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 사람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3
토미 웅거러 / 비룡소 / 1996년 1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8
봄이 오는 소리
― 달 사람
토미 웅거러 글·그림,김정하 옮김
비룡소 펴냄,1996.2.5./8500원
설이 지나가며 봄이 오는 소리 한결 짙습니다. 북녘은 아직 춥겠지만 남녘은 퍽 포근합니다. 봄을 시샘하는 듯 살짝 찬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찬눈 아닌 찬비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비가 온 들과 숲과 바다를 적십니다. 겨울 막바지 보드라운 빗줄기는 바람 없이 고즈넉하게 찾아듭니다.
비 그친 이듬날 들판에는 새봄에 피어날 들꽃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겠지요. 구름 걷히고 햇볕 드리우면, 겨우내 웅크리던 나무들도 새눈을 트고 새잎을 내겠지요.
아이들 옷은 가벼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내 옷도 옆지기 옷도 홀가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할 만할 테고, 이불 한 채 빨아도 곧 마를 테며, 겨울에 입던 두툼한 겉옷도 차근차근 빨고 말려 옷시렁에 건사할 테지요.
봄은 봄바람처럼 포근하게, 천천히, 나긋나긋, 살며시 찾아옵니다.
.. 별이 반짝이는 맑은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세요. 달 사람이 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른어른 비친답니다 .. (1쪽)
가을걷이 끝나 꽁댕이만 가득하던 논자락에 낀 얼음이 하나씩 둘씩 깨집니다. 논자락 얼음이 촤라락 껑껑 소리를 내며 깨집니다. 아이들과 논둑에 서서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논자락마다 얼음은 모두 깨지고 녹아 논흙을 보드랍게 어루만지리라 생각합니다. 햇살이 더 따스하게 비추면 유채풀이 자라고 자운영이 자랍니다. 들판마다 노란 물결이 출렁이고 진달래처럼 고운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올해에도 새봄에 새빛을 한껏 누리겠구나 싶습니다. 봄빛은 즐거운 선물입니다.
.. 며칠 지나서 초승달이 되자, 달 사람도 초승달만 해졌어요. 두 주일이 지나자, 달 사람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어요 .. (21쪽)
언제부터인가, ‘봄은 백화점 에누리 소식과 함께 찾아온다’와 같은 말이 퍼지는데, 참말 서울에서는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또 여름과 가을은 여름과 가을대로 ‘백화점 에누리’처럼 찾아드는구나 싶어요. 날씨로 맞이하는 철이 아니라, 바람과 햇살로 누리는 철이 아니라, 서울에서는 물질과 물건과 문명으로 달력 숫자를 셉니다.
누군가는 너무 바쁜 나머지 달력 숫자조차 못 세면서 봄을 맞이할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달력 숫자를 세면서도 봄인 줄 못 깨달을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여름이나 가을이 되어서야 ‘어라, 봄이 지나갔네.’ 하고 돌아볼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새봄이 찾아왔다가 여름과 가을 지나 겨울이 닥치더라도 봄이 지나간 줄조차 헤아리지 않고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봄이고 무엇이고 안 따지며 살아갈는지 몰라요.
봄 어귀에 생각합니다. 봄 들머리에 구름바라기와 별바라기를 하며 생각합니다. 내 살가운 이웃 누구나 이 봄에 기지개 켜고 두 팔 벌려 하늘 너르게 안기를 바라며 생각합니다. 자, 발걸음 멈추어요. 천천히 쪼그려앉아요. 발 언저리를 살펴봐요. 푸릇푸릇 돋는 봄풀을 느껴요. 보드라운 흙을 손가락으로 파서 봄풀을 캐요. 호미 없어도 돼요. 손가락으로도 넉넉해요. 아니, 새봄 새풀은 손가락으로 캐요. 손가락마다 봄흙을 묻히면서 봄풀을 얻어요. 흐르는 도랑물에 봄풀 흙기운을 털어 천천히 먹어요. 겨울빛 사그라드는 봄맛을 누려요. 온몸으로 봄소리를 듣고, 온마음으로 봄노래를 불러요. 온빛을 맞아들여 온넋을 맑게 보살펴요.
따사로운 봄날 따사로운 봄마음 되어, 따사로운 이야기를 꽃피우고 따사로운 손길로 나무를 쓰다듬어요.
.. 박사는 달 사람에게 우주선의 첫 번째 손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지요. 달 사람은 기꺼이 우주선을 타겠다고 대답했어요. 결코, 지구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 (31쪽)
토미 웅거러 님이 빚은 그림책 《달 사람》(비룡소,1996)에 나오는 ‘달 사람’은 지구별 사람들 따사로운 봄잔치에 나들이를 하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새봄을 새롭게 즐기는 지구별 사람들하고 기쁘게 노닐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봄이 와도 봄인 줄 모르는 채 서울에서 복닥복닥 치대는 지구별 사람들이 아닌, 봄이 오기에 봄이로구나 노래하며 숲에 깃들어 춤추고 활짝 웃는 지구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퍼질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솟구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반가울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빛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사랑스레 스며들까요.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찰랑, 봄이 오면 하늘은 몽실몽실몽실, 봄이 오면 냇물은 쫄랑쫄랑쫄랑, 봄이 오면 멧새는 찌륵찌륵찌륵, 온누리가 환하고 싱그럽습니다.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