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91 : 허물을 쓰는 책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이 일군 책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를 읽으면 첫머리에 “도서관 건축을 먼저 읽어냈다. 그런데, 그렇게 도서관 탐방을 하다 보니, 탐방 횟수가 더해질수록 점점 막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건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도서관의 장점보다는 허물을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게 될 것 같았다(13쪽).”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건축일을 하는 두 사람이 도서관을 즐겁게 찾아다니다가 문득 ‘도서관 나들이’를 글로 쓰면 좋겠다고 여겨 새삼스레 도서관을 바라보노라니 ‘건축일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허물’이 너무 많아, 자칫 허물만 잔뜩 늘어놓는 글이 되겠다고 느꼈다 합니다.


  건축으로 바라보는 자리뿐 아니라, 언론으로 바라보는 자리라든지, 정치로 바라보는 자리라든지, 교육이나 문화나 예술로 바라보는 자리라든지, 막상 ‘옳고 바르며 아름다운가’ 하는 잣대를 놓고 바라본다면, 어디에서건 허물이 잔뜩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건축이든 언론이든 정치이든 교육이든 허물이 참으로 많아요. 어느 곳에서건 줄세우기가 이루어집니다. 교육보다 입시지옥으로 들끓는데,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는 아이와 어버이조차 스스로 입시지옥으로 뛰어들 뿐,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벗어나거나 이를 뜯어고치려고 힘쓰지 못해요.


  왜 이렇게 모두들 악다구니처럼 엉겨붙거나 다툴까요. 왜 이렇게 모두들 서로를 밟고 올라서려고 용을 쓸까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 나날일 텐데요. 서로 믿고 기대며 어깨동무할 때에 빛나는 삶일 텐데요.


  이시카와 다쓰조 님이 쓴 《인간의 벽》(양철북,2012) 셋째 권을 보면 “문부성이 요구하는 교육과정은 획일적이다. 아이들마다 다른 성격을 무시하면 교육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407쪽).”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1950∼60년대 일본 교육밭 이야기인데, 한국 교육밭을 놓고 본다면 2010년대에도 이 같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도, 중·고등학교도 몽땅 ‘줄세우기(획일)’예요.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줄세우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모두 ‘대학바라기’를 놓고 줄세우기를 시켜요. 더 빨리 영어를 가르치고, 더 많은 교과서 지식을 끝없는 시험으로 달달 외우도록 시켜요. 아이들한테 삶도 사랑도 꿈도 가르치지 않아요. 들꽃을 따사로이 바라보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흙땅에서 뒹굴며 뛰놀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하늘을 누리고 냇물을 즐기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하나하나 따지면 서글픈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온통 허물을 까밝히는 글이 나올 만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글프거나 허물을 까밝혀야 할까 궁금해요. 나부터 스스로 사랑스러운 길을 찾고, 나부터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누리며, 나부터 스스로 어여쁜 이야기를 일구면 될 노릇이 아닌가 싶어요. 도서관 나들이를 할 적에는 도서관 책시렁에 꽂힌 책을 즐기면 되듯, 한국 교육밭이 엉망진창이라면 열 걸음 백 걸음 멀찍이 물러서거나 아예 발을 안 담그면서 시골마을에서 우리 아이들과 호젓하게 삶을 누리면 돼요. 사랑스레 뛰놀며 힘차게 노래할 예쁜 삶을 꽃피우면 돼요. 허물을 까밝히며 쓰는 글도 있어야 할는지 모르지만, 이보다는 사랑을 길어올리는 글부터 즐거이 써서 나누어야 한다고 느껴요. (4345.1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책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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