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글 익히기

 


  다섯 살 큰아이는 글씨 하나하나 꾹꾹 눌러서 쓴다. 연필이 이내 몽툭해진다. 큰아이는 ‘아버지 글씨’를 들여다본 다음 제 글씨를 쓸 수 있다. 아직 한글을 다 외우지 않았다. 굳이 일찍부터 다 외워야 한다고 여기지 않으니, 아이는 하루 내내 온통 뛰노느라 바쁘다. 참말, 아이 하루를 돌아보면, 큰아이가 되든 작은아이가 되든, 이 아이들은 걸어다니지 않는다. 늘 뛰어다닌다. 달려다닌다. 아마 ‘달려다닌다’라는 한국말은 없을 듯한데, 아이들은 그냥 ‘걸어서 다니’지 않고, 뛰거나 달리면서 다니기에 이런 낱말을 써야 아이 걸음걸이를 나타낼 만하리라 느낀다.


  깊은 저녁, 두 아이 모두 잠들 낌새가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작은 빈책을 꺼내고, 아이 몫으로 큰 빈책을 꺼낸다. 글씨 쓰기를 한다. 아버지가 여섯 칸 깍두기 빈책에 맞추어 글을 하나씩 짓는다. “깊은밤꽃노래, 고운꿈참사랑, 구르는돌구슬, 엄마야밥먹자, 싱그러운풀빛, 상큼한꽃내음.” 아이는 아버지 손글을 꼼꼼히 살피면서 제 글씨를 빚는다. 참 더디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가 이 아이만 할 적, 내 어머니는 나한테 글씨를 가르치려고 얼마나 오래도록 가만가만 지켜보며 기다렸을까 하고 떠올린다. 나는 얼마나 오래오래 글씨 하나에 온땀 들여 적바림하며 내 글씨를 빚었을까 하고 떠올린다.


  어느 집이든 그러할 텐데, 한글교재 따위란 없어도 된다. 한글교재는 어버이가 사랑으로 그때그때 만들면 된다. 아이가 익힐 한글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사랑으로 하나하나 빚을 때에 아름답다. 그러니까, 시중에 나도는 책에 적힌 한글을 아이한테 가르치지 말자. 그런 책들은 그저 지식이 될 뿐이다. 아이는 어버이가 물려주는 사랑을 받아먹는 삶을 누리면서 글도 배우고 꿈도 배울 때에 활짝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아이하고 글씨 쓰기를 함께할 적에 언제나 새 글을 빚는다. 어쩌면, 새 시를 쓴달 수 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곱고 맑은 생각을 하나하나 빈칸에 맞추어 적어서 넣는다. 좀 수줍은 어른이라면, “사랑해아이야, 좋아해아이야.” 와 같이 여섯 칸에 적어서 넣을 수 있겠지. 먼먼 옛날부터 우리 옛 어버이는 말놀이를 즐기며 말잔치로 삶을 살찌웠으리라 느낀다. 4345.1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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