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에서 읽는 책
시골 이웃이 손수 지은 흙집을 바라본다. 이 집을 지으며 얼마나 기쁜 넋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햇살을 먹고 바람을 마시는 흙집이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흐르면서 천천히 숲에 녹아드는 결을 느낀다. 도시에 숱하게 올라서는 아파트는 서른 해쯤 지나면 와르르 허물어야 하는데, 허물어 다시 짓고 또 허물어 다시 짓는 시멘트집은 얼마나 끔찍한 쓰레기가 끝없이 쏟아지는가.
백 해나 이백 해를 살아낸 흙집을 허물어야 하면, 흙은 흙으로 돌아가고, 나무는 땔감이 되며, 돌은 다시 주춧돌이나 섬돌이 되면서, 때로는 울타리 쌓는 돌 구실을 한다. 흙집에서는 쓰레기가 나올 수 없다. 흙집을 허물어 새로 지어야 할 무렵, 흙집 둘레 숲에는 백 해나 이백 해쯤 너끈히 살아낸 굵직한 나무가 있을 테니, 이 나무를 베어 새로운 흙집을 지을 수 있다.
책이란 한 번 읽고 버리는 종이쓰레기가 아니다. 종이에 글을 얹은 책이란, 두고두고 읽거나 새기면서 오래오래 마음을 북돋우는 이야기밥이다. 집이란 돈(재산)이 아니고, 집을 돈(부동산)으로 여길 수 없다. 집은 삶을 보듬는 넋이고, 집은 삶을 사랑하는 길을 여는 벗이다. 책은 삶을 보듬는 얼이요, 책은 삶을 사랑하는 길을 여는 이웃이다.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