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0) 분하다憤/忿 1 : 분해 한다

 

우리는 불행과 절망에 대해 분노하고 속임수, 사기를 당한 것같이 분해 한다
《김원숙-그림 선물》(아트북스,2011) 284쪽

 

  “불행(不幸)과 절망(絶望)에 대(對)해”는 어떤 마음을 가리킬는지 헤아려 봅니다. ‘불행’은 흔히 ‘행복(幸福)’과 맞서는 낱말로 여깁니다. ‘행복’은 ‘즐거움’을 한자로 옮긴 낱말입니다. 즐거움과 맞설 만한 마음이라면 ‘괴로움’쯤 되겠지요. 즐거움과 비슷한 마음은 기쁨입니다. 기쁨을 헤아리면 ‘슬픔’을 떠올릴 수 있어요. ‘절망’은 ‘희망(希望)’이 끊어진 모습을 가리킵니다. 곧, 희망이 없는 모습이요, 꿈이 없는 모습이 되겠지요. 벼랑에 내몰린다든지 마음이 무너졌다고 할 만합니다. 말뜻을 돌아보면, 이 대목은 “괴로움과 아픔을”이라든지 “슬픔과 아픔을”이라든지 “괴롭고 꿈이 사라졌을 때”로 손볼 수 있습니다.


  ‘사기(詐欺)’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보기글은 “속임수, 사기를 당(當)한 것같이”로 나오는데, 겹말입니다. “속임수에 넘어간 듯이”로 손질합니다. ‘분노(憤怒)’는 “몹시 성을 냄”을 뜻하는 한자말이에요. 그러니까 ‘분노하고’는 “몹시 성을 내고”나 “몹시 싫어하고”로 다듬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분(憤/忿)하다’는 “(1) 억울한 일을 당하여 화나고 원통하다 (2) 될 듯한 일이 되지 않아 섭섭하고 아깝다”를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성나다’요 ‘섭섭하다’나 ‘아깝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말로 ‘성나다’라 하면 될 텐데, 이런 외마디 한자말을 쓰는 셈이고, ‘섭섭하다’나 ‘아깝다’나 ‘서운하다’ 같은 말을 써야 할 자리에 이런 외마디 한자말이 끼어드는 꼴입니다.

 

 속임수, 사기를 당한 것같이 분해 한다
→ 속임수에 넘어간 듯이 골을 낸다
→ 속임수에 넘어갔다며 성을 낸다
→ 속임수에 넘어갈 때처럼 울컥 한다

 

  어릴 적부터 ‘성’과 ‘골’이라는 말을 썼고, 이와 아울러 ‘분(憤/忿)’과 ‘화(火)’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린 우리들도 이런 말을 썼고, 어른들도 이런 말을 썼어요. 어린 우리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이런 말 저런 말을 배웁니다. 어른들도 아마 당신이 어릴 적 당신 둘레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겠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성·골’하고 ‘분·화’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가늠하지 못했어요. 어른들부터 어느 쪽이 한국말이고 어느 쪽이 한자말인지 몰랐구나 싶어요. 어른들부터 당신 어릴 적에 이런 말 저런 말 들으면서 옳고 바르게 말쓰임새를 가다듬지 않았구나 싶어요. 알맞게 쓰는 말을 살피지 않은 어른들이지요. 슬기롭게 나눌 말을 생각하지 못한 어른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함부로 어른들 탓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어릴 적 어른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말을 빼앗긴 채 일본말을 써야 했어요. 일제강점기에 한국말을 빼앗긴 옛 어른들은 당신 아이들한테 한국말 아닌 일본말을 가르쳤고, ‘한국말 아닌 일본말을 배운’ 지난날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한테 ‘한국말다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에 찌들거나 짓밟힌 한국말’을 가르쳤어요. 망가진 한국말을 살리지 않고 가르쳤지요. 무너진 한국말을 되살리지 않고 가르쳤지요.


  오늘날에 이르러도 슬픔은 가시지 않습니다. 아직도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되찾지 못해요. 앞으로도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되살리자면 아득해 보입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사랑하고 아끼는 흐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한국 사회는 영어능력과 한자능력 키워 자격증이나 급수증 따는 데에 휘둘려요. 아이들이 한국말 아름답게 배우도록 이끄는 어른이 드물어요. 어른부터 스스로 한국말 아름답게 새로 익혀 즐겁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품지 못해요.


  갑갑한 노릇이거나 가슴을 칠 만한 노릇일 텐데, 성을 내는 사람도 없고 골을 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슬프다 여기는 사람도 없고, 안타깝다 여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4346.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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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괴롭거나 꿈이 무너질 때에 몹시 성을 내고, 속임수에 넘어간 듯이 골을 낸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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