 가 보실 수는 없을 테니, 다음 몇 곳만 추천하겠습니다. 제 책을 보셨으니 헌책방 연락처는 갖고 계실 텐데, 제 인터넷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으로 와 보시면 [헌책방 나들이-서울] 게시판과 [헌책방 나들이-전국] 게시판에서, '게시판 알림글'로 헌책방 연락처를 공개글로 올려놓았으니 받아 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수준은 '높아 보이지 않는 게 좋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낮은 수준'으로도 '하고픈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수준이 있고 솜씨만 있는 사람들이 '옹글고 알차고 튼튼하고 고운 정신'도 없이 재주만 부리는 글이 넘쳐나는 것을 달가이 여기지 않습니다. 이번에 일본 극우잡지에 망령된 글을 쓴 한승조 같은 사람은 박정희 때부터 전두환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온갖 검은 권력 실세를 도맡아 해 왔는데 대단한 '학식'과 '경력'을 갖고 명예교수까지 받고 있더군요. 이런 사람들이 쓰는 글에 수준과 솜씨가 참 많을 텐데, 늘 이런 모습을 봐야 하다 보니 수준 있고 솜씨 있는 글을 쓰는 일이 참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나마 제가 찍은 사진이 조금 마음에 드신다고 하니... 다행인데요, 이달 끝무렵부터 6월 마지막날까지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헌책방에서 다섯 번째 '헌책방 사진 전시회'를 엽니다. 틈나면 한번 놀러가 보셔도 고맙겠습니다.

'실망한 책'을 쓴 사람으로서, 나나 님에게 애꿎은 돈과 시간을 헛되이 쓰게 한 잘못을 뉘우치고자 이런 글을 썼는데, 이런 글도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런데 '나나'라는 글이름(필명)은 야자와 아이가 그린 만화책 <나나>에서 따오신 건지요?

 

-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 서울 연세대 앞 <정은서점>
- 서울 용산 <뿌리서점>
- 서울 낙성대 <흙서점>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 부산 보수동 <고서점>
- 전주 홍지서림 옆 <일신서림>
- 대구 경북대 뒷문 <합동서점>
- 대전 대훈서적 뒷문 <중도서점>
- 제주 제주시 <책밭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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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3-07 08:31   좋아요 0 | URL
이런, 이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자가 자기 책에 관한 리뷰를 볼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알라딘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장도 되는군요... 다음부터는 리뷰 쓸 때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글이 님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그냥 책을 읽고 아무 생각없이 느낀 점을 쓴 건데, 저자가 직접 읽게 되니, 괜한 인신공격이 될 오해의 소지도 생겼나 봅니다 아, 정말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여러 가지로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헌책방을 애용하는 편이 아니라 님의 책을 대충 읽고 별 감동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헌책방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큰 감동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말하자면 저의 리뷰는 너무나 편파적이고 개인적인 글이었던 셈이죠 그냥 제 블로그에 올린다 생각하고 쓴 건데,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이 읽는다는 걸 늘 망각하게 되네요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더구나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쓴 글이 평가절하 당했을 때의 작가 심정도 조금은 알 것 같구요 무엇보다 제가 꼼꼼하게 책을 읽고 쓴 리뷰가 아니라거 더욱 죄송합니다 다음에 책을 내시면 그 때는 열심히 꼼꼼하게 읽고 리뷰를 쓰도록 할께요 그리고 헌책방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심을 갖겠습니다 참, 사진은 직접 찍으신 거죠? 책과 어울리는, 느낌이 참 좋은 사진들이었어요 ^^

marine 2005-03-07 08:36   좋아요 0 | URL
나나라는 닉네임은 에밀 졸라가 쓴 목로주점에 나오는 프랑스 고급 창녀의 이름입니다 발음하기 좋아서 오래 전부터 쓰는 닉네임이랍니다 그런데 금나나가 미스코리아 당선된 후 그 여자 이름에서 따 왔냐는 오해를 몇 번 받았습니다 나름대로는 유명 문학작품에서 따 온 건데, 속상했었죠 ^^ 참, 그리고 저는 생활이 넉넉치 않은 관계로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봅니다 님의 책도 도서관에서 대출한 거예요 그런데 바로 그 책을, 실은 제가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신청했었어요 돈 주고 책 사 봐야 진짜 독자라는 글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여러가지고 저는 함량 미달 독자인 셈이네요 ^^ 다음 번에 책 내면 그 때는 돈 주고 사서, 정말 꼼꼼하게 읽고 리뷰 쓸게요 좋은 책 내길 바랍니다 ^^

숲노래 2005-03-07 11:59   좋아요 0 | URL
따로 상처를 받은 것은 없습니다. 어떤 책이건, 어떤 일이건 어떤 모습으로도 읽힐 수 있고 보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쓴 글이나 하는 일에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가지 눈길과 눈높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생각으로만 일을 하고 글을 쓴다면 '저한테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좋아 보일 수도 있거든요. 그런 것을 알면서 조금씩 가다듬어 나가야 할 텐데, 차근차근 가다듬고 갈무리하기란 쉽지 않고, 또 그냥 지나치기 쉬워요. 그래서 이렇게 죽죽 리뷰를 써 주신 일이 참 반갑고 고맙답니다. 그리고 이 책은 '헌책방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보면서 헌책방을 즐겁게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펴냈는데, 나나 님이 비평을 해 주셨듯,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게 된다'면, 지은이가 제대로 못한 거잖아요. 그러니 비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음... 도서관에 신청을 하셔서 도서관에 진열이 될 수 있도록 하셨다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맙습니다 ^^ 저는.. 이런저런 일-보통 오마이뉴스 기사 쓰기를 하려고 책 검색을 하면서 책마다 붙어 있는 독자 리뷰나 비평을 낱낱이 읽어 봅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책마다요. 그래서 더러 제가 낸 책에 붙은 독자비평도 읽어 보곤 하는데요, 볼 때마다 움찔 하면서 조심스럽답니다. 이번엔 무슨 잘못을 비판받을까 하면서요 ^^ '나나'란 이름이 그런 것이었군요. '야자와 아이'란 사람이 그린 <나나>란 만화책과 <천사가 아니야>가 있는데, 한번 보시면 퍽 재미있으리라 봅니다. 댓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