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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2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7
아이들과 그림책 읽는 아버지
―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억배 그림,이호백 글
재미마주 펴냄,1997.1.25./8500원
나는 1999년 4월에 처음으로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이태수 님이 그린 《우리 순이 어디 가니》라는 그림책을 만난 날부터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이때 내 나이는 스물다섯 살입니다. 스물네 살에 대학교를 그만둔 나는, 예전부터 하던 신문배달 한 가지로 밥벌이를 삼았습니다.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녔는데, 대학교에서는 교수도 학생도 배움길을 즐겁고 씩씩하게 안 걷는구나 싶어, 도무지 다닐 마음이 안 들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이 나라 대학교 교수랑 학생이 즐겁고 씩씩하게 배움길 걸었다면, 나로서는 대학교 그만둘 일이 없었을 테고, 그림책 만날 일이 없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나라 대학교가 옳고 바르게 흘렀으면, 나는 어릴 적부터 제도권 입시교육에 물들거나 찌들지 않았겠지요. 이 나라 대학교가 옳고 바르게 흘렀으면, 나는 내 어린 날에 그림책을 기쁘게 즐길 만했겠지요. 엉터리 대학교에, 엉망진창 제도권 입시교육인 탓에, 스물다섯 나이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림책 읽기’를 할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1999년 스물다섯 나이에 신문배달 한 달 일삯으로 30만 원 벌면서 16만 원은 적금으로 붓는데, 14만 원 살림돈으로 그림책을 사서 읽기란 퍽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무렵 대학도서관이나 구립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건사하지 않았어요. 도서관에서는 그림책을 구경할 길이 없었어요. 새책방에서도 그림책은 잘 안 갖추었어요. 그래서 신문배달 자전거를 몰아 헌책방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책을 읽습니다. 한국 그림책은 얼마 안 되니, 으레 나라밖 그림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외교관 아이가 다니는 외국인학교에서 흘러나오거나, 주한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그림책을 하나씩 둘씩 읽습니다.
어떤 그림책을 ‘좋다’고 할 만한지는 모릅니다. 따로 그림책을 배운 일 없고, 어릴 적에 그림책을 선물받은 적조차 없으니, 눈길 닿는 대로 손을 뻗어 이 그림책 저 그림책 살펴봅니다. 처음으로 만난 그림책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떠올리면서, 내 가슴을 적실 만한 그림책을 헤아립니다.
.. 힘자랑 대회에서 이 수탉을 이긴 닭은 하나도 없었단다. 수탉을 이제 이 동네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되었어. 아니지, 세상에서 제일 힘센 닭이 된 거야 .. (8쪽)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양에서 나오는 그림책을 살피면,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그림책이 하나 있고, 지식을 다루는 그림책이 하나 있으며, 자연을 다루는 그림책이 하나 있는 한편, 앙증맞은 그림결로 귀여운 줄거리 보여주는 그림책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답네’ 하고 느끼는 그림책은 으레 이 네 가지가 살가이 어우러진다고 느낍니다. ‘재미없네’ 하고 느끼는 그림책은 아주 마땅히 이 네 갈래 가운데 한 갈래에도 들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림책이란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책입니다. 글책이란 글로 이루어지는 책입니다. 사진책이란 사진으로 이루어지는 책이요, 만화책이란 만화로 이루어지는 책입니다. 그림책이라서 아이들만 보는 책이지 않아요. 그저,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일 뿐입니다. 사진책이라서 예술쟁이 어른만 보는 책이지 않아요. 그저,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일 뿐입니다.
여느 어른들은 만화책을 너무 모릅니다. 만화책이란 그저 만화로 이루어진 책일 뿐이에요. 그림책도 글책도 사진책도 만화책도, 저마다 다 다른 짜임새로 엮는 책일 뿐, 이들 책을 읽어내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떤 사랑으로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을 꿰뚫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어린이 아닌 스물다섯 젊은이로 살아가며 그림책을 만났기에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네’ 하고 느꼈는지 몰라요. 이와 마찬가지인데, 동화책이나 동시집도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에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눈높이로 엮은 책’입니다. 나는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권정생 님 동화책을 만났거든요. 군대를 1997년 12월에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는데, 마침 무슨무슨 위기라 떠들며 사회가 아주 어둡더군요. 알바도 막일도 어떤 일자리도 없어 헤매다가 단골 헌책방에 들러 마음을 식힙니다. 마침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이 보입니다. ‘언니’라는 낱말에 어쩐지 끌려 이 동화책을 쥐어 펼칩니다. 헌책방 골마루에 선 채 눈물을 쏟으며 읽습니다.
눈물을 닦고 책값을 치르며 곰곰이 생각했지요. ‘왜 나는 어릴 적에 이런 동화책을 읽을 수 없었을까. 왜 내 어릴 적에 내 어버이나 학교 교사는 이런 동화책 읽으라 얘기하지 않았을까.’ 동화책 《몽실 언니》를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돌아가며 다시금 생각하니, ‘아무래도 내 어릴 적에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제도권 입시교육 아닌 아름다운 배움마당이었다는 뜻일 테니까, 이렇게 고단한 나날 보낼 일이 없었겠지.’ 싶더군요. 사회가 메마르고, 정치가 어두우며, 문화가 빛바래고, 교육이 뒤집어진 한국에서는, 책을 책답게 쓰지 못하고 책을 책답게 읽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그 뒤, 이 수탉은 동네에서 제일 술을 잘 마시는 수탉이 되었어 .. (14쪽)
신문배달 젊은이는 1999년 8월 한여름에 어린이책 출판사로 일자리를 옮깁니다. 어떤 이음고리가 닿았을까, 그림책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펴낸 보리출판사 영업기획실에 들어갑니다. 단체영업 일을 하면서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모임을 처음으로 알고, 인표어린이도서관이라는 데 또한 처음으로 압니다. 어린이책을 아끼거나 지키는 어른이 아예 없지 않았다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린이책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어른이 곳곳에 있었다고 비로소 알아챕니다.
출판사 책꽂이에 있는 그림책을 날마다 신나게 읽습니다. 다른 출판사로 마실을 가면 그곳 책꽂이에 있는 그림책을 늘 즐겁게 읽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료실과 인표어린이도서관 책시렁 그림책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교육대학교 도서관에 찾아가서 그림책과 동화책이 어떻게 있는가 살핍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어린이책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듬는지 헤아립니다. 크고작은 책방마다 어린이책이랑 그림책 돌보는 매무새를 들여다봅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접어들던 무렵은 한국 어린이책과 그림책이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던 때였구나 싶습니다. 이제 막 싹이 트고 겨우 잎사귀 몇 내미는 때였지 싶어요.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책이 한두 가지 나올 즈음이요, 지식 그림책이나 자연 그림책이 어느 만큼 모양을 갖추던 즈음입니다. 아직까지 ‘앙증맞은 그림결로 귀여운 줄거리’ 보여주려는 그림책만 너무 많던 즈음이에요.
그무렵 시집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어떤 그림책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서면 집안에 있던 그림책은 몽땅 버렸을까요. 2010년대에 시집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어떤 그림책을 만나려나요. 요즈음은 한결 자라난 책문화 기쁘게 누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나요.
.. 얼마 후, 수탉은 환갑을 맞았어. 수탉이 태어났을 때처럼 화창한 봄날이었지. 수탉의 아들, 딸, 손자, 손녀 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열었단다 .. (26쪽)
이억배 님 그림이랑 이호백 님 글이 어우러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재미마주,1997)을 읽으며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1999년에 내 일터인 출판사 책꽂이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무렵까지 ‘퍽 드문’ 창작그림책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때에나 요즈음에나 무척 사랑받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랑받을 만하니 사랑받으리라 생각합니다.
2013년 오늘,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이 그림책을 천천히 톺아봅니다. 여섯 살 큰아이한테는 글을 읽으며 보여줄 만하다 싶어 글을 읽으려 하는데, 자꾸 이 말 저 말 걸립니다. 글을 읽히려던 생각을 접습니다. 무엇보다, 수탉이 ‘힘자랑 대회’에 나가는 모습이 내키지 않고, 나이 들어 힘이 빠진다 해서 ‘술에 절어 지내는’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암탉이 ‘알만 바지런히 낳는’ 모습 또한 달갑지 않습니다. 수탉은 사람에 빗대어 ‘힘자랑’을 하면서, 왜 암탉은 닭 모습 그대로 ‘알낳기’만 해야 하지요? 사람에 빗대려 한다면, ‘가장 힘센 수탉’으로서, 시골 논밭을 알뜰히 일굴 뿐 아니라, 수탉이 손수 나무질을 해서 나무집 짓고 다리도 놓고 하는 ‘슬기로운 시골 힘꾼’ 모습을 보여줄 때에, 아이들한테나 어른들한테나 ‘가장 힘세며 아름다운 숨결’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힘든 이웃을 돕거나 힘여린 동무를 아끼는 ‘힘센 수탉’이 아니라, 그저 ‘힘자랑’ 하는 수탉이라면, 나로서는 조금도 기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한테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암탉한테 ‘알낳기(아이낳기)’만을 바라는 모습은 뭘까요. 창작그림책이라 하지만, 정작 창작(상상력)을 하는 넋이 너무 얕구나 싶어요. 새로운 삶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아름답게 빚는 넋이 좀 모자라구나 싶어요. 더욱이, 그림책에 흐르는 말이 안 곱습니다.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에 나오는 말마디를 그대로 읽어 줄 수 없어요.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 읽히려던 생각을 접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그림책 보라 한 다음, 이 그림책은 아버지 혼자 펼칩니다. 볼펜을 듭니다. 알맞지 못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글을 죽죽 지우고, 새 글을 씁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 어느 맑은 봄날
늠름한 수탉으로 → 어엿한 수탉으로
힘차게 우는 수탉의 울음 소리가 → 수탉이 힘차게 우는 소리가
힘자랑 대회에서 → 힘자랑 잔치에서
제일 힘센 닭이 된 거야 → 가장 힘센 닭이 되었지
수탉은 자신이 점점 늙어가고 있는 것을 → 수탉은 차츰 늙는구나 하고
고기를 씹어도 잘 씹히지 않았고 → 고기를 씹어도 잘 씹지 못하고
수탉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 수탉이 슬퍼할 때
수탉의 아내가 → 수탉 아내가 / 암탉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 씩씩하고 튼튼하게
물론 당신 한창 때보다야 → 다만 당신 한창 때보다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 옛날이나 이제나 / 옛날이나 오늘이나
한자말을 안 써야 하거나 써야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자말은 한국말 아닌 한자말이요, 중국 한자말이거나 일본 한자말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들려줄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늘 쓰는 내 가장 아름다운 한국말인 ‘맑다’와 ‘어엿하다’와 ‘잔치’와 ‘가장’과 ‘차츰’과 ‘슬픔’과 ‘암탉’과 ‘튼튼하다’와 ‘다만’과 ‘오늘’이라는 낱말을 쓰고 싶습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이 낱말을 사랑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낱말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힘차게 우는 수탉의 울음 소리”는 잘못 쓴 겹말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2013년까지 바로잡지 않는다니 놀랍습니다. 이 대목이 잘못 쓴 겹말인 줄 알아챈 어버이나 교사가 없었다는 뜻일까요. 책에 적힌 말이니 그저 그대로 읽기만 할 뿐인가요. 더군다나, 잘못 쓴 겹말인데다가 일본 말씨 ‘-의’를 얄궂게 쓴 줄 못 느낀다는 소리인가요.
두 아이와 살아가며 그림책 읽는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날마다 두 아이한테 밥을 지어 차리고, 날마다 두 아이 옷가지를 손빨래하며, 날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함께 놉니다. 아이들은 가장 맛난 밥을 먹을 때에 즐겁고, 아이들은 가장 정갈한 옷을 입을 때에 예쁘며, 아이들은 가장 신나게 웃고 떠들며 놀 때에 빛납니다. 어버이는 이녁 사랑을 늘 가장 즐겁게 쏟아 밥을 짓고 옷을 건사하며 집을 돌봅니다.
그림책이란, 아이들한테만 읽히는 책도 아니지만, 그림으로만 엮는 책 또한 아닙니다. 그림책이란,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그림책이란, 사랑으로 일구는 삶을 아름다이 갈무리하는 책입니다. 그림책이란,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누리는 꿈을 슬기롭게 엮는 책입니다.
재미난 줄거리로는 그림책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앙증맞거나 귀여운 그림결로는 그림책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 손으로 창작한 그림책이라서 돋보이지 않습니다. 온누리를 밝히는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를 푸른 숲바람 쐬며 빚어서 나누는 마음이 그립습니다.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그림책 읽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