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맛 책읽기

 


  도시로 오면 먹을 수 있는 풀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는 풀이 자랄 틈이 거의 없으니, 도시사람은 즐겁게 뜯어서 먹을 만한 풀을 만나기 어렵다. 시골에서 비닐집을 세우고는 철없이 아무 때나 잔뜩 심어 잔뜩 거두어들이는 푸성귀만 만날 수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도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은평구에서 ‘은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강남구에서 ‘강남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있을까?


  풀맛을 볼 수 없는 도시에서는 물맛 또한 볼 수 없다. 신림동 물맛이란 없다. 교남동 물맛이란 없다. 종로 물맛이라든지 흑석동 물맛이란 없다. 두멧시골에 댐을 지어 길디긴 물관을 이어 수도물 마시는 도시에서는 모두 똑같은 화학처리를 한 물맛이 있을 뿐, 사람들 스스로 물맛을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살피는 가슴까지 잃는다. 이리하여, 서울 물맛도 부산 물맛도 없다. 인천 물맛도 순천 물맛도 없다.


  풀도 물도 싱그럽게 자라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맛 누릴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맛 일구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품을 수 있을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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