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14] 층집읽기
― 아파트에서 놀 수 없는 아이들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집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실컷 뛰고 노래하며 구릅니다. 집안에서건 마당에서건 뒷밭에서건 논둑에서건 들판에서건 숲속에서건, 아이들은 뛰고 싶은 대로 뛰며, 노래하고 싶은 대로 노래하다가는, 구르고 싶은 대로 굴러요.
내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나는 골목동네에서 실컷 뛰고 노래하며 굴렀습니다. 몸이나 옷이 흙투성이가 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들어가기 앞서 ‘아차, 오늘도 옷이 지저분하네.’ 하고 생각하면서 흙을 터느라 바빴어요. 어머니는 당신 아들내미가 또 옷을 다 더럽히고 들어온 줄 뻔히 알아챕니다. 땀에 절고 흙에 절어, 겉보기로 흙기운 털었다 하더라도 땀내음과 흙내음이 물씬 풍기니까요.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옷차림을 보면 아주 말끔합니다. 옷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예전처럼 흙길이 있는 도시는 없고, 시골에서도 흙길을 시멘트로 덮으니까, 아이들 옷에 흙 묻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 할 텐데, 아이들은 시멘트길에서든 흙길에서든 놀 겨를이 없곤 해요. 학원에 다니거나 방과후학교에서 지내느라 바쁜 오늘날 아이들이에요. 신나게 뒹굴거나 구르거나 뛰놀면서 옷과 몸이 흙투성이 되는 일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방방 뛰고 싶은데 뛸 자리가 없으면, 아이들은 집에서라도 뛰고 싶습니다. 뜀박질과 달음박질로 땀을 흘리고 싶은데, 학교나 학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얌전히 앉아 텔레비전만 바라보아야 한다든지 이런 영어교육이나 저런 학습지도에 따라야 한다면, 아이들은 온몸에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합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뛰거나 구르려 합니다. 도시에서는 저녁이건 밤이건 바깥이 전깃불로 환하니 아이들이 일찌감치 잠들지 않아요. 게다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저녁에 일찍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누우려 하지 않아요. 도시 어른들은 저녁 예닐곱 시면 ‘아직 낮’으로 여겨요. 도시 어른들은 저녁 열 시가 넘어도 ‘아직 저녁이 아니라’고 여겨요.
도시 아파트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저녁 아홉 시나 열 시나 열한 시까지도 콩콩 뛸밖에 없습니다. 도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웃집이나 아랫집 아이들이 참말 늦은 밤에까지 콩콩 쿵쿵 쾅쿵 우르르 소리를 내며 뛰거나 내지르는 소리에 들볶일밖에 없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도시에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뛸 터가 없어요. 조금이나마 빈 터가 있으면 자동차를 대는 도시예요. 아주 작은 빈 터조차 무슨 물건을 놓거나 가게를 차리거나 하는 도시예요. 흙이 몽땅 사라지는 도시이면서, 비어서 한갓진 터조차 없는 도시예요. 또한, 조금 빈 으슥한 데는 중·고등학교 푸름이들이 어른 몰래 담배 태우는 자리가 돼요. 아이들은 이래저래 놀 자리, 뛸 자리, 쉴 자리, 뒹굴 자리 없어요. 흔히 말하는 ‘층간소음’은 도시 얼거리 스스로 빚는 끔찍한 괴로움이에요. 도시에서 아이들이 놀 자리 쉴 자리 뛸 자리 있으면, 집에서 안 뛰어도 돼요. 집에서 뛰고 싶으면 바깥에서 한참 뛰다 들어오면 되거든요. 저녁 아홉 시나 열 시라 하더라도, 집 바깥 놀이터나 마당이나 빈 터에서 공차기를 하든 줄넘기를 하든 배드민턴을 하든 무얼 하든, 한참 땀을 쏟고 나서 집으로 들어오면 돼요. 그러나, 생각해 봐요. 오늘날 어느 도시 어느 아파트나 골목동네 한켠에 ‘한갓지게 비었으면서 늦은 저녁에 아이들이 걱정없이 뛰놀 자리’가 있는가요. 아이들은 다세대주택에서건 아파트에서건 ‘층을 이룬 집’에서 콩콩콩콩 뜁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쿵쿵쿵쿵 소리를 낼 적마다 뿔이 납니다. 아이들은 우당탕탕 꺅꺅 소리를 지르며 ‘갑갑한 속을 풀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리 뒹굴거나 저리 뛸 적마다 골이 아픕니다.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놀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 없는 아파트는 어른들 또한 놀 수 없는 자리입니다. 어른들이 술잔치를 벌인다 하더라도 아하하하 까르르르 웃음보 터뜨리면서 노래 몇 가락 뽑을 수 없어요. 어른들이 밤 열두 시나 새벽 두어 시에 노래를 부르면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 어찌 될까요.
층으로 쌓는 집 아닌 마당을 두는 집을 마련해야 어른도 아이도 숨통을 트리라 생각합니다. 층으로 쌓는 집 아닌 마당을 두는 집을 마련하면서, 마당 한켠에 나무를 심어 돌보고, 마당 또한 시멘트로 바닥을 대지 말고 흙으로 바닥을 살려 빗소리와 눈소리를 새록새록 누릴 수 있어야,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숨결을 살리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층집을 세우지 않았어요. 한겨레는 예부터 누구나 흙땅 딛고 살았어요. 한겨레는 예부터 누구나 흙을 만지며 숨을 쉬고, 흙에 몸을 눕혀 살았어요. 한겨레는 예부터 어른도 아이도 흙하고 한몸이 되어 넋과 얼을 살찌웠어요. 층집이 늘면 늘수록 한겨레 삶자락은 더 메마르거나 차갑거나 갑갑하거나 쓸쓸하게 뒤틀리겠다고 느낍니다. 4346.2.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