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0) -의 : 창작하려는 자의 새로운 눈뜨기

 

동화는 서사문학이라서 기본적으로는 소설 창작과 같은 맥락이지만, 독자 대부분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창작하려는 자의 새로운 눈뜨기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황선미-동화 창작의 즐거움》(사계절,2006) 5쪽

 

  ‘서사문학(敍事-)’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기록문학(記錄-)’이라 풀이합니다. ‘기록하다’는 ‘적다’를 한자말로 옮긴 낱말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다시 ‘서사(敍事)’를 찾아봅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음”을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꾸밈없이 쓰는 문학”을 서사문학이나 기록문학이라 일컫는 셈입니다.


  ‘기본적(基本的)으로는’은 ‘밑바탕은’이나 ‘밑틀은’으로 다듬고, “소설 창작(創作)과 같은 맥락(脈絡)이지만”은 “소설 쓰기와 같은 흐름이지만”이나 “소설 쓰기와 비슷하지만”이나 “소설 쓰기와 같다 할 만하지만”으로 다듬습니다. “독자(讀者) 대부분(大部分)이”는 “읽는 사람 거의 모두가”나 “읽는 사람이 거의 다”로 손보고, “어린이라는 점(點)에서”는 “어린이라는 대목에서”나 “어린이인 만큼”이나 “어린이이기 때문에”로 손봅니다. “창작(創作)하려는 자(自)”는 “글을 쓰려는 사람”이나 “동화 쓰는 사람”으로 손질하고, “새로운 눈뜨기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새롭게 눈을 떠야만 한다”로 손질합니다.

 

 창작하려는 자의 새로운 눈뜨기가 이루어져야만
→ 글 쓰는 사람이 새롭게 눈을 떠야만
→ 글을 쓰는 사람은 눈을 새롭게 떠야만
→ 글을 쓰려면 새롭게 눈을 떠야만
→ 글을 쓸 때에 새롭게 눈을 떠야만
 …

 

  이 보기글을 쓴 황선미 님은 동화를 쓸 때에 이러한 글투로는 안 쓴다고 느껴요. 그런데 문학비평을 하거나 문학이론을 들려주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이러한 글투를 보여줍니다. 문학과 평론은 다르기 때문일까요. 문학을 하는 마음과 이론을 밝히는 넋이 다르기 때문인가요.


  어린이문학은 어린이가 읽는 만큼, 어린이가 잘 알아듣도록 쓰는 한편, 맑고 밝은 한국말을 살리려 힘쓰지만, 문학평론이나 문학이론은 어린이 읽는 만큼, 어른이 으레 쓰는 말투로 글을 써야 옳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왜 어른들은 이와 같은 말투로 글을 쓰거나 글을 읽나요. 알맞고 바르며 쉽게 글을 쓰면 안 될까요. 어린이문학에서 쓰는 말투처럼 어른들도 삶을 밝히거나 나눌 때에 한결 아름다울 텐데요.


  어린이문학에서 글을 얄궂게 쓰면, 어린이가 얄궂은 말투에 길듭니다. 어른문학에서 글을 얄궂게 쓰면, 어른이 얄궂은 말투에 물듭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얄궂은 말투에 젖어들 때에 슬픕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름다운 말투를 누리면서 착하며 참다운 말길 열 때에 즐겁습니다. 4346.4.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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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꾸밈없이 적는 문학이라서, 밑바탕은 소설과 같다 할 만하지만, 읽는 사람이 거의 다 어린이인 만큼, 글을 쓰는 사람이 새롭게 눈을 떠야만 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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