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책

 


  시골에서 살아가고부터 누군가를 바깥에서 만날 때면 으레 내 글공책에 글을 짤막하게 적바림한다. 이 글을 일컬어 ‘시’라고도 하지만, 따로 어떤 갈래로 이 글을 넣고 싶지 않다. 글공책에 글을 쓰며 생각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노래’ 부른다고.


  마음노래 몇 줄 적은 뒤에는, 고운 종이를 꺼내어 한 쪽에 찬찬히 옮긴다. 처음에는 뒷종이가 되든 휴지가 되든 아무 종이에나 마음노래 적어서 건넸는데, 이제는 고운 종이꾸러미 따로 마련해서 작은가방에 챙긴다. 마음노래 즐겁게 들으면서 마음밥 맛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건네는 마음노래 한 가락 두 가락은 내 머리로 짓는 글일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일군 삶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찬찬히 쓸 수 있는 글이다. 사람들마다 나한테 다 다른 삶을 보여주고 다 다른 삶에서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낯빛을 보아도 삶과 이야기를 느끼고, 말씨와 손짓을 보면서 삶과 이야기를 느낀다. 이 모두를 아울러 마음노래에 담는다.


  사람은 누구나 책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책 한 권이다. 한 사람 살아온 삶자락 하나 고스란히 책이 된다. 한 사람 생각하고 사랑하며 일군 나날 곱다시 책이다.


  종이에 까만 잉크로 찍으면 종이책이다. 몸과 마음에 이야기 아로새기면 사람책이다. 사람들은 종이책 읽을 수 있다.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는 사람책 읽을 수 있다. 집안에 종이책 잔뜩 건사한대서 책읽기 잘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종이꾸러미에 깃든 지식이나 줄거리를 좀 꿴다고 할 뿐이다. 책읽기를 잘 하자면 삶읽기를 잘 할 노릇이다. 종이꾸러미를 엮은 사람들이 글 한 줄에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했는가 하는 대목을 읽어야 비로소 ‘읽기’요, 종이꾸러미 속내와 꿈을 읽으면 비로소 ‘책읽기’이다.


  누군가는 꽃을 마주하며 꽃읽기를 한다. 꽃읽기는 바로 삶읽기이면서 책읽기이다. 누군가는 호미 쥐어 밭을 일구면서 흙읽기를 한다. 흙읽기는 곧 삶읽기이면서 책읽기이다. 누군가는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면서 살림읽기를 한다. 살림읽기 또한 아름다운 삶읽기이자 책읽기이다. 아이들이 마당에서고 집안에서고 콩콩콩 뛰고 달리며 놀이읽기를 한다. 놀이읽기도 재미난 삶읽기가 되고 책읽기가 된다.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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