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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진공화국
정한조 지음, 유준재 그림 / 시지락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사진은 삶을 이야기한다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41] 정한조, 《대한민국 사진공화국》(시지락,2005)
- 책이름 : 대한민국 사진공화국
- 글 : 정한조
- 그림 : 유준재
- 펴낸곳 : 시지락 (2005.10.10.)
- 책값 : 9500원
오늘날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도 주머니에 손전화 기계를 넣고 다닙니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도 손전화를 다룰 줄 알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리끼지 않고 손전화를 갖고 놀도록 내 주기까지 합니다. 학교에서고 극장에서고 어떤 공연이나 행사나 강연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고, 사람들은 서로 전화를 걸거나 받습니다. 손전화를 꺼 달라는 말을 해도 듣지 않으며, 그리 안 바쁜 전화를 옆사람을 살피지 않고 마음껏 걸거나 받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데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른이 무척 많습니다. 버스역은 맞이방이나 바깥이나 담배를 태우면 안 되는 곳이라는 알림글이 붙지만, 버스를 모는 일꾼이든 버스를 타는 손님이든 버젓이 담배를 태웁니다. 버스 타는 바깥에서 담배를 태워도 맞이방으로 담배내음이 스며드니까, 어디에서 담배를 태우든, 담배 안 태우는 사람한테나 아이들한테나 담배내음이 고스란히 퍼져요.
적잖은 어른들은 길거리에서고 집에서고 막말이나 거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옆에 아이들이 지나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 어른들은 ‘대통령이 지니가니’까, ‘국회의원이 지나가니’까, ‘병원장이 지나가니’까, ‘교수님이 지나가니’까, ‘회사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지나가니’까, ‘시장님이나 군수님이 지나가니’까,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한다든지 고개를 꺾는다든지 해요. 군대에서는 ‘고참이나 간부가 지나가니’까 거수경례를 붙이는데다가 차렷으로 뻣뻣하게 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어른들 모습을 곁에서 지켜봅니다. 하나하나 배웁니다. 궂은 모습이든 못난 모습이든 모조리 배웁니다.
어른들 모습을 고스란히 따르는 아이들이지, 어른들 모습을 안 따르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청소년범죄란 따로 없이 모두 어른범죄입니다. 어른들이 범죄를 저지르니 아이들이 범죄를 저질러요. 어른들부터 스스로 착하고 아름다이 살아가면, 푸름이나 어린이 모두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매무새만 바라보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누리를 이룰 수 있어요.
.. 저는 사람들에게 멋있고 근사한 사진을 찍는 방법, 이른바 예술을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고, 그들이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 예술 같은 것 해서 뭐 하시겠습니까? 사진 잘 찍어서 뭐 하시겠습니까? 주변 사람에게서 부러움을 사고, 공모전에서 상 받으시려고요? 좋습니다. 그렇게 부러움을 사고 상을 받아서 뭐 하시겠습니까 … 우리 나라는 올림픽 배드민턴 경기에서 금메달을 못 따면 실망하는 배드민턴 강국이지만, 정작 동네에는 맘 놓고 배드민턴을 칠 장소조차 없는 나라입니다 .. (11, 12, 130쪽)
연극을 하는 자리라든지, 노래를 부르거나 어떤 강연을 하는 자리라든지, 적잖은 사람들이 불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자리를 살피면, 벽에 ‘불 터뜨리며 사진 찍지 말라’는 알림글이 붙습니다. 참 많은 이들은 이런 알림글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런 글이 붙어도 안 읽을 테며 못 본 척할 테지요. 입으로 ‘불 터뜨리며 사진 찍지 말라’고 하거나 ‘무대에 올라와서 사진 찍지 말라’고 하더라도 이런 말을 모두 어길 테지요.
손전화 기계로 찍는 사진이든, 시커멓고 커다란 기계로 찍는 사진이든, 사진매무새가 아름답거나 반듯하거나 정갈하거나 얌전한 사람이 뜻밖에 아주 적습니다. 사진을 찍겠다며 먼저 말하고 찍는 사람 드물고, 사진 찍지 말아 달라고 할 적에 안 찍는 사람 드물며, 사진부터 먼저 찍고 보는 사람더러 그 사진 지우라고 할 적에 지우는 사람 드뭅니다.
그러나 어쩌는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엉터리로 찍는 사람은 사진매무새뿐 아니라 삶매무새 또한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에 삶매무새를 곱게 배운 적 없으니, 사진을 찍을 때조차 고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정갈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보거나 배우지 못했으니, 사진을 찍건 무엇을 하건 정갈한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을 펼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 자동차 문화가 없는 우리의 삶은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고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 이혼, 파혼, 폭행, 성폭행, 열애, 구속, 소송, 불륜, 간통 등등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면 단신으로 처리해도 될 만한 내용들을, 스포츠신문에서는 말 그대로 대문짝만 하게 실어놓습니다 … 우리는 너무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사진으로 찍어도 되는 것, 사진으로 찍으면 안 되는 것, 사진으로 찍을 필요가 없는 것, 이런 것들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있는 방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고 들어갑니다. 노크를 하는 이유는 그 사람 고유의 공간(세계)에 들어가겠다는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 (32, 43, 95, 142쪽)
얼마 앞서 어느 행사장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행사장에 마침 사진 찍을 사람이 없다며, 사진 찍어 달라는 말씀을 듣고는, 어렵게 틈을 마련해 찾아갑니다. 행사를 꾀하는 분은 저더러 이런저런 말씀을 들려줍니다. 강연하시는 분 모습은 처음 이야기를 꺼낼 때 한두 장만 찍고 더는 찍지 말라 하시고, 무대에 올라가서 찍지 말며, 처음 한두 장만 찍은 다음에는 강연장 밖으로 나오라고 얘기합니다. 사진기 단추 누르는 소리 때문에 강연 흐름을 깰 수 있으니, 강연장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행사장 자원봉사자 모습을 많이 찍어 달라고 얘기합니다.
얘기를 들으며 그러마 하면서도 알쏭달쏭합니다. 행사장에서 대수로이 여기며 남길 사진이라면 ‘행사에서 알맹이가 될 강연하는 분 모습’일 텐데, 이분은 한두 장만 찍으면 그만이라 하니까요. 그러면서 자원봉사자 모습은 많이 찍어 달라 하니까요. 자원봉사자 모습을 찍어야 한다면 요새 누구나 갖고 다니는 손전화이든 스마트폰이든, 이런 사진기로 찍어도 넉넉하고, 이런 사진기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돼요. 왜,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곧장 인터넷에 띄울 수도 있잖아요.
바야흐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행사장에 사람들이 가득 모입니다. 곳곳에 ‘강연장 안에서는 사진 찍지 마세요’ 하는 알림글이 붙고,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강연장 안에서는 사진 찍지 마세요’라 적힌 알림팻말 들고 서서 지켜보는데, 참으로 많은 손님들이 불까지 펑펑 터뜨리며 사진을 끝없이 찍습니다. 한둘 아닌 수십 사람이 곳곳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자원봉사자들이 어쩌지 못하고 두 손을 드는 듯합니다. 게다가 사진기 있는 여러 자원봉사자는 무대 안팎을 거침없이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혼자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할 바에는 나를 왜 불렀지. 나한테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한국에서만 보는 사진문화인가. 한국사람은 말을 말로 해서는 아무도 안 들을까. 한국사람은 손에 사진기를 쥐면 저마다 ‘난 이제 하나도 두렵지 않아’ 하고 생각하는가.’
.. 놀란 여가수는 그 학생을 붙잡아 가볍게 타이르고 나서, 그런 사진을 왜 찍었냐고 물어 봤답니다. 그때 여학생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냥…….’ 우리는 이 ‘그냥’이라는, 별 의미도 없이 자주 사용하는 부사가 가끔은 아주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너 사람 왜 죽였어!’ ‘그냥…….’ ‘너 왜 주차장에 있는 차에 불 질렀어!’ ‘그냥…….’ 그냥, 결국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 우리에게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기보다 ‘정보의 쓰레기통’ ‘포르노의 바다’에 가깝습니다 .. (84∼85, 106쪽)
사진은 삶을 이야기합니다. 종이에 담긴 사진이든 디지털파일에 담긴 사진이든, 모두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삶을 이야기하고, 사진에 찍힌 사람 삶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얼크러진 삶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을 이야기하며, 서로서로 바라보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진은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을 찍는 매무새는 여느 때에 ‘사람들과 마주하는 매무새’입니다. 사진을 찍는 매무새는 여느 때에 ‘사람들과 말을 섞는 매무새’입니다. 사진을 찍는 매무새는 여느 때에 ‘아이들을 돌보는 매무새’입니다.
이때와 저때가 다르지 않아요. 이 사람한테 하는 몸짓과 저 사람한테 하는 몸짓이 다르지 않아요. 내 아이한테서 빛줄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둘레 다른 사람한테서도 빛줄기를 느끼지 못해요. 내 동무나 스승이나 이웃한테서 아름다움을 못 보는 사람은 낯설다 하는 다른 사람한테서도 아름다움을 못 보고 말아요.
행사장에서 엉터리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따지기 앞서, 여느 자리 여느 삶자락을 엉터리로 일구는 모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진기만 쥐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간판이나 탈을 쓰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느 삶이 그대로 다른 자리로 스며들고, 여느 삶이 고스란히 모든 곳으로 퍼져요.
괴롭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사진기만 쥐면 괴로움과 힘듦을 싹 털고는 마치 새 사람이라도 되는 듯하다는 누군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슬프거나 아픈 일이 있어도 사진기를 쥐면 슬픔도 아픔도 싹 잊고는 마치 딴 사람이라도 되는 듯하다는 누군가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진을 찍어도 사진마다 어딘가에 괴로움이 깃들어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사진마다 어느 구석에 슬픔이 감돌아요. 사진은 삶을 이야기하거든요.
.. 문화적인 사진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눈을 청소해야 합니다. 그것은 항상 좋은 것을 보는 일입니다 … 예술가는 규칙을 벗어나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만의 또 다른 규칙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막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 착각합니다 … 카메라는 사진이라는 장르의 예술을 만들어 내기 위한 도구이고, 또 그 대부분을 카메라가 대신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도 자신이 갖고 있는 카메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 (134, 171, 176, 188쪽)
사진을 찍기 앞서 삶을 누려야 합니다. 사진을 배우기 앞서 삶을 보아야 합니다. 사진을 하기 앞서 삶을 빚어야 합니다. 사진을 즐기기 앞서 삶을 즐겨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대중가수나 연예인이나 영화배우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가다듬고 갈고닦으며 빚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멋진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지 않아요. 여느 날 여느 자리에서 스스로 아름다이 삶을 누리면서 빚을 때에, 비로소 알맞춤한 어느 때에 스스로 ‘아버지’나 ‘어머니’, 곧 ‘어버이’요 ‘어른’이 돼요.
밥그릇 많이 비워 나이를 먹는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이지, 이들을 ‘어른’이라 일컬을 수 없어요. 참말 어른은 어른스러운 사람이 어른입니다. 참말 어린이는 어린 사람이 어린이입니다.
사진을 하고 싶을 때에는 ‘사진을 할’ 노릇입니다. 사진은 사진이지, 예술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일 뿐, 정치도 교육도 경제도 지식활동도 무엇도 아닙니다.
놀이는 놀이입니다. 소꿉놀이는 소꿉놀이입니다. 숨바꼭질은 숨바꼭질입니다. 소꿉놀이나 숨바꼭질이 어떤 ‘창의력 활동’이 되지 않습니다. ‘방과후 활동’도 ‘체험학습’도 아니에요. 놀이는 그저 놀이예요.
공부는 공부입니다. 대학입시를 노리는 시험문제 달달 외우기가 공부일 수 없습니다. 공부란, 저마다 마음을 닦거나 다스리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찾으려는 즐거운 길입니다. 곧, 사진이라 한다면, 말 그대로 사진을 하니까 사진입니다. 사진찍기를 즐기고 사진읽기를 즐기는 삶이 바로 사진입니다. 사진을 즐겁게 찍고, 사진을 즐겁게 읽는 사람이 바로 사진이에요.
어떤 사진상을 마련해서 누군가한테 1등이라는 숫자를 붙이는 일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진학과를 마련해서 누군가한테 이런 이론 저런 학설 그런 기술을 알려준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이 되자면 삶을 누려야 합니다. 삶을 말하는 사진입니다. 삶을 읽는 사진입니다. 삶을 나누는 사진입니다.
.. 그들은 항상 자신의 삶에 성실하고 충실했습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놀라운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인간 삶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이미 예술이었던 것입니다 … 카메라 자체를 좋아해 골동품 시장을 돌아다니며 앤티크 카메라나 명품 카메라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면, 카메라의 기능에 충실해야 합니다 .. (180, 190쪽)
정한조 님이 쓴 《대한민국 사진공화국》(시지락,2005)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는 사진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도록 그야말로 사진찍기가 어디에서나 아무렇게나 이루어집니다. 한국처럼 여느 사람들이 값진 사진장비 많이 갖춘 나라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즐기려는 사진보다는 남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사진이 매우 흔합니다. 기쁘게 나누려는 사진보다는 동무 위에 올라서려는 사진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사진보다는 어떤 계급이나 신분이나 권위나 직위나 이름값이나 밥벌이로 하는 사진이 지나치게 판칩니다.
막상 사진은 없는 사진나라 대한민국이라 할 만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막상 삶은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 할 만합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기에 스스로 사진을 못 짓습니다. 스스로 삶을 못 누리니까 스스로 사진을 못 누려요.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스스로 사진을 사랑하지 못해요.
.. 기술에 대한 고정된 지식은 고정된 예술을 만듭니다 … ‘사진은 고정된 예술이 아니라 흐르는 예술’이기 때문에 사진을 잘 찍으려면, 그 흐름을 잡기 위해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 (195, 198쪽)
나는 따로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 모든 수업을 부전공 과목으로 두 학기에 걸쳐 들을 적에 한 학기 동안 보도사진을 배웠는데, 이때에 신문기자로 사진을 찍고 읽는 길을 배웠으나, 이마저도 아주 자잘한 이론과 실기를 배웠지 ‘사진을 배우’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삶을 이야기하는 만큼 사진을 배운다 할 적에는 나 스스로 내 삶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며 스스로 삶과 사진을 배우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사진기 다루는 매무새는 ‘사진기를 사면 곁달리는 두툼한 길잡이책’을 읽으며 혼자서 배웁니다. 길잡이책에도 ‘사진을 찍을 때에 어떻게 하라’ 하는 이야기가 실립니다. 길잡이책만 읽더라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찍지 말라’ 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초상권이나 저작권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길잡이책에 찬찬히 나와요.
그렇지만, 이런 대목은 굳이 어떤 책을 안 읽더라도 스스로 깨우칠 대목입니다. 나는 누가 내 삶을 마구 파고들어 사진으로 찍으려 할 적에 달갑지 않습니다. 내 삶으로 스며드는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면서 찍는 사진이랑, 내 삶을 하나도 모르는 채 그저 ‘그림이 되니’까 ‘자료가 되니’까 ‘언젠가 써먹을 수 있으니’까 무턱대고 찍는 사진이랑 아주 달라요.
나를 만나지도 않은 주제에 내 이야기를 뜬소문처럼 퍼뜨리는 누군가 있어요. 내 이름과 내 삶을 함부로 깎아내리면서 헐뜯는 누군가 있어요. 이들은 이녁 삶부터 엉터리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사진을 찍을 적에도 엉터리가 되고 맙니다. 나하고 멀리 떨어진 데에서 사느라 거의 못 만나는 동무인데, 오랜만에 만나거나 한참만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서로 마음이 맞는 누군가 있어요. 이들은 이녁 삶부터 예쁩니다. 그래서 이들이 사진을 찍을 적에도 예쁩니다. 마음을 읽고 삶을 읽으며 사랑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예뻐요. 마음을 안 읽고 삶을 안 읽으며 사랑을 안 읽으려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볼썽사납고요.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들을 사람이 있겠지요. 이 글을 쓰는 ‘최종규’라 하는 한 사람 아닌, 이를테면 정치꾼 박근혜 님이나 소설쟁이 이외수 님을 생각해 보면 돼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이들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 보았거나, 이들하고 여러 날 지내면서 삶을 누려 보았거나, 이들하고 함께 일한 적 있다거나, 이러저러하다 하더라도 이들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서로 마음을 열어 삶을 나누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안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박근혜라는 분이나 이외수라는 분을 말하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축구선수 박지성이나 야구선수 이승엽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사람들이 ‘아는’ 대목은 무엇일까요. 이들 운동선수 ‘삶을 아는’ 사람은 있기나 할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랑 언론매체에 실리는 모습 말고, 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즐기며 어떤 삶을 누리는가를 올바르게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 정말 남는 것이 사진밖에 없다면 우리의 삶은 참 서글픈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각 그 자체로서 하나의 ‘역사’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몸동작에, 말투에, 그리고 먹고, 입고, 사는 것에 그 사람이 지나온 모든 것이 다 배어 있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그리고 남는 것은 지금 서 있는 ‘나 자신’입니다 … 사진을 찍는 것과 사진을 보는 것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시각 예술 활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 내가 이렇게 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내가 바로 사진인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다면 모든 것은 남아 있습니다 .. (204, 206, 212쪽)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다른 사람 모습’을 찍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비친 ‘내 모습’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었는데 ‘내 사진이 영 볼 만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당신 삶부터 당신 스스로 느끼기에 영 볼 만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진장비를 쓰더라도 사진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겉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대서 사진이 볼 만해지지 않아요. 겉만 그럴싸한 사진이란 ‘겉만 그럴싸한 당신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거든요.
삶을 즐겁게 누리는 사람은 사진을 찍어도 ‘서로서로 즐겁게 누릴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을 사랑스레 나누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적에 ‘다 함께 사랑스레 나눌 이야기’를 빚습니다.
사진기만 손에 쥔대서 사진솜씨가 늘지 않습니다. 사진기 단추를 수없이 누른대서 사진재주가 늘지 않습니다. 내 삶부터 찬찬히 돌아보셔요. 내 삶자리부터 가만히 느끼셔요. 내 삶말을 스스로 들어 보셔요. 내 삶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내 사진사랑이 나아갈 길을 즐거이 열어 보셔요. 4345.1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