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에 매긴 별점

 


  이억배·이호백 두 분이 빚은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재미마주,1997)이 있다. 나는 이 그림책을 1999년에 처음 읽었는데, 201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그림책을 읽은 내 느낌이 어떠한가 하고 밝힌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는 내가 이 그림책을 이야기할 만한 마음그릇이 못 되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굳이 이 그림책을 이야기할 만한 뜻이 없었고, 오늘은 이 그림책을 말해야 할 뜻이 생겼다 할 만하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라는 그림책에 별점 10점 가운데 1점만 준다. 아마, 나처럼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라는 그림책에 별점을 낮게, 더할 나위 없이 낮게 붙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모두들 나더러 뚱딴지 같은 바보라고 여기지 않을까.


  내가 이 그림책을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돌아보며 느낀 대목을 세 가지 밝혀 본다. 첫째, 그림책 줄거리가 아름답지 못하다. 둘째, 그림책에 쓴 낱말과 말투가 아름답지 못하다. 셋째, 그림책을 이루는 밑넋이 아름답지 못하다.


  힘자랑 수탉 이야기는 재미없다. 힘자랑 어른하고 똑같다. 이 그림책 이야기가 ‘힘자랑 어른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보여주는 흐름이라면, 어느 모로 읽힐 만하리라. 그러나, 바보스러운 ‘힘자랑 어른을 꾸짖는’ 흐름이 아닌데다가, 힘자랑을 못한다고 술에 절어 지내는 바보스러운 모습을 돋을새김으로 보여준다. 넘치는 힘을 왜 ‘자랑’하는 데 써야 하지? 사람살이도 짐승살이도 ‘남 앞에서 자랑하며 권력으로 줄세우기’ 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이런 사람살이를 그림책으로 배우면서 자라야 할까? 빗대는 이야기로 동물우화를 그린다 할 적에, 어른들은 더 꼼꼼히 더 깊이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조지 오웰 님 《동물 농장》과 같은 우화처럼 빛나지 못한다.


  한국 창작그림책이지만, 한국말을 아름답게 못 쓰는 대목이 아주 슬프다. 아이들하고 어떤 말로 삶을 빛내야 할까 하는 대목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한테 이쁘장한 말을 들려줄 까닭이 없고, 아이들한테 엉터리 말을 들려줄 까닭이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여느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삶을 밝히는 말을 들으며 자라야 아름답다. 글을 쓰는 어른은 다른 무엇보다 한국말부터 슬기롭게 배워야 한다고 느낀다.


  바깥에서 힘자랑 하는 수탉에, 집에서 알낳기 하는 암탉, 이러한 얼거리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를 이루는 밑넋이다. 수탉도 암탉도 ‘살림’을 꾸리지 않는다. 보금자리를 살찌우는 일을 하지 않는다. 수탉도 암탉도 아이들(병아리)하고 놀 줄 모른다. 채찍질하듯 힘을 키우도록 내몬다든지, 노예가 되듯 알낳기만 하도록 등을 떠민다. 이래서야 무슨 삶이 있고, 무슨 생각이 있으며, 무슨 사랑이 있으랴. 이런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어떤 삶이 자라고, 어떤 생각이 자라며, 어떤 사랑이 자랄까.


  삶을 북돋울 때에 책이다. 생각을 빛낼 때에 책이다. 사랑을 나눌 때에 책이다. 나는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하나도 안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니, 별점 10점 가운데 딱 1점을 줄 뿐이다.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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