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2.6.
: 들바람과 구름
- 아침을 차리는데 작은아이가 메추리알만 쏙 골라먹었다. 큰아이더러 함께 밥상 앞에 앉은 다음 먹자 이야기하는데, 작은아이는 아버지와 누나 몰래 메추리알만 골라먹었다. 큰아이가 “달걀(메추리알) 어디 갔어?” 하고 말할 때에 비로소 알아챈다. 작은아이는 실실 웃으며 옆방으로 내뺀다. 어쩜 나날이 개구쟁이 짓만 하니. 큰아이는 한 알도 못 먹었는데 작은아이가 낼름 다 먹는 통에, 아무래도 큰아이한테 미안하구나 싶어, 면소재지 마실을 가서 메추리알을 사다가 다시 감자메추리알 삶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되게 불지만, 겨울바람이니 되게 불지, 하고 생각한다.
- 설을 앞두고 다시 찾아오는 추위에 자전거를 몬다. 수레에 앉은 아이들은 추우면서도 “아아아아!” 소리 지르면서 잘 논다. 큰길 말고 논둑길로 달린다. 논둑길을 지나 이웃마을 안길로 달린다. 마늘밭 사이로 달린다. 마늘밭 한쪽에 배추를 나란히 심은 모습을 본다. 큰아이가 “왜 길에 저걸 심었어?” 하고 묻는다. “먹고 싶으니 배추를 심었지.” 하고 이야기한다. 자전거를 멈추고 마늘밭 배추 사진을 찍는다. 조용하다. 큰아이한테 “조용하지? 조용한데 무슨 소리가 들리지?” 하고 묻는다. “응, 조용해. 멍멍이 소리가 들려. 새 소리도 들려.” 개 짖는 소리와 멧새 날아가며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여기에 바람 부는 소리. 새삼스럽지 않지만, 자동차 없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는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 면소재지 가게에서 메추리알 세 꾸러미 산다. 설에 들고 가려고 면소재지 술공장에서 빚은 유자막걸리 두 통을 산다. 아이들은 배가 안 고픈지 가게에 왔는데 과자를 집지 않는다. 좋다. 집에서 배를 채우고 나오니 이렇게 되는구나. 두 아이는 가게 골마루에서 기고 숨고 뛰며 논다. 너희는 어디에서건 스스럼없이 잘 노는구나. 좋아, 좋아. 그렇게 놀면서 크면 즐겁지.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맞받아친다. 수레에 앉은 두 아이 얼굴이 새파랗게 얼면서 떨떠름한 빛이다. 춥지? 겨울이니 춥고, 시골이니 더 춥단다. 너희는 시골 아이들이니,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씩씩하게 크기를 빈다. 너희 아버지는 이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끌어. 앞으로는 찬바람 맞으며 몸이 얼고, 등판은 맞바람 헤치며 자전거 끄느라 땀이 줄줄 흐른단다.
- 구름을 바라본다. 마침 오늘 《하늘에 수놓은 구름 이야기》(임소혁 사진)라는 사진책을 읽었다. 구름을 이야기하는 사진책에 실린 온갖 구름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 싱싱 부는 오늘, 그야말로 갖가지 구름이 하늘 가득 흐른다. 내 마음속에 구름이 가득하니 하늘에도 구름이 가득한가. 아이들은 수레에서 바람에 덜덜 떨기에, 아버지가 구름 보면서 가자 하고 말해도 고개를 들어 하늘 볼 생각을 않는다. 그래, 너희는 추위를 견뎌라. 아버지가 실컷 구름을 마음에 담아 너희한테 나누어 줄게.
- 마을논 한켠에 선 빗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빗돌 둘레에 유채꽃이 피었다가 진다. 포근한 날씨에 홀로 먼저 피었다가 찬바람 맞으며 그예 시든다. 괜찮아. 이렇게 시들면서도 너는 네 새 숨결을 씨앗에 담아 알뜰히 맺고는 조용히 스러지겠지. 네 몸이 거름이 되어 네 씨앗이 즐겁고 튼튼히 자라도록 돕겠지.
- 집에 닿을 무렵 큰아이가 수레에 기대어 자는 척을 한다. 아버지는 뒷거울로 큰아이 자는 시늉을 빤히 바라본다. 작은아이를 번쩍 안아서 내린다. 큰아이는 살며시 안아서 방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너 안 자는 줄 다 알아.” 하고 말하며 번쩍 안는다. 큰아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아 추워, 아 추워.” 하고 노래를 한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