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11. 바람소리와 숨소리
―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치는 사람

 


  시골마을에서는 으레 마루문이나 창문을 열고 하루를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사람 귀를 거슬리는 소리는 웬만해서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에, 장사꾼 짐차 알리는 소리, 마을방송 소리, 이런저런 자동차와 방송 소리 있지만, 이들 몇 가지 소리를 빼면 고즈넉한 시골소리 살그마니 스며듭니다. 이를테면,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들새와 멧새가 노랫소리 들려줍니다. ‘새소리’이지요. 문을 열고 바깥바람 들어오도록 하면, 바깥소리 함께 들리는데, 시골마을 감도는 새소리는 한두 가지나 몇 가지 아닙니다. 종달새인가 찌르레기인가 아직 알쏭달쏭하다고 느끼지만, 아마 종달새도 찌르레기도 맞구나 싶은 새소리를 듣고, 뻐꾸기 노래를 들으며, 박새와 동고비 노래를 듣습니다. 노랑할미새 노래를 듣고, 직박구리 노래를 들어요. 제비와 멧비둘기와 까치와 까마귀와 참새도 여러 새소리 사이에 노랫소리 섞습니다. 저녁에는 소쩍새와 휘파람새 노래를 들려주고,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설 무렵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한껏 무르익을 테지요.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지내더라도 마루문을 열지 않으면 새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시골 들판에서 일하고, 시골 밭자락에서 일하며, 시골 숲속에서 마실을 누리지 않으면 새소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시골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버스나 자가용 타고 학교를 오가면, 시골을 온통 채우는 새소리하고 멀어져요. 버스 구르는 소리와 자가용 달리는 소리를 내내 듣겠지요. 버스나 자가용을 안 타더라도 손전화 매만지거나 귀에 소리통 꽂고 대중노래를 들으면, 이때에도 시골소리하고는 멀찍이 떨어질 테고요.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를 건드립니다. 바람이 동백잎과 동백꽃을 건드립니다. 사월에 흐드러진 풀빛 꽃망울 한가득 터뜨리는 느티나무는 꽃잎과 나뭇잎이 사르락사르락 부대끼면서 새로운 풀노래 들려줍니다. 느티꽃이 지는 오월되면 짙푸르게 빛나는 느티잎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풀노래 들려주지요. 가을에는 붉게 물드는 잎사귀 얼크러지는 새로운 풀노래 들려줍니다. 철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른 소리예요.


  밭뙈기에 옹크리고 앉아 흙을 만지고 풀을 돌보노라면, 앉은뱅이 나즈막한 꽃대를 건드리는 바람을 쐽니다. 들바람이요 흙바람이자, 봄꽃바람입니다. 가느다란 냉이꽃대 건드리는 봄바람과 굵직한 유채꽃대 흔드는 봄바람은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다릅니다. 민들레꽃 건드리는 봄바람과 딸기꽃 건드리는 봄바람은 또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달라요. 탱자꽃 건드리는 봄바람과 찔레꽃 건드리는 봄바람은 또 이대로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다르지요.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감고 소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어떤 소리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참새는 ‘짹짹’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귀뚜라미와 풀무치와 방아깨비 풀벌레 풀노래 소리결 또한 모두 다르며, 어떤 틀에 박힌 글로 적바림할 수 없습니다. 왜가리는 어떤 소리를 내며 울까요? 제비는 어떤 소리를 내며 처마 밑 둥지에 깐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다 나를까요? 시골마을에 깃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맡아 가르치는 분들은 시골아이한테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어떤 빛깔을 보여주며, 어떤 무늬를 깨닫도록 북돋울까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어떤 소리·모습·빛깔·무늬를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밝힐 수 있을까요?


  강성미 님이 쓴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샨티,2013)라는 책을 읽다가, 217쪽에서 “난 속으로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는 대목을 보고, 234쪽에서 “어휴, 민주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하는 대목을 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강성미 님은 한숨소리를 아직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이 책을 내놓은 출판사 편집부 일꾼도 한겨레 한숨소리를 어떻게 적을 때에 알맞은가 하는 대목을 미처 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아예 모르지는 않는 한숨소리예요. 다만, 제대로 가르치는 어른 드물고, 올바로 이야기하는 어른 찾아보기 힘들며, 저마다 입시공부와 영어공부에 얽매여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는 길은 좀처럼 느긋하게 들려줄 틈이 없을 뿐이로구나 싶어요.


  자, 숨을 한 번 들이켜봐요. 어떻게 들이켜나요. 후우우욱 들이켜겠지요.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겨 봐요. 어떻게 생각에 잠기나요. 으흐흐흐흠 생각에 잠기겠지요. 아이들이 뭔가 잘못했을 때에 어떤 숨소리 새어나오나요. 아이구, 으이구, 아유, 같은 말이 절로 나오겠지요.


  예부터 한겨레 어느 누구도 숨소리를 잘못 적은 일 없어요. 왜냐하면, 어른들은 이녁 어버이한테서 말을 곱게 물려받았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이녁 스스로 어른 되어 아이들 낳으면 다시 곱게 물려주었어요. 이런 삶을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 이었어요. 이러다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미군정과 한국전쟁과 분단과 온갖 아프고 힘겨운 나날 이어지면서 ‘어른이 아이한테 말 슬기롭고 올곧게 물려주던 삶’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한국과 이웃한 일본에서는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휴’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후유’로 적습니다. 또는 ‘히유’로 적어요. 때로는 ‘어휴’나 ‘아휴’가 되지요. ‘으흠’이나 ‘에헴’처럼 숨소리를 내요.


  아주 조그마한 대목이라 할 숨소리예요. 아주 자그마한 자리라 할 새소리이고 벌레소리예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아주 조그마한 대목 올바로 들려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올바르지 않은 말을 늘 듣고 으레 따라해요. 우리 어버이들이 아이들 앞에서 아주 자그마한 자리 슬기롭고 해맑게 밝혀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한국말하고 자꾸 멀어져요. 집에서부터 어버이 누구나 알맞고 아름답게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 자리에 있는 분들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포근하고 넉넉한 넋으로 말과 글을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4.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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