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로 사는 법 - 사진가 이상엽의 리얼 포토 레시피
이상엽 지음 / 이매진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사진벗 만나는 길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47] 이상엽, 《사진가로 사는 법》(이매진,2010)

 


- 책이름 : 사진가로 사는 법
- 글·사진 : 이상엽
- 펴낸곳 : 이매진 (2010.6.28.)
- 책값 : 13000원

 


  (1) 삶을 마주하는 길


  두 아이와 살아간다 할 때에는, 두 아이가 날마다 씩씩하게 뛰놀도록 이끌면서 두 아이가 먹을 밥이랑 입을 옷을 알뜰히 건사한다는 뜻입니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거나 초·중·고등학교에 보낸대서 두 아이와 살아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대서 가르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 보내면 그저 학교에 보낼 뿐입니다. 학교에 다니기에 무엇을 더 배우거나 덜 배우지 않아요. 학교에서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뿐입니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교사 자리에 서는 어른이 학생 자리에 앉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면서 들려줄까요.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한테 삶을 보여줄까요. 사랑을 들려줄까요. 꿈을 보여줄까요. 믿음을 들려줄까요.


  오늘날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지식하고 정보만 다룹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라 해서 푸른 넋 북돋우는 꿈이나 사랑을 보여주지 않아요. 초등학교라 해서 어린 얼 보듬는 믿음을 들려주지 않아요. 대학교라 해서 젊은 빛 살찌우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나는 나 스스로 풀을 배우고 싶어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나는 아이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으나, 언제나 나 스스로 나무를 배우고 싶어서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나는 아이들이랑 함께 나누면 더 즐겁기는 하되, 아무튼 나부터 스스로 숲과 들과 바다를 누리고 싶어서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 선생은 이미 원로인지라 당신이 인식하는 우리 땅은 농민의 땅이었다. 그것은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빈티지’에 관한 향수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젊다. 내가 인식하는 우리 땅은 찢기고 갈라지고 파헤쳐지는, 고통받는 땅이다 … 처음에는 그저 이 거대한 풍경을 복사하기 바빴다. 하지만 천천히 갈라진 땅을 거닐며, 귓전을 윙윙거리며 때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깨닫기 시작했다 ..  (15∼19쪽)


  아마, 적잖은 이들은 시골을 ‘풍경’쯤으로만 여기리라 봅니다. 설악산이든 오대산이든 지리산이든 한라산이든 계룡산이든 속리산이든 무등산이든, 멧자락을 바라볼 적에도 어떤 ‘자연’쯤으로만 여기지, ‘삶’으로 바라보거나 느끼는 이가 꽤 드물어요.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한테는 시골이든 멧자락이든 모두 삶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요, 내 이웃이 살아가는 터이며, 내 동무가 살아가는 터입니다. 도시는? 글쎄, 도시에도 우리 이웃과 동무는 있어요. 나도 옆지기도 태어나기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통계 숫자로 보면 91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9퍼센트가 시골에서 산다지요. 참 많은 이들이 도시에서 삶자리를 가꾼다 하는데, 어쩐지 이 나라 도시는 삶자리라고는 하기 어렵다고 느껴요. 살아가기는 살아가지만 ‘삶자리’하고는 좀 멀지 싶어요. 왜냐하면, 삶자리란 서로 치고받거나 다투는 자리는 아니거든요. 삶자리라 할 때에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리이거든요. 삶자리란 서로 밟고 올라서려는 자리가 아니에요. 삶자리라 할 때에는 두레와 품앗이로 곱게 빛나는 자리예요.


  시골에도 자동차는 다니고, 찻길이나 거님길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깔아요. 그러나, 시골에서는 풀이 자랄 흙이 있어요. 나무가 숲을 이루는 땅이 있어요. 도시에서는 자동차 다니도록 길을 놓아요. 사람이 다닐 길은 놓지 않아요. 도시사람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내려고 시골 논밭이랑 숲을 파헤쳐요. 도시사람은 도시에 깃든 사람들 쓸 전기와 물과 밥과 물건을 뽑아내려고 시골에 발전소와 공장과 댐과 농장을 지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간다지만, 나로서는 도시라는 곳이 외려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요. 아이들하고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겠다고 느껴요. 꽃내음 풀내음 나무내음 숲내음 없는 도시에서는 아이들하고 못 살아요. 아니, 아이들에 앞서 나부터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는 못 마시겠어요.


  따사롭게 부는 봄바람을 마시고 싶어요. 포근하게 부는 여름바람을 쐬고 싶어요. 산들산들 부는 가을바람을 누리고 싶어요. 시원시원 부는 겨울바람을 즐기고 싶어요.


  숲은, 시골은, 자연은, 멧자락은, 냇물이나 들판이나 갯벌이나 바다는, 도시사람이 주말이나 휴일에 놀러가는 데가 아닙니다. 숲부터 바다까지, 모두 시골사람 삶터입니다. 먹을거리를 얻는 숲이요, 입을거리와 집짓는 나무를 얻는 숲이에요. 마시는 물을 얻고, 들이켜는 바람을 얻는 숲이에요.


  이제껏 시골이나 숲이나 멧자락이나 들판을 ‘풍경’이라고 느낀 적 없어요.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도시내기로서 지내던 때에도 시골이 풍경이 될 수 없다고 느꼈어요. 어느 시골을 가나 사람들이 보이거든요. 사람들이 일군 논밭이 보이고, 사람들을 보듬는 숲이 보여요.


.. 인물을 좀더 매력적으로 찍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내 행위가 단지 사진을 얻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찍는 대상과 교감을 주고받기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  (41쪽)


  국립공원이라서 더 아름답지 않아요. 두멧자락이라서 더 정갈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풀약이나 비료를 안 쓰며 오래도록 이은 숲일 때에, 터와 빛과 이야기가 아름답구나 싶어요. 스스로 삶이 될 뿐, 스스로 쓰레기를 낳지 않는 살림일 적에, 비로소 오롯이 어여쁘구나 싶어요.


  나는 시골사람으로 살며 ‘시골 어른’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서 저희 어버이랑 함께 살아가며 ‘시골 아이’가 됩니다. ‘시골 어른’이 ‘시골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웃에 다른 아이들 없고, 면소재지나 읍내 아이들은 몽땅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방과후학교 같은 데를 다닙니다. 이웃 면내나 읍내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하고 똑같습니다. 생각도 몸짓도 말투도 모두 도시내기입니다. 면내 아이들과 읍내 아이들은 도시내기가 되기를 바라지, 시골내기로 뿌리내릴 뜻이 없습니다. 도시이고 시골이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노동자(회사원과 공무원도 모두 노동자입니다)’로 키우려고만 합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을 ‘흙일꾼(농사꾼이나 고기잡이)’으로 키우려는 어른은 거의 없거나 아주 드물어요.


  교과서는 아이들을 노동자로 가르칠 뿐, 흙일꾼으로 가르치지 않아요. 교사는 도시 물질문명을 학생한테 가르치도록 교육과정을 밟을 뿐, 교사자격증을 따기까지 텃밭을 일군다든지 모내기를 한다든지 열매를 딴다든지 거름을 섞는다든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 요사이는 농촌봉사활동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요. 시골사람이면 어디나 풀약을 쓰니 굳이 농활 없어도 된다지만, 시골사람 누구나 풀약 안 쓰고 기계 없어도 될 만큼 봄 여름 가을 겨울 꾸준히 시골로 품앗이를 하려고 찾아오는 ‘똑똑한 도시 이웃’은 나날이 사라져요.


  시골에서 살아가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오늘날 아이들은 열이면 열 모두 아토피에 걸려요. 도시 아이 백이면 백 폐렴에 쉽게 걸린다 하고 이래저래 예방주사 잔뜩 맞아요. 도시 어른들은 도시 아이들한테 ‘좋은 밥’ 먹이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목돈을 들여요. 목돈을 들이는 만큼 더 돈을 벌려고 스스로 더 ‘도시 톱니바퀴’가 되고 말아요. 그래, 이렇게 쳇바퀴를 돌지 말고, 돈은 좀 덜 벌면서, 다달이 열흘이나 이레쯤 말미를 내어 시골로 찾아와서는 김매기를 거들고 들일 물일 갯일 함께하면서 ‘가장 정갈한 먹을거리’를 품삯으로 나누어 받으면 참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왜 유기농 곡식이나 열매나 갯것을 돈으로만 사려고 하나요. 품을 팔면 되거든요. 대학생만 농활 하라는 법 없어요. 아저씨 아줌마 된, 여느 어른들이 아이들이랑 ‘대학입시공부’만 시키는 학교 수업은 다달이 이레나 열흘쯤 쉬면서 몸으로 시골을 누리고 마음으로 숲바람과 숲햇살 마시면 즐거워요.


.. 즐겁다. 지인들이 찍어 준 내 얼굴은 참 다양하다. 나는 그 얼굴 속에서 나를 읽는다 ..  (48쪽)


  삶을 마주하는 길을 걸어가면 즐겁습니다. 삶을 깨닫는 길에 서면 즐겁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길에서 어깨동무하며 노래노래 부르면 즐겁습니다. ‘사라지는 농사꾼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을 찍는 보람도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내 아이들과 시골에서 흙을 밟고 풀을 뜯는 웃음꽃’ 사진을 찍는 보람은 너른 꿈과 고운 사랑이 되리라 생각해요.


  다큐멘터리를 찾아 외국마실을 할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 없어도 되니, 오늘 내 하루를 맑게 웃으면서 밝게 누릴 수 있어요.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뽑힌들 대수롭지 않아요. 정치꾼 쳐다보느라 헤매지 말고, 내 아이들을 마주해 보셔요. 아이들은 대통령이 누가 되거나 말거나 언제나 똑같이 빛나요. 아이들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로 누가 뽑히든 말든 서로서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놀이를 즐겨요. 숲은 정치꾼한테 휘둘리지 않아요. 들은 경제성장율을 아랑곳하지 않아요. 바다는 아파트값이나 새 자동차를 쳐다보지 않아요. 멧골에서는 손전화가 안 터지지요. 멧골에서는 흙을 밟으며 햇살조각 먹으면 돼요.


  큰불이 나더라도, 잿더미 된 자리에서 새싹이 돋습니다. 시골사람은 논둑이나 밭둑에 틈틈이 불을 놓아 풀을 죽이려 하지만, 새까맣게 탄 논둑이나 밭둑은 열흘쯤 뒤부터 다시 푸릇푸릇 풀싹이 돋습니다. 보름이 지나고 한 달쯤 되면 ‘새까맣게 탄 자국’은 남김없이 사라져요.


  사람들 누구나 삶이 어떤 그림인가 하고 슬기롭게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시골과 도시라는 금을 내려놓으면서, 저마다 마음속에 어떤 빛줄기가 서렸는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내 마음속 빛줄기를 읽을 수 있을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고마운 빛줄기를 읽을 수 있어요. 내 마음속 빛줄기와 하늘 빛줄기를 함께 읽는다면, 시나브로 ‘사진기 빛줄기’도 예쁘게 읽을 수 있겠지요.

 

 

 

 


  (2) 사진벗 만나는 길


  사진쟁이 한길을 걷는 이상엽 님 사진책 《사진가로 사는 법》(이매진,2010)을 읽습니다. 《사진가로 사는 법》을 살피면, 앞 반토막은 사진쟁이 이상엽 님이 누리는 사진삶 이야기이고, 뒤 반토막은 사진쟁이 이상엽 님이 만나는 사진벗 이야기입니다. 책을 마무리짓는 끝말을 읽으면, 이상엽 님은 ‘좀 재미난 이야기’로 엮으려 했다는데, ‘어쩔 수 없이 너무 차분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스스로 밝혀요. 아무래도 사진쟁이 이상엽 님 스스로 ‘재미난 삶을 누리기’보다는 ‘차분한 삶을 톺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시골숲을 마주할 적에, 시골숲을 굳이 ‘풍경’이니 ‘빈티지’이니 ‘자연’이니 ‘정물’이니 하고, 처음부터 딱 금을 긋고 바라볼 까닭은 없어요. 그저 시골숲으로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헤아리면 넉넉해요. 사진기 없던 오백 해쯤 앞서를 헤아리고, 자동차 없던 천 해쯤 앞서를 헤아리며, 컴퓨터 없던 삼천 해쯤 앞서를 헤아려 보셔요. 누구나 두 손과 두 발로 땅을 밟고 만지면서 먹고 입고 살고 하던 지난날을 헤아려 보셔요.


  사진기라 하는 기계가 있어야 사진을 찍을까요. 아이들은 손가락 넷으로도 사진을 찍어요. 왜냐하면, 필름이나 메모리카드가 없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마음속에 사진을 담을 줄 알거든요. 입으로 ‘찰칵!’ 소리를 낼 적마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환한 그림을 그리거든요.


..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명품이라거나 예술품으로 보지 않는다. 이건 컴퓨터나 마찬가지로 컨베이어벨트에서 대량 생산되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장인의 땀도 수고도 보이지 않는 매끈한 상품일 뿐이다. 아마도 2∼3년이 흐르면 용도 폐기되거나 싸구려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이건 카메라 가격에 견줄 때 너무 심한 낭비다 ..  (63쪽)


  재미난 이야기를 쓰기에 사진책이 더 돋보이지 않아요.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사진책이 더 무겁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이고 사진책이에요. 스스로 즐기는 결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진이고 사진책이에요.


  재미란 늘 스스로 찾아요. 스스로 재미를 찾아서 웃어요. 스스로 재미를 부르면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차분함 또한 노상 스스로 누려요. 스스로 차분한 나날을 누리면서 웃어요. 스스로 차분한 눈빛과 손빛 되어 이야기빛을 밝혀요.


.. 매뉴얼 책이 줄 수 없는 상상력이다. 당신이 출사하러 가는 길에 어떻게 찍으라고 일러 주는 책보다는 무슨 사진을 찍어 볼까 상상하게 하는, 그런 책이 당신의 가방에 함께하기를 기대해 본다 ..  (67쪽)


  우리는 누구나 즐겁게 사진길을 걸어가면 될 사진벗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나는 이곳에서 이 사진을 할 수 있고, 너는 저곳에서 저 사진을 할 수 있어요. 그이는 그곳에서 그 사진을 하며 밥벌이를 할 만하고, 저이는 저쪽에서 저 사진을 하며 글쓰기도 함께 누릴 만해요.


  사진은 사진이면 됩니다. 노래는 노래면 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후박나무는 후박꽃을 피우고 후박열매 맺으면 돼요. 창포풀은 창포꽃 피우고 창포씨 맺으면 돼요. 겨울 지나 새봄 찾아들 적에 전남 고흥 온 시골마을 들판을 가득 메우는 봄까지꽃이랑 별꽃이랑 광대나물꽃이랑 자운영꽃은, 꽃잎이랑 꽃줄기까지 아주 맛난 봄나물이 됩니다. 냉이도 달래도 먹고, 씀바귀랑 민들레도 먹으며, 갓이랑 유채도 먹어요. 모시잎도 먹고 깻잎도 먹어요. 고추잎도 먹고 무잎도 먹어요. 감자잎은 안 먹지요. 갓 돋는 감잎이나 모과잎도 잘근잘근 씹어 먹으면 맛나고, 느티잎이나 단풍잎도 막 돋은 빤딱빤딱 보들보들 여린 잎사귀를 톡톡 뜯어서 먹으면 맛나요. 그러니까, 엉겅퀴꽃은 엉겅퀴꽃대로 예쁩니다. 부추는 부추잎으로도 맛나고, 부추꽃 하얗게 벌어지는 빛깔로도 멋스럽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어여삐 보살피는 살림살이 빛내며 환한 이야기를 길어올려요. 다 다른 사진쟁이가 다 다른 생각과 꿈과 사랑을 품에 안으면서 마음속 빛줄기를 사진 한 장에 살포시 담아요.


.. 잡지에는 고통받는 이웃에 관한 기록 대신 명품 광고가 넘치고, 인터넷 사진 갤러리의 99퍼센트는 아름다운 사진들로 채워진다. 이런 현상은 중독이다. 결국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중단되고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금단 증상과 함께 공포를 체험하게 될 것이며, 건강하게 자신을 돌볼 기회를 잃을 것이다. 우리가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를 외면한 이유는 뭘까?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할망정 그것을 외면한 이유는 뭘까? 자본주의에 중독되어 사물의 본질을 올바르게 볼 능력을 잃어버린 탓이다 ..  (82쪽)


  사진비평은 덧없다고 느껴요. 문학비평도 덧없다고 느껴요. 예술비평이나 문화비평 또한 덧없구나 싶어요. 비평이란 비평은 죄 덧없으리라 생각해요. 사회비평도 정치비평도 참으로 덧없어요.


  우리가 나눌 한 가지라면 ‘비평’ 아닌 ‘이야기’예요.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은 사진이야기 나눌 때에 즐거워요. 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은 문학이야기 나누며 웃음꽃이 피어요. 예술이나 문화라면, 예술이야기랑 문화이야기로 이야기마당 펼치면 돼요.


  사진잔치는 사진이야기예요. 어떤 ‘전시’를 해서 뭔가를 보여주기보다는, 사진 하나에 담는 이야기를 빛내면서 사진벗들 불러 ‘잔치’를 할 때에 사진삶이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렇거든요. 아이들 몸가짐이나 말투를 바라보며 ‘비평’을 하거나 ‘훈계’를 하면 서로서로 얼마나 힘겹고 짜증스러운가요.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를 따사로이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눠야지요. 생각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보살펴야지요.


  삶을 가르칠 수 없듯 사진을 가르칠 수 없어요. 스스로 누리는 삶을 한껏 보여주면서 스스로 누리는 사진을 한껏 즐길 수 있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어 지식을 가르치려 한다면, 어른들은 사진기 장만하고 사진학교 다니며 지식이나 정보를 가르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저런 ‘교과서 지식’을 배워서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어른들이 그런저런 ‘사진 지식’ 익혀서 어떤 보람을 누릴까요.


.. 내 여행은 보고, 느끼고, 기록하는 데 참맛이 있다 ..  (115쪽)


  참맛을 느끼는 사진이고, 참맛을 느끼는 사랑이며, 참맛을 느끼는 삶이에요. 사진벗 만나는 길에서, 서로 ‘사진 지식’을 주고받으며 무언가 얻었다 생각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사진벗이라 한다면 지식 아닌 이야기를 나누어야 싱긋빙긋 웃겠지요. 오랜 고향동무를 만나서 ‘살아온 지식’을 나눌 일 있을까요? 없겠지요? 오랜 고향동무를 만난 자리에서는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어야 깔깔 껄껄 하하 호호 웃음꽃 피울 수 있어요.


  나와 네가 사진벗이라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나와 네가 삶벗이라면, 서로 어깨동무하는 고운 삶이 되기를 빌어요.


  빛을 바라봐요. 먼저, 내 마음속 빛을 바라봐요. 그리고, 숲에 드리우는 빛을 바라봐요. 그런 다음, 사진기에 감도는 빛을 바라봐요.


  성탄절 아닌 동짓날 지나는 12월 겨울 끝자락이 지나가요. 오늘 아침도 저기 멧자락 따라 붉게 타는 아침노을 밝아요. 겨울을 나는 멧새는 이른아침부터 지지배배 울며 먹이를 찾아요. 엊저녁 늦게까지 놀던 우리 아이들은 아직 꿈나라에서 놀아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는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불린 누런쌀을 다시 헹궈 밥을 안쳐야지요. 국을 새로 끓이고 나물을 무쳐야지요. 새로운 하루 새롭게 빛나며 즐거워요. 4345.1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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