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하는 시외버스
고흥서 서울로 달리는 네 시간 남짓 시외버스에는 텔레비전 있다. 버스 가득 탄 할매 할배 텔레비전 안 보고 쿨쿨 잔다. 시외버스 일꾼은 텔레비전은 켜되 소리는 안 켠다.
서울서 고흥으로 달리는 네 시간 남짓 시외버스에도 텔레비전 있다. 버스 이럭저럭 탄 젊은 가시내 머스마 텔레비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외버스 일꾼은 텔레비전을 켤 뿐만 아니라 소리도 켠다.
나는 텔레비전도 안 보고 소리도 안 듣는다. 자다가 퍼뜩 깨면서, 그래 저 텔레비전 소리가 나를 깨웠네 하고 깨닫는다. 네 시간 남짓 바로 옆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란, 꼭 독재정권 고문경찰 몸짓하고 닮았다고 느낀다. 지난날 독재정권 때에는 사람들 때려잡아 때려죽이는 짓을 했고, 오늘날 민주정권 때에는 사람들 바보로 만들려는 방송과 광고와 문명과 교육이 흘러넘친다.
졸음을 쫓으며 책 하나 꺼내어 펼친다. 아름다운 삶 담은 아름다운 책 하나 읽는다. 한참 잘 읽는데, 시외버스는 멧자락마다 끝없이 낸 구멍길을 들락거린다. 구멍길 들락거릴 때마다 확 어두워지면서 책이 안 보이고, 눈을 밝혀 책을 읽으려 하면 어느새 구멍에서 빠져나와 확 밝아지면서 눈이 부시다.
고속도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책읽기하고 참 안 맞는다. 눈 딱 감고 자든지, 눈 딱 뜨고 텔레비전 보든지, 둘 가운데 하나만 해야 한다.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