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 효리와 순심이가 시작하는 이야기
이효리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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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삶과 고운 꿈
 [환경책 읽기 42] 이효리, 《가까이》(북하우스,2012)

 


- 책이름 : 가까이
- 글 : 이효리
- 펴낸곳 : 북하우스 (2012.5.24.)
- 책값 : 12800원

 


  소리가 흐릅니다. 귀를 기울이면 귀를 기울이는 대로 나한테 흘러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 대로 내 둘레에서 퍼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는 하루 내내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마을 감도는 바람이 나뭇가지와 풀잎 사그락사그락 사부작사부작 건드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밥상을 차리면서 풀을 복복 뜯습니다. 풀마다 뜯는 소리 다릅니다. 부추잎 뜯는 소리와 쑥잎 뜯는 소리 다릅니다. 소리가 다르면서 냄새가 다릅니다. 돗나물 뜯을 적하고 별꽃나물이나 꽃마리나물 뜯을 적에도 소리와 냄새가 달라요. 손가락에 푸른 물이 살곰살곰 돌면서 푸른 내음 짙게 뱁니다.


  풀을 뜯다가 제비 노랫소리 들려 고개를 듭니다. 제비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 둥지에 내려앉기도 하지만, 곧잘 사람을 살피며 지붕 위를 휙휙 잰 날갯짓으로 춤추듯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제비가 날갯짓 하며 휙휙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참새는 째째 째째 하면서 봉실봉실 통통한 몸뚱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냅니다. 까마귀랑 까치는 또 까마귀와 까치대로 사뭇 다른 날갯짓 소리를 들려줍니다.


.. 나는 지금 새로운 길을 달려가고 있다 …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다 … 돌이켜보면 돈을 아무리 벌어도, 내가 쓸 깨끗한 수건 한 장 신선한 우유 한 병 사 본 적이 없었다. 늘 남들한테 보여야 하는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그런 걸 사는 데 신경을 썼지, 진짜 나 자신을 위해 보약 한 재 지어 먹은 적이 없었다. 보약은커녕 집에 변변한 먹을거리 하나 없었다. 비염이 있고 장이 안 좋아 다음날이면 고생을 하면서도 매일 술을 마시며 나를 돌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저 뒤로 밀어버리고 이제는 나에게 관심을 두기로 했다 ..  (9, 107, 110쪽)


  고흥과 가까운 도시 순천으로 나오면, 시골집에서 듣던 소리 모두 사라집니다. 풀소리도 나무소리도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못 듣습니다. 흙땅 밟을 적에 볼락볼락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시멘트나 아스팔트 딱딱한 길바닥 밟으며 아무런 소리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 그득 넘칩니다. 널따란 찻길에 커다란 자동차 끝없이 오갑니다. 건물에 깃들어도 자동차 소리 울립니다.


  순천으로든 서울로든 인천으로든 부산으로든, 도시로 가끔 볼일 보러 나들이를 할 적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이곳에서 내 귀를 따사롭게 간질이는 소리로 무엇이 있을까 헤아리면서 귀를 기울입니다.


  도시에는 사람 많고 아이들 많습니다. 시골에는 사람 적고 아이들 뜸합니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도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지만, 정작 이 웃는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되게 거칩니다. 어쩜 저렇게 까르르 웃어대면서 입으로는 거친 말마디 쏟아질 수 있는지.


  아이들 탓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저런 거친 말을 바로 어른들한테서 배우거든요. 어른들이 둘레에서 거친 말을 쓰니까 아이들은 거친 말에 익숙합니다. 어른들이 늘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하거나 따사롭거나 보드랍거나 포근한 말마디로 꿈과 사랑을 노래한다면, 아이들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따사롭고 아름다운 말마디 노래해요.


  골목에서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아주 드뭅니다. 큰 찻길에서도 알맞춤한 빠르기로 달리면서 소리 적게 내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매우 적습니다. 모두들 더 빨리 가려 하고, 모두들 더 큰 소리 내려 하며, 모두들 우격다짐으로 달겨듭니다.


.. 중앙시장에 있던 아빠의 작은 이발소에 무작정 찾아 들어온 똥개 한 마리. 처음부터 그러기로 한 것처럼 불쑥 우리 집에 나타난 녀석을 아빠는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빵을 조금 주었다고 한다 … 나는 새끼를 뺏긴 메리의 심정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친구들이 지나다니는 시장통에 나가 앉아 강아지를 파는 게 정말 창피했을 뿐 …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음을 준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떠나 보낼 때는 마음도 떼어 보내는 것이고, 그 빈자리가 먹먹해서 자꾸 돌아보게 되는 것. 게다가 일 년이면 사계절을 같이 보냈을 것이니 크고 작은 추억들이 얼마나 많을까 ..  (19, 25, 58쪽)


  시골마을 고양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집으로 먹이 찾으러 들어오는 고양이들은 밭자락에든 돌울타리에든 느긋하게 앉습니다. 뭐 좀 먹을 것 없느냐며 우리 식구를 빤히 바라봅니다.


  배부른 시골고양이는 논 한복판이나 밭 한복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아예 엎드려 자는 시골고양이 있습니다. 논이나 밭 한복판에 앉거나 엎드리면, 게까지 좇아 들어와 나무작대기 흔드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시골고양이는 그야말로 한갓지게 낮잠 누립니다.


  도시로 마실 나오면 도시에서 지내는 골목고양이 만납니다. 사람을 꺼리지 않는 골목고양이 때때로 있지만, 고개 홱 돌리면서 잰 발놀림으로 시멘트 담벼락 사뿐 올라타고는 저 멀리 사라지는 골목고양이 더 많습니다. 해코지할 생각 없는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골목고양이로서는 몸을 사리는 쪽이 훨씬 나은 줄 아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은 얼굴에 탈을 쓰고 저희(골목고양이)한테 다가와 갑작스레 그물로 나꿔채기도 하잖아요.


.. 처음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걸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나는 뭐가 그리 급해서 기다리지 못했을까? 분명히 적응기였을 텐데 … 누군가가 귀한 대접을 해 주면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언니는 언니가 가지고 있는 맑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게 고스란히 부어 주었다 … 세상에 알려진 ‘이효리’라는 이름을 이용해 보기로 한다. 여론을 모으고, 캠페인에 힘을 쏟기로 한다. 가식이야, 거짓이야, 속임수야 식의 비뚤어진 손가락질은 못 들은 척하면 그만이다. 진실이 아니니까. 지치지 않는 의심의 눈초리, 그것도 상관 없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에 시간을 쏟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  (75, 114, 159쪽)


  해는 어디이든 골고루 비춥니다. 햇살은 어디에나 포근히 내려앉습니다. 햇볕은 아파트 높다란 벽이든 너른 들판이나 멧자락이든 찬찬히 보듬습니다. 시골에서는 봄날과 가을날에 너덧 시 사이에 동 트는 하야말그스름한 기운 느낍니다. 시골 여름날에는 네 시를 넘어갈 무렵부터 희뿌옇게 밝는 기운 느끼지요.


  도시에도 새벽은 똑같이 찾아와요. 도시에서도 너덧 시에 새벽 기운 느낄 만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하늘이 밝는 기운보다 시계로 새벽을 살핍니다. 시계를 살펴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달력을 살펴 사람들이 일합니다. 도시사람은 날씨나 철이나 바람이나 햇볕이나 비나 눈에 따라 일하지 않아요. 도시사람으로서는 한겨울이건 한여름이건 늘 똑같은 일을 합니다. 도시사람은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늘 똑같은 시계를 바라보면서 똑같은 탈거리에 몸을 실어 똑같은 일터를 드나듭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를 보며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에 따라 곡식을 거두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날씨에 따라 곡식을 돌보고, 철과 날과 때에 맞추어 논과 밭을 일굽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나무열매 하나를 따더라도 ‘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열매’가 저마다 달라요. 먼저 익는 열매가 있고 천천히 익는 열매가 있어요. 같은 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열매라 하지만, 따서 먹는 때가 모두 달라요. 게다가, 같은 나무 한 그루에서 얻는 열매조차 모두 맛이 조금씩 다르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다 다른 땅을 다 다른 사랑으로 일굽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몸빛과 마음빛 살피면서 들일을 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꿈과 사랑을 씨앗 한 톨에 담아 다 다른 밭자락이나 논뙈기에 심습니다. 다 다른 꿈과 사랑을 먹으며 크는 씨앗은 저마다 다른 따스함을 품으면서 알알이 익습니다.


.. 고민 없이 (자가용을) 팔고, 그후 이동할 일이 있으면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알아보면 어쩌나’ 하던 생각은 ‘알아보면 뭐 어때’로 바뀌었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신기하기도 하지. 차를 팔고 걷다 보니 오히려 일상이 풍요로워졌다. 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그게 삶을 풍요롭게 해 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걸으면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길고양이들, 추운 겨울 연탄불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 내며 익던 노란 밤 … 세상 참 각박하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걸 보지 않은 건 나였다 ..  (120, 169쪽)


  이효리 님 살아온 이야기와 곁짐승 이야기 들려주는 《가까이》(북하우스,2012)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흔히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 두 가지 이름 모두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요. 가만히 보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은 모두 사랑스럽고(애완), 늘 함께(반려) 있어요.


  내 고운 짝꿍(아이 어머니)은 나한테 옆지기라고 느낍니다. 내 짝꿍은 나를 이녁 옆지기라고 느낍니다. 나는 이녁을, 이녁은 나를, 서로 옆지기라 부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도 옆지기라 할 만합니다. 따로 이름 하나 붙인다면, ‘옆짐승’ 또는 ‘곁짐승’ 되겠구나 싶어요.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따사로운 벗님이라는 뜻에서 곁짐승이에요.


..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소유한 아이가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겠지 … 유기견은 더럽고 병들고 떠돌던 개가 아니에요. 언제 어디에선가 사랑받았던 개죠. 사람들의 변덕으로 버려졌을 뿐이에요 … 이제 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우리가 먹는 소나 돼지는 광고의 한 장면처럼 푸른 목초지에서 풀을 뜯으며 자라고, 쓰임이 다하고 난 후 식용으로 처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리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 채식 선언을 하고 모피 반대 선언을 한 후, 들어오던 광고도 많이 끊겼다(라면, 피자, 치킨 등 음식 광고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  (180, 191, 198, 249쪽)


  이효리 님은 어떤 뜻을 품고서 떠돌이짐승을 따사롭게 건사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효리 님은 당신이 겪은 슬프거나 힘들거나 아픈 지난날 돌아보면서 떠돌이짐승을 곁짐승으로 두며 사랑을 길어올리고 싶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좋아서, 그저 이효리 님 당신 삶을 좋아하고 싶어서, 떠돌이짐승한테 사랑스레 눈길을 보내다가는, 이들 떠돌이짐승을 곁짐승으로 두면서 스스로 사랑스레 씩씩하게 살아가자 다짐하는지 몰라요.


  좋으니까요. 이효리 님 스스로 이효리 님 삶이 좋으니까요. 노래하는 삶이 좋고, 춤추는 삶이 좋으니까요. 텅 비다시피 하던 집구석을 ‘집구석’ 아닌 ‘보금자리’ 되도록 차근차근 가꾸고, 술고래처럼 노닥거리던 삶을 고이 접고는 들풀과 들나물 즐기면서 이효리 님 스스로 몸을 살찌우다 보니, 이런 나날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서 좋으니까요.


.. 무엇부터 끊어야 할까? 제일 쉬운 것부터. 텔레비전을 끈다. 브라운관에 고정되어 있던 눈이, 시끌벅적한 소리에 집중하던 귀가, 마당 쓰는 빗자루 소리, 눈이 창밖에 쌓이는 모습, 내가 내어놓은 밥을 먹는 동네 길고양이들을 향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집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 간다. 흥청망청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가고 있다 … 소속사로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입 다물라’라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온갖 악플들도 난무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그저, 정말 자연이 보존됐으면 좋겠고, 동물들과 더불어 행복했으면 좋겠고, 약한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음,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게 그렇게 엄청나고 심각한 일인가 ..  (244, 274쪽)


  누구나 재미있는 삶입니다. 돈이 더 있대서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웃고 노래하며 어깨동무하는 삶으로 나아가기에 재미있는 삶입니다. 누구나 고운 꿈 꿉니다. 이름값을 얻거나 권력을 거머쥐어야 고운 꿈 아니에요. 활짝 웃고 맑게 노래하며 서로 어깨춤 둥실둥실 왁자지껄 즐길 때에 고운 꿈이에요.


  마음에 사랑 있어 사랑을 그려요. 마음에 꿈 자라니 꿈을 그려요. 마음에 이야기 담아 이야기를 노래해요. 마음에 웃음을 담으면서 살그마니 웃음꽃 지어요.


  삶은 예쁜 아이들과 날마다 누리는 꽃입니다. ‘예쁜 아이들’은 고운 옆지기랑 살아가며 낳은 딸아들일 수 있고, 떠돌이짐승일 수 있어요. ‘예쁜 아이들’은 숲속 들꽃 한 송이일 수 있고, 들판에서 자라는 푸른 나무 한 그루일 수 있어요.


  우리 다 같이 재미나게 살아요. 우리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고운 꿈 꾸어요. 즐겁게 손을 내밀고, 기쁘게 활짝 웃어요. 사랑은 누구나 마음속에서 흘러요. 꿈은 누구나 마음밭에서 자라요. 가는 사랑 고우면서 오는 사랑 곱고, 건네는 꿈 맑으면서 찾아오는 꿈 밝아요.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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