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는 글쓰기

 


  고흥에서만 살고 보면, 이웃한 순천이나 장흥으로 가더라도 숨이 막히는구나 싶습니다. 바람이 다르고 물과 햇살이 다르니까요. 고흥으로 오기 앞서 인천에서 살던 때를 떠올립니다. 인천에서 옆지기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인천에서 골목마실을 하며 골목밭이나 골목꽃을 누릴 때에는 조금씩 숨을 틀 수 있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시멘트집과 아스팔트길은 숨통을 죕니다. 끝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는 매캐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짐을 싣기도 하고, 이곳에서 저곳까지 더 빨리 달리도록 한다는 자동차라지만, 자동차는 참말 사람한테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자동차에 짐을 실으면서 내 몸은 차츰 무디어지는구나 싶어요. 이곳에서 저곳까지 더 빨리 달리면서 정작 이웃들 살아가는 마을을 지나치거나 잊기 쉽게 이끄는구나 싶어요.

 

  숨통을 트는 곳은 사람이 걸어다니는 곳입니다. 사람이 걷지 않고 자동차로 움직이거나 도시처럼 전철로 움직이는 데에서는 숨이 막힙니다. 고속도로를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고속버스 잔뜩 모인 곳에서는 숨이 갑갑합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달리면 몇 군데 쉼터에서 쉰다지만, 쉰다기보다 가까스로 숨을 돌릴 뿐입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도시를 키우면서 시골을 죽이려고 고속도로를 놓는구나 싶습니다. 시골마을 둘로 셋으로 쪼개고, 시골마을 시끄럽게 하고, 시골마을 둘레에 매캐한 배기가스 흩뿌리는 고속도로인걸요. 고속도로 달리는 사람은 이곳에서 저곳까지 더 빨리 간다지만, 고속도로를 옆에 끼고 스무 해 쉰 해 백 해 살아갈 사람은 어쩌나요.


  고속도로를 놓으며 시골사람이 고향마을 떠나도록 내몰아요. 고속도로가 놓이면 시골사람도 ‘도시로 마실 가기 수월해진다’고 생각하면서, 참말 아이들이 몽땅 도시로 떠나요. ‘교통이 좋다’는 말이란, ‘도시로 가기 좋다’는 말이지, ‘시골에서 살기 좋다’는 말이 아니에요. 도시에서도 ‘교통이 좋다’는 말이란, ‘물질문명 누리느라 돈을 쓸 시내 한복판으로 가기 좋다’는 말이지, ‘살림 꾸리며 지내기 좋다’는 말이 아니에요.


  문득 깨닫습니다. 인천에서 살던 때, 가끔 시골로 나들이를 다니면 숨통이 트였습니다.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면 숨통이 막혔습니다. 그래요, 시골 고흥에서 살아가니까, 고흥 두멧시골에서 아이들과 있을 적에는 숨통이 늘 맑게 트입니다. 읍내나 면소재지로만 나가더라도 숨통이 막히고, 순천이나 장흥이나 보성으로만 나가더라도 숨통이 막힐밖에 없습니다. 두 다리로 논둑길이나 숲길을 거닐면 숨길이 열립니다. 자전거수레에 아이들 태우고 천천히 이웃마을 드나들며 들과 숲을 누리면 숨길이 뚫립니다.


  넓은 찻길과 자동차가 숨통을 죕니다. 고속도로와 기찻길이 숨통을 죕니다. 공장과 골프장이 숨통을 죕니다. 아파트와 빽빽한 시멘트집이 숨통을 죕니다. 양복쟁이 회사원과 공무원이 숨통을 죕니다.


  흙은 숨통을 터 줍니다. 풀과 나무는 숨통을 열어 줍니다. 구름과 바람과 햇살은 숨통을 보듬어 줍니다. 바다와 들과 숲은 숨통을 사랑해 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글을 쓰는 사람은 숨을 쉬고 싶어 글을 쓰겠지요. 바람맛을 느껴요. 하늘내음을 맡아요. 바람 이야기를 쓰고, 하늘 이야기를 나누어요.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그래야, 내 마음부터 열 수 있고, 내 마음부터 열 때에 서로 사랑을 열 수 있겠지요. 434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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