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네는 ‘작은’ 것만 쓰나

 


  열아홉 살에 처음 글쓰기를 했고, 이제 서른아홉 살을 살아간다. 열아홉 살에 처음 하던 글쓰기를 돌이켜보면, 늘 ‘큰’ 것을 좇았다. 스물다섯 살 될 무렵, 내 삶을 따스하게 바라보아 주는 어느 분이 ‘큰’ 것은 내려놓으라고 넌지시 이야기해 준다. 며칠 아니 사흘 아니 이틀 아니 꼭 하루 생각했다. “왜요? 큰 것을 말해야지요?” 하는 목소리 나오려다가 하루 사이에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서른 살에 모든 신문을 끊는다. 서른 살부터 아무 신문도 읽지 않는다. 이제 서른 살쯤 되고서야 비로소 ‘작은’ 것을 참말 작게 글쓰기로 담는 눈길을 조금 연다.


  곰곰이 돌아보면, 내가 글쓰기를 열아홉 살에 할 수 있던 까닭은, 내 둘레에 있던 ‘큰’ 것 가운데 텔레비전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열아홉 살부터 텔레비전을 안 보았기에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스물다섯 살에 ㅈㅈㄷ신문을 모두 끊으며, 시나브로 내 삶길에서 붙잡을 글쓰기를 헤아릴 수 있었다. 서른 살에 다른 모든 신문 아낌없이 끊으며, 작은 것을 쓰는 삶길 바라볼 수 있었다. 다만, 바라보기는 하되, 아직 사랑하지는 못했다.


  서른네 살 무렵, 큰 것을 살짝 건드리다가 그만 살림 쫄딱 무너질 뻔했다. 서른아홉 살 된 오늘, 나는 맨 처음부터 작은 것 아니고서는 글쓰기를 할 수 없던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작은 것 쓰는 사람이 되려고, 지난 스무 해를 살았을까. 이제부터 작은 것 조곤조곤 쓰는 길 신나게 걷자며 지난 스무 해 있었을까.


  날마다 작은 것 사랑하며 작은 것 노래하고 작은 것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데, 틈틈이 나더러 작은 것 이제는 그만 쓰고 큰 것 쓰라 하는 사람 있다. 나쁜 뜻 아닌 참 좋은 뜻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그런데, 나는 작은 것이 참 좋다. 나한테는 작은 것이 꼭 걸맞는다. 작은 것을 말해도 얼마든지 큰 것을 빗댈 수 있기도 하고, 작은 것을 말하면서 지구별 이웃하고 사귈 수 있다. 작은 것을 말하면서 어느 결에 먼먼 옛날 옛적 내 한아비를 떠올리기도 한다. 작은 것을 말하던 어느 날, 아하 하면서 내 어머니 어린 나날을 그리고 내 어머니 나와 형을 낳아 돌보던 모습을 되새긴다.


  큰 것을 쓰면서도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 젊은 나날이나 어린 나날 헤아려 볼 수 있을까. 큰 것을 쓰다가도 우리 형 어린 나날이나 우리 옆지기 어린 나날 돌아볼 수 있을까. 아무렴, 하려면 할 수 있으리라. 큰 것을 쓰는 동안 우리 아이들하고 싱그럽게 웃으며 놀 수 있겠지. 아무렴, 하고프면 할 수 있을 테지.


  큰 신문사에서 기자를 할 수 있었고, 큰 신문사에서 큰 이름과 큰 돈과 큰 힘 거머쥘 수 있었다. 시골자락 시골사람으로 지내는 오늘 되돌아보면, 큰 신문사와 큰 기자와 큰 글쟁이 안 된 대목이 바로 내 오늘 일구는 사랑스러운 밑거름 되었다고 느낀다. 큰 글을 썼다면, 글을 쓰다가도 아이들 오줌기저귀를 간다든지 똥바지 갈아입히고 손빨래 한다든지, 하루 두 끼니 밥 차리느라 글쓰기 젖힌다든지, 아이들과 놀고 시골도서관 꾸리면서 헐레벌떡 하루하루 눈알 핑핑 돌아가는 나날 보낼 수 없었으리라. 큰 글을 썼다면, 자전거마실 누리며 두 아이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며 봄들 여름숲 가을메 겨울시골 즐기지 못했으리라. 큰 글을 썼다면, 우리 옆지기는 나랑 두 아이 시골집에 두고 스무 날 남짓 혼자 미국까지 공부하러 다녀오지 못했겠지. 큰 글을 썼다면, 그야말로 반쪽이조차 아닌 반반쪽이나 반반반쪽이마냥 서울에 남아 시골자락 숲지기 삶은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는 문자중독자 되었으리라 느낀다.


  작은 글 보듬으며 달빛 누린다. 작은 글 어루만지며 풀잎노래 듣는다. 작은 글 쓰다듬으며 제비똥 바라본다. 작은 글 얼싸안으며 쑥 뜯으며 쑥국 끓인다. 우리 아버지 오랜 글동무이자 동시와 동화 꾸준히 쓰는 고향동네 어르신이 몇 해 앞서 막걸리 한 사발 나한테 따라 주며 들려준 말, “왜 자네는 작은 것만 쓰나?” 하는 물음에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야기 한 자락 들려줄 수 있네. 4346.4.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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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2 10:54   좋아요 0 | URL
'작은 것이 아름답다'.-*^^*

숲노래 2013-04-12 11:42   좋아요 0 | URL
'살아가는 이야기(일상)'는 작은 것이라서
삶 이야기를 쓰면
'문학이 안 된다'고들 말하더라고요.
그래... 그러면 저는 문학은 안 하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