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책읽기


  땅을 사 놓고 땅에다 집을 안 짓고 밭이나 논을 일구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시골 땅뙈기가 들이나 숲이 되도록 돌보지 않는다면, 이렇게 ‘땅을 사들이는 일’은 무엇일까. ‘투자’인가, ‘투기’인가?


  돈을 더 벌겠다면서 시골마을 값싼 땅을 도시사람이 사들인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가리켜 투자라 하든 투기라 하든, 쉽게 말하자면 ‘땅장사’라고 느낀다. 땅을 사고팔면서 돈을 벌 생각일 뿐이라고 느낀다.


  땅장사를 하고 싶으면 땅장사를 할 노릇이다. 은행을 열거나 맞돈 빌려주면서 돈장사 하는 사람도 있으니, 땅을 사고팔며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나올 만하다. 물장수도 있고, 바람장수도 있으며, 학교장수나 물고기장수, 배추장사, 주식장수, 지식장수, 온갖 장수 다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땅을 왜 사려고 할까. 사람들은 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려 할까. 나이 많이 먹고 나서 느긋하게 놀면서 시골살이를 할 뜻으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는가. 흙 만지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는가.


  책은, 책을 사랑스레 읽을 사람이 사들여야 마땅하다. 돈은, 돈을 슬기롭게 쓸 사람이 벌어야 마땅하다. 꿈은, 꿈을 아름답게 펼치려는 사람이 꾸어야 마땅하다. 집은, 살붙이나 동무하고 오순도순 살아가고픈 사람이 지어야 마땅하다. 땅은, 땅을 이루는 흙을 아끼고 보듬으면서 풀과 나무를 얼싸안으려는 사람이 장만해서 보살펴야 마땅하다.


  함부로 파헤쳐도 되는 땅은 없다. 모든 땅에는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한가득 깃든다.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한가득 깃든 땅에는 지렁이와 벌레와 작은 짐승과 작은 들새가 깃들어 함께 살아간다.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라 할 수많은 목숨들 터전이 땅이요 흙이며 들이고 숲이다.


  풀과 나무는 땅문서 하나 없지만,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땅을 살린다. 벌레와 짐승은 땅장사 한 적 없으나, 튼튼하게 보금자리 마련해서 흙을 북돋운다. 사람은 무얼 하나. 사람은 무슨 일을 하나. 사람은 무슨 짓을 하나.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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