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놀이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3.4.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고흥 시골마을에서 세 해째 시골도서관으로 책살림 꾸리는 올해를 돌아본다. 올해부터야말로 아이들과 즐겁게 놀자고 생각한다. 지난 두 해 동안 책 치우고 청소 하느라 바빴으면, 올해에는 참말 아이들이 이곳 우리 도서관을 배움터이자 놀이터로 삼을 수 있도록 꾸미자고 생각한다.


  쓸 수 있는 것이면 몽땅 쓰자. 빈 교실 칠판마다, 이곳 졸업생들이 몰래 찾아와서 아무렇게나 끼적거리거나 그린 글과 그림은 모두 지우자. 그리고, 이 칠판을 우리 아이들 그림판으로 삼자. 벼르고 벼른 끝에 어제 읍내마실을 하면서 읍내 문방구에서 칠판지우개하고 분필을 산다. 별렸다고 말은 하지만, 그동안 읍내마실 하면서 사려고 하면서도 늘 못 샀다. 읍내마실을 하고 집으로 군내버스 타고 돌아올 적마다 ‘무언가 하나 빠뜨렸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한 가지가 ‘칠판지우개와 분필 장만하기’였다.


  바퀴 달린 칠판 하나 찾아낸다. 학교 헛간 한쪽에 오래도록 처박힌 칠판이다. 1998년에 문을 닫은 흥양초등학교이니, 자그마치 열여섯 해나 먼지만 먹고 처박힌 셈이다. 앞으로도 이 칠판을 그냥 둔다면 그예 썩어서 쓰레기가 되리라 느낀다. 쓸 수 있을 때에 잘 살려서 써야, 앞으로도 오래 건사하리라 생각한다.


  오래 묵은 찌꺼기는 잘 안 벗겨지지만, 이럭저럭 깨끗하게 지우고 나서 큰아이와 작은아이한테 칠판지우개랑 분필 하나씩 쥐어 준다. 그러고는 분필로 아버지가 먼저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다. 자, 이제 모두 너희 몫이지. 너희 맘대로 놀렴.


  큰아이는 글씨 한 번 따라 쓰다가 이내 그림을 그린다. 작은아이는 누나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누나가 그리는 시늉을 한다. 큰아이는 “보라야, 네 자리는 저기잖아. 저기에서 해.” 그러나 어쩌겠니. 네 동생은 예쁜 누나 하는 모든 모습 따라하고 싶은걸. 누나 옆에 찰싹 붙고 싶은걸.


  버려진 책걸상을 주워서 곰팡이 자국까지 말끔히 닦고, 바깥에서 오래 햇볕 쏘이고 바람 먹인 다음, 안쪽으로 들인다. 책상 하나 걸상 하나 먼저 들어간다. 참 그럴싸하네 하고 스스로 말한다. 고흥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세 해만에 들어오는 책걸상이로구나. 곰곰이 돌아본다. 새것으로 장만한 책꽂이도 있지만,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상이나 걸상은 거의 다 ‘버려진 것’을 주워서 고친 다음 들였다. 새것 살 돈이 없어 새것 못 사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낡은 책걸상 쉬 버린다. 나는 길을 가다가도 낡은 책걸상 보면 찬찬히 들여다본다. 집으로 들고 가서 손질해서 쓸 만한가 살핀다.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 없으니 무거운 책상이건 걸상이건 옷장이건 나 홀로 용을 쓰면서 낑낑거리고 나른다. 몇 킬로미터 거리를 날라야 해도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지도록 짊어지고 나른다. 오늘 도서관에 새로 들인 책상이랑 걸상도 버려진 지 참 오래된 책걸상이다. 그러나 잘 닦아 주고, 잘 손질하면 얼마든지 두고두고 쓸 만하다. 때때로 햇볕 쏘이고 바람 맞히면 참으로 오래도록 이곳에서 어여삐 한 자리 지키리라.


  갑자기 벼락 친다. 갑작스레 매지구름 몰려든다. 빗방울 둑둑 듣더니 소나기 퍼붓는다. 바깥에 내놓아 말리던 책걸상 안쪽으로 들인다. 작은 칠판도 안으로 들인다. 아이들 그림놀이 조금밖에 못했지만, 아쉬움 접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얘들아, 이제 날마다 도서관에 와서 그림놀이 하자. 아니면, 이 칠판을 집으로 가져가서 집에서 놀까? 아무튼, 오늘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이듬날 다시 와서 생각해 보자.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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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오누이가 정답게 쪼그리고 앉아서 칠판에 글자를 쓰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바퀴 달린 칠판이나, 버려진 책 걸상도 함께살기님 덕분에 새 삶을 다시 살게 되어 정말 기뻐할 것 같습니다.
사름벼리는 그림그리는 것을 참 좋아하는군요.^^

숲노래 2013-04-15 11:17   좋아요 0 | URL
아버지란 사람이 날마다 글을 쓰니까... 글도 그리고 그림도 그리고...
그렇게 놀아요 ^^;;;;

동생도 머잖아 누나 못지않게
그림 예쁘게 그리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