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연약한 1
이쿠에미 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198

 


내가 아는 마음
― 깨끗하고 연약한 1
 이쿠에미 료 글·그림,박선영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6.2.25.

 


  누구나 배운 대로 살아가요. 어떤 삶을 가르쳐서 어떻게 살아가도록 이끄는가 하고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슬기롭게 생각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떤 삶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잊거나 놓치면, 서로서로 힘겹거나 고단한 나날이 되고 말아요.


  누구나 배운 대로 사랑해요. 어떤 사랑을 보여주거나 나누는 하루인가를 곱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따사롭게 사랑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떤 나날을 어떤 사랑으로 누릴 때에 즐거운가를 잊거나 놓치면, 서로서로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가 자꾸 태어나요.


- ‘꾹 참고,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간다.’ (12쪽)
- ‘함께 있어 달라는 것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뭐랄까.’ (44쪽)


  그냥 먹는 밥이란 없습니다. 내 온 사랑을 담아 짓는 밥입니다. 어버이가 빚은 사랑이 깃든 밥을 먹는 아이들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랑을 새로 지어 밥 또한 새로 짓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바라보며 사랑을 새로 누리고 밥 또한 새로 누립니다.


  어버이와 아이가 주고받는 말 또한 서로서로 새로 일구는 사랑입니다. 둘은 아무 말이나 섞지 않습니다. 가슴속 가장 깊은 데부터 길어올린 사랑을 담은 말을 주고받아요. 마음속 가장 너른 터에서 보듬고 건사한 사랑을 실은 말을 나눕니다.

 

 


- ‘왜 다들 그를 보지 않는 걸까. 왜 그를, 신경쓰지 않는 걸까. 이상하다. 내 눈에는, 제일 먼저 들어오는데.’ (65쪽)
- “그런데 왜 늘 넷이 붙어 다니는데?” “그야 친구니까.” (91쪽)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삶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는 사랑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이 없는데 사랑이 싹트지 않아요.


  마음으로 내 하루를 짓습니다. 마음속으로 지은 하루를 몸으로 누립니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이 마음을 아끼거나 보살피는 길을 학교에서 조금도 느끼지 못했어요.

 

  학교는 늘 시험공부에 바빠요. 학교는 늘 시험성적에 목을 매달아요. 학교는 늘 숙제와 체벌과 규칙이 판쳐요. 학교는 늘 꾸지람과 윽박지름과 주먹질이 어지러웠어요.


  학교를 벗어나면서 시나브로 내 마음을 찾아요. 학교 울타리를 떠나면서 천천히 내 마음을 느껴요. 학교 졸업장을 버리면서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요.


  생각해 보면, 학교라서 나쁠 수 없어요. 학교를 학교 아닌 감옥처럼 만들어 교사는 교사 아닌 감옥지기처럼 학생을 다스리려 하니까 나빠요. 학교도 스스로 나쁜 길로 빠지고 교사도 스스로 나쁜 길로 허덕이며 학생마저 스스로 나쁜 길에서 헤매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도 턱없이 모자란 삶이라 하는데, 왜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공부에 들볶이면서 동무 아닌 시험성적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함께 좋아하고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면 즐거운 나날일 텐데, 왜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너른 숲과 들과 메와 바다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쳇바퀴를 굴려야 할까요.


- “하지만 난 이 학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두랑 같이 있으니까 재밌잖아.” (110쪽)
- ‘오래된 (아파트)단지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바뀐 게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내년, 내후년, 10년 후, 어떻게 변해 갈까?’ (121쪽)

 

 


  학교에서 직업훈련이나 직업교육을 할 까닭은 없어요.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을 끝없이 외울 까닭은 없어요. 직업은 저마다 스스로 찾으면 돼요. 지식은 스스로 책을 읽어서 얻거나, 스승을 찾아가서 몸으로 익히면 돼요. 그러니까, 따로 학교라는 데가 없어도 돼요. 아니,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참말 없어져야 해요. 졸업장과 시험성적으로 사람을 뭇칼질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거든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으니 아무것도 배울 수 없지요. 초등학교이든 중·고등학교이든 아이들은 어떤 삶도 사랑도 꿈도 배우지 못해요. 제도권학교 열두 해 동안 아이들은 주눅이 들고 풀이 죽으며 기운을 잃어요. 열두 해 학교살이를 하면서 흙하고 동떨어지고 숲하고 등지기만 해요. 열두 해 학교살이를 하느라 살림짓기하고 동떨어질 뿐 아니라 사랑짓기하고도 등지고 말아요. 학교를 다니며 스무 살이 된 아이들 가운데, 사랑을 참다이 깨달은 아이는 몇이나 될까요. 학교를 다니며 스무 살을 맞이한 아이들 가운데, 꿈을 참다이 품은 아이는 몇이나 되나요.


- ‘난 아무것도 몰라. 하루타의 마음도, 아사미가 사실은 누굴 좋아했었는지도, 아무것도, 몰라.’ (149쪽)
- ‘남자들은 다 벌레 같아. 좋은 사람도 있찌만, 이상한 사람이 더 많아. 그런데도 소중한 사람은 별로 없고, 하루타, 하루타가 없는 세상은 너무나 이상해.’ (174쪽)


  이쿠에미 료 님이 그린 만화책 《깨끗하고 연약한》(학산문화사,2006)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뿐 아니라, 여느 일본만화책 어느 것을 보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이야기에 ‘사랑’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일본만화책을 보면, 일본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랑만 나누나 싶을 만큼, 참으로 사랑 이야기 그리는 만화가 아주 많아요.


  그러나, 일본만화만 이와 같지 않아요. 어느 나라 어느 만화라 하더라도, 중학교를 다니건 고등학교를 다니건, 아이들 삶에는 ‘시험공부’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아이들 삶에는 오직 ‘사랑’이 흐릅니다. 시험성적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직업교육이나 직업훈련은 조금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스스로 꾸리며 가꿀 사랑을 얼마나 곱고 따사롭게 돌볼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곧, 교사나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주고 가르치며 물려줄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교사나 어버이한테서 저마다 스스로 일구며 빛내고픈 사랑을 여쭙고 배울 때에 아름답지요.


-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득한 저편에, 불빛이 보인다.’ (182쪽)


  어른과 아이가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어버이와 아이가 마음과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기를 빌어요. 의무교육 때문에 보내는 학교가 아닌, 아이들이 참말 사랑을 보고 듣고 배우며 익힐 만하다 싶으면 학교에 보낼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니까,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사랑을 꽃피웁니다. 아니, 학교를 보내지 않을 때에 환하고 맑은 사랑을 꽃피우는구나 싶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말을 배우지, 교과서로 말을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어깨너머로 밥짓기를 배우지, 요리책이나 요리학원에서 밥짓기를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손길에서 빨래와 청소와 살림일을 배우지, 가정실습이나 가사수업이나 대학교 가정학과 같은 데에서 빨래와 청소와 살림일을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가 어떤 사랑으로 저를 낳아 돌보았는가 하는 기나긴 삶을 톺아보면서 ‘육아’를 배워요. 따로 육아책이나 육아방송을 들여다보아야 아이를 사랑하며 돌보는 이야기를 배우지 않아요.


  학교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학교는 허울일 뿐이에요. 학교가 있어 따돌림이나 괴롭히기가 생긴다 할 만해요. 학교 때문에 아이들이 시들거나 아프구나 싶어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아요.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요. 마음으로 삶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삶을 살찌워요.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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