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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악이는 흉내쟁이 ㅣ 말문 틔기 그림책 1
사토 와키코 글, 후다마타 에이고로 그림 / 사계절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3
곱게 흐르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 삐악이는 흉내쟁이
후다마타 에이고로 그림,사토 와키코 글,편집부 옮김
사계절 펴냄,1997.11.10./9800원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새근새근 자고 깨고 놀고 듣고 하던 아기가 환한 바깥으로 태어난 뒤, 어머니한테서 젖을 받아서 먹습니다. 젖을 받아서 먹으며, 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갓난쟁이는 어버이와 이웃과 형제 자매 말마디를 하나하나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입술 달싹여 말문 터뜨리기까지는 좀 멀지만, 수많은 말을 마음에 담습니다.
늘 누워서 지내다가 뒹굴뒹굴 뒤집습니다. 뒤집고 나서 배밀이를 하고, 배로 밀다가는 엉금엉금 깁니다. 무릎걸음을 하고는 어설피 두 다리로 섭니다. 기우뚱기우뚱 이것저것 붙잡으며 걷는데, 이윽고 활갯짓 하면서 뜀박질을 하고, 마당에서 달리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천천히 자랍니다. 굳이 빨리 자라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아이는 네 살이나 여섯 살에 말문을 틉니다. 애써 일찍 말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초등학교에 들 무렵 아닌 어린이집부터 한글을 배우기도 하지만, 두서너 살에 벌써 집에서 한글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나는 여덟 살에 비로소 한글을 배웠지 싶습니다. 어쩌면 일곱 살에 배웠나?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는 일곱 살 적까지 ‘내 할 일’은 그예 놀이 하나였다고 느껴요. 일곱 살이 되고 여덟 살이 되면서 심부름을 맡을 수 있고, 이것저것 가벼운 물건을 갖다 줄 수 있습니다.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며, 쌀을 헹군다든지 가스불을 켠다든지 성냥을 켠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양파를 벗기거나 숟가락으로 감자껍질 긁기를 할 수 있어요. 이제 만두를 함께 빚고 송편도 함께 빚습니다. 나물을 함께 다듬고, 꽤 무거운 짐을 들고 옮깁니다.
어느새 말문을 조롱조롱 틉니다. 조잘조잘 떠듭니다. 산들산들 노래를 부르고, 동무들이랑 요 말 조 말 섞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무렵, 짝꿍을 만나 살림을 새롭게 꾸미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으며 내 어버이가 나한테 했듯이, 나도 사랑을 담아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날을 누립니다.
.. “찍찍아 찍찍아, 우리 목소리 바꿔 볼래?” “그것 참 재밌겠다!” ..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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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작은아이 말을 흉내내곤 합니다. 작은아이도 큰아이 말을 흉내내곤 합니다. 큰아이나 작은아이는 제 어버이 말을 흉내내곤 합니다. 두 아이는 천천히 말을 익힙니다. 두 아이는 저희 깜냥껏 스스로 저희 말을 가다듬습니다. 어버이 말을 흉내내고, 누나 말 동생 말 재미 삼아 흉내내다가는 ‘어느 누구 말’도 아닌 ‘바로 내 말’을 시나브로 빚어요.
어버이가 손길 따사로이 내밀어 큰아이를 안으면, 큰아이도 손길 따뜻하게 내밀어 동생을 안습니다. 동생 또한 손길 따숩게 내밀어 어버이를 안습니다. 사랑이 천천히 흐릅니다. 굳이 빨리 흘러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이리로 흐르거나 저리로 흘러야 하지 않아요. 사랑은 가장 따사로운 흐름에 따라 서로서로 주고받으며 흐릅니다.
고운 목소리 되어 노래로 태어납니다. 맑은 눈빛 되어 이야기로 태어납니다. 살가운 밥내음 되어 즐거운 먹을거리로 거듭납니다.
곱게 흐르는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도 어른도 곱게 흐르는 사랑이 몸밥 되고 마음밥 됩니다. 곱게 헤아리는 눈길이 모여 사랑이 됩니다. 곱게 보듬는 손길이 얼크러져 살림이 됩니다.
후다마타 에이고로 님 그림과 사토 와키코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삐악이는 흉내쟁이》(사계절,1997)를 읽습니다. 병아리인 ‘삐악이’는 흙 일구는 어버이 곁에서 놀다가, ‘바깥마실’을 하고 오겠다 말합니다. 병아리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러마 하고 얘기합니다. 병아리는 온 마을 골고루 돌면서 숱한 동무를 만납니다. 병아리하고 만나는 동무들은 저마다 어버이 일손을 거들며 일도 하지만, 신나게 놀이를 즐깁니다. 쥐도 돼지도 개구리도 개도 모두 ‘마을숲’을 돌보느라 부산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온갖 짐승 새끼들)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놀잇감이 따로 없고, 학교를 따로 다니지 않으며, 자동차를 타지 않습니다. 들에서 놀고, 냇가에서 놀며, 숲에서 놉니다. 햇살을 먹고, 바람을 마시며, 시냇물을 만집니다.
삐악이가 흉내내는 쥐 목소리는 햇살입니다. 삐악이가 흉내내는 거북이 목소리는 바람입니다. 삐악이가 흉내내는 개구리 목소리는 빗물입니다. 모두들 예쁜 삶을 누리며 예쁜 이웃입니다. 모두들 예쁜 하루를 누리며 예쁜 숨결입니다. 숲속 아이들(그림책에 나오는 짐승 새끼들)은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저희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그림책 아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고속도로나 공장이나 텔레비전이나 학교나 발전소나 놀이공원이나 도서관’에서 들리는 소리 아닌, 숲과 들과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를 곱게 들으며 가슴에 사랑을 담뿍 안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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