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숟가락 2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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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27

 


서로 동무로 지내는 삶
― 은빛 숟가락 2
 오자와 마리 글·그림,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2013.2.10./5000원

 


  하늘빛은 하늘빛이라는 낱말이 아니고는 달리 가리킬 수 없습니다. 해는 햇빛이라는 낱말일 때에 비로소 나타낼 수 있어요. 물은 물빛이고, 흙은 흙빛입니다. 낯은 낯빛이고, 눈은 눈빛이에요.


  복숭아는 복숭아빛이라 할밖에 없습니다. 살구는 살구빛, 앵두는 앵두빛, 개나리는 개나리빛, 진달래는 진달래빛, 이렇게 말해야 비로소 참빛을 일컫는 셈입니다.


  너른 들을 바라봅니다. 봄날 들판은 어떤 들빛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그래, 봄날 들판이라면 봄들빛 될 테지요. 여름에는 여름들빛이요, 가을에는 가을들빛, 겨울에는 겨울들빛이에요. 참말 이 낱말 아니고는 가을날 눈부시게 물결치는 나락논 빛깔을 가리킬 수 없어요. 나락을 베고 난 겨울들은 겨울들빛이라 할밖에 없고, 겨울 지나 봄이 다가오며 푸릇푸릇 새 풀 돋으며 노르스름한 들판에 포근한 기운 감도는 빛깔은 봄들빛 한 마디로만 나타낼 만합니다.


  아이들 웃음짓고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아, 너희들 웃음은 웃음빛이지? 아버지가 너희한테 차려서 내주는 밥상은 밥빛이라 할까?


  따사로운 마음은 마음빛입니다. 넓고 깊은 생각은 생각빛입니다. 너그러우면서 포근한 사랑은 사랑빛이지요. 아끼고 보듬는 좋은 믿음은 믿음빛이 돼요. 곧, 우리들은 누구나 사람이라는 목숨이니, 사람빛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 “그치만 커스터드 크림 만드는 방법이 적힌 부분에 슈크림은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고 쓰여 있어.” “무슨 뜻일까?” “난이도가 높은 거 아냐?” (16쪽)
- “동생들이랑 지내느라 힘들지 않았니?” “아뇨. 시라베도 카나데도 자기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고, 집안일도 나눠서 했거든요. 의외로 괜찮았어요.” (39쪽)


  반가운 벗을 만납니다. 함께 일하는 벗은 일벗입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삶을 북돋우는 벗은 이야기벗이요 삶벗입니다. 도란도란 말을 섞는 벗은 말벗 되고, 밥 한 끼니 즐거이 나누는 벗은 밥벗입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살아가느라 글월 써서 주고받으니 글벗이에요. 한식구 이루어 살아가는 짝꿍, 곧 옆지기이자 곁지기는 사랑벗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버이와 아이는 일벗도 되고 놀이벗도 되며 이야기벗이나 삶벗이나 말벗이나 밥벗이나 글벗까지 되어요. 그 어느 벗보다 가까이에 있으면서 서로 사랑과 꿈을 나누는 사이가 어버이와 아이로구나 싶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아끼고, 아이로서 어버이를 섬깁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모시고, 아이로서 어버이를 돌봅니다. 아이들은 큰힘을 못 내어 무거운 짐 못 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굳이 무거운 짐 날라야 하지 않아요. “아버지 힘들어요?” 하고 살며시 묻는 말 한 마디로 어버이는 새힘을 냅니다. “아버지 함께 놀아요!” 하고 까르르 부르는 말 한 마디로 어버이는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아이들이 벼락돈을 깜짝깜짝 벌어들여 선물해야 어버이가 기운을 내지 않아요.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거나 노래꾼이 되어야 어버이가 힘을 얻지 않아요. 옆에서 빙그레 웃기만 해도, 개구지게 놀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져서 어버이가 품에 안아야 하기만 해도, 어느 어버이라도 애틋하게 삶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 “리츠 오빠가 없어도 어떻게든 된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래! 마음 놓고 수험공부 하게 해 주자!” (47쪽)
- “대단한 얘기 못 해 줘서 왠지 미안하네.” “아냐.” “근데 앞으로도 대단한 말은 못해 줄지도 모르지만, 얘기는 뭐든 들을게.” “응, 고마워.” (86쪽)


  나무하고 나는 서로 벗입니다. 풀하고 나는 서로 벗입니다.


  시골에 있건, 서울로 볼일 보러 나오건, 늘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왜냐하면, 하늘 또한 나와 서로 벗이에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촘촘히 발라 빈틈 하나 만들지 않으려는 서울 큰길이나 골목길 거닐다가 풀포기를 보면 걸음 멈춥니다. 가방 내려놓고 쭈그려앉습니다. 예쁜 풀아, 여기에서 누구한테 네 푸른 기운 나누어 주면서 자라니?


  낮하늘은 낮하늘빛입니다. 밤하늘은 밤하늘빛입니다. 봄나무는 봄나무빛입니다. 겨울나무는 겨울나무빛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모르게 자꾸자꾸 새 낱말 빚습니다. ‘낮’이나 ‘하늘’이나 ‘빛’이라는 낱말은 먼먼 옛날 내 할매와 할배가 지었을 테고, 오늘 나는 이 낱말을 엮어 ‘낮하늘빛’이라는 새 낱말 짓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사랑을 품으면 내 말빛은 사랑빛입니다. 사랑스레 하는 말은 사랑말이니, 이 사랑말은 사랑말빛이 되지요. 사랑 가운데에서도 참사랑을 찾으면서 이루려 할 적에는 참사랑말빛으로 나아가요.


  봄나무빛 누리면서 생각합니다. 봄풀빛 마주하며 생각합니다. 봄꽃빛 바라보고 까르르 웃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생각합니다. 봄에 사랑을 하는 이들은 봄사랑 담아 봄사랑꽃을 바라보겠지요. 봄에 사랑을 맺는 이들은 봄사랑빛을 퍼뜨리겠지요. 봄에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은 봄사랑이야기 들려주겠지요. 봄에 사랑을 꿈꾸는 이들은 봄사랑노래 부르겠지요.


- ‘피가 어떻다는 둥, 그런 바보 같은 얘기는 믿지 않았다.’ (63쪽)
- “호적등본을 뗀 것도, 단지 외숙모의 말에 질질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지, 이런 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의심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가족 그 자체였다는 뜻이잖아? 그렇다면, 아무것도 예전이랑 달라진 건 없는 거잖아. 지금까지처럼 지내도 상관없는 거 아냐?” (82∼83쪽)


  모든 아름다운 말은 내 가슴속에서 자라납니다. 어느 대단한 학자라야 짓는 말이 아니에요. 학교 문턱 못 밟은 시골 할매라서 못 짓는 말이 아니에요. 가슴속에 사랑을 품는 사람일 때에 말을 짓습니다. 가슴속에 사랑을 품지 못하기에 자꾸 어려운 한문이나 서양나라 영어랑 프랑스말 끌어들여 겉치레 자랑을 하고 말아요.


  사랑을 품는 사람은 밥 한 그릇 지을 적에, 그저 쌀이요 보리요 수수요 있지만, 고소하며 맛깔나게 밥 한 그릇 차릴 수 있습니다. 나물이나 김치 반찬만 있어도, 사랑 품어 차리는 밥은 누구라도 맛나게 먹으며 씩씩하게 기운을 얻어요. 대단한 오페라 가수가 불러 주어야 노래가 아니에요. 여느 수수한 할매가 투박한 목소리로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자장노래 한 가락이 아름답지요.


  사진작가한테 맡겨야 우리 식구 사진을 멋있게 찍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웃고 노는 삶 한 자락 살며시 한 번 찍으면 멋있으며 아름다운 사진 하나 태어납니다.


- “하지만 이름은 벌써 정했단다. 리츠(律)라는 글자는 선율(旋律)의 율이니까, 시라베(調)나 카나데(奏)처럼 음악에 관련된 이름으로 지을 생각이야.” “선율?” “멜로디 말야. 피아노학원에서 여러 가지 멜로디를 연주하잖아?” “리츠라는 글자는 멜로디의 ‘멜로’야?” “음, 굳이 말하자면 ‘디’일까나? 어느 쪽이든 엄마가 사랑하는 귀여운 멜로디란다.” (90∼91쪽)
- “여기에서 곧장 가면 리츠 오빠가 일하는 편의점인데?” “응? 아. 그러네.” “엄마, 혹시 매일 밤 여기를 지난 거야?” “운동 코스잖니.” (110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빚는 아름다운 삶에서 아름다운 사랑이 태어나 아름다운 꿈이 자라나는 이야기를 만화책 하나에서 읽습니다.


  우리 둘레에도 이렇게 따사로운 사랑 누리는 이웃 있어요. 먼먼 어느 둘레를 찾지 않더라도, 바로 내 보금자리가 따사로운 사랑입니다. 누구나 이녁 보금자리를 스스로 따사롭게 돌봅니다. 아직 서툴거나 어수룩하다면, 이제부터 알뜰살뜰 어여삐 꾸리면 됩니다. 여태껏 엉터리였거나 바보스러웠으면, 바로 오늘부터 야무지고 당차게 일구면서 예쁘게 가꾸면 돼요.


- ‘맛있는 이유는 알고 있어. 리츠 형 자리에 리츠 형이 앉아 있고, 엄마 자리에 엄마가 앉아서 가족이 다 함께 먹기 때문이야.’ (123∼124쪽)
- “부모는 아이를 선택할 수 없고, 아이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지만, 네 부모님이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널 선택한 것처럼, 너도 네 부모님을 선택했구나.” (173쪽)


  하룻밤 백만 원짜리 호텔에서 묵어야 식구들이 웃지 않습니다. 열일곱 평 조그마한 시골집 조그마한 방 한 칸에 네 식구 올망졸망 뒤섞여 함께 잠자리에 들어도 식구들은 웃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웃고, 사랑이 없으면 못 웃습니다. 꿈이 있으면 웃음을 빚고, 꿈이 없으면 웃음을 못 빚어요. 생각을 곱게 건사하면서 삶을 빛내고, 생각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거나 잊어버리면 삶 또한 아무렇게나 흐릅니다. 나도 당신도 이 삶에서 가장 즐겁게 웃으면서 누릴 이야기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넉넉한 손길로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3.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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