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의 교실

 


  도서관에서 흘러나오는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간다. 오래도록 대출실적 없던 책을 도서관에서 버린다. 새로 사들이는 책을 꽂을 자리가 모자란 한국 도서관에서는, 오래된 책을 버릴 수밖에 없다. 한국 도서관은 ‘책이 없다’고 할 만한데, 건물 하나 맨 처음에 으리으리하게 짓기는 하지만, 정작 ‘꾸준히 사들이는 책을 정갈하게 갖출 자리’를 넉넉하게 두지 않는다. 새 건물 차곡차곡 늘리며 새로 사들이는 책을 새로 꽂는 일을 잇지 못한다.


  도서관은 꼭 커다란 건물이어야 하지 않다. 도서관은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이어도 좋다.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 한 채를 구청이나 시청에서 사들여 작은 골목집을 작은 골목도서관으로 꾸며 동네마다 여러 곳 두면 참 좋으리라. 이렇게 하면 굳이 책을 안 버려도 된다. 동네사람은 동네에서 가까이 언제라도 찾아갈 도서관을 누릴 수 있고, 여행을 다니는 길손은 골목도서관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책바다를 누릴 수 있다.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이오덕 님 책 《삶과 믿음의 교실》을 본다. 나는 예전에 이 책을 읽었지만, 낯익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어 살살 펼친다. 그러다가 ‘서울 간호전문대학’ 도서관에 있던 자국을 본다. 그렇구나. 대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이로구나.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뒤에 ‘빌림종이’ 붙인 채 버렸네.


  네 사람 빌려서 읽은 자국 본다. 네 사람 뒤로는 더 빌려서 읽지 않았나 보다. 빌려서 읽은 네 사람은 어떤 넋 얻었을까. 이 책을 빌려서 읽지 않은 다른 숱한 그무렵 대학생들은 어떤 넋으로 대학교에서 학문을 익혔을까. 간호전문대학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갖추었다가 버렸는데, 다른 대학교 도서관에는 이 책 있을까. 교육대학교 도서관에는 이오덕 님 《삶과 믿음의 교실》을 곱게 갖추며 오래오래 잘 건사할까. 교육과학기술부에도 도서관 있다면, 그곳 도서관에는 이 책이 오늘날에도 예쁘게 꽂힐까. 앞으로 누가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 들러 이 책을 알아보고 기쁘게 손에 쥐어 읽을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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