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 맡는 아이

 


  봄날, 아이는 온 마을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풀내음 그득 맡는다. 아이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풀내음은 아이 몸을 감돈다. 풀 사이사이 고개를 살며시 내미는 조그마한 꽃송이도 아이 몸을 감돈다. 아이는 그저 들길을 거닐 뿐이라지만, 풀내음과 꽃내음이 아이 몸을 어루만진다.


  여름날, 아이는 씩씩하게 풀꽃놀이 즐긴다. 날마다 수없이 풀꽃다발을 만든다. 가을날, 아이는 기운차게 들놀이 누린다. 선선한 바람이 불건 말건 대수롭지 않다. 풀마다 아이를 부르고, 꽃마다 아이를 찾는다. 이윽고 겨울이 찾아오면, 아이는 풀내음 고이 잠드는 겨울내음을 맡는다. 고즈넉한 겨울 시골마을은 아이한테 새롭게 찾아드는 놀이터가 된다.


  꽃이름 몰라도 꽃을 좋아하는 아이로 살아간다. 풀이름 몰라도 풀을 아끼는 아이로 뛰논다. 우리 어른도 아이와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해를 보내면서 나 스스로 나한테 외친다. “꽃이름 굳이 알아야 하지 않아요. 풀이름 애써 알아야 하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빛줄기를 알아 주셔요.” 골목이나 고샅에서 까르르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이름을 꼭 하나하나 물으며 알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 마음속에서 어떤 빛이 싱그러이 꼼틀거리며 푸른내음 풍기는지 느끼면 된다. 사랑을 느끼면 된다. 사랑을 느껴, 내가 새롭게 풀이름을 붙여 부르고, 꽃이름을 붙여 부르면 된다. 보라,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말괄량이 삐삐도,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머리 앤도, 풀과 꽃을 바라보며 이녁 사랑을 길어올려 언제나 새 이름을 붙여서 예쁘게 불러 주었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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