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1.17.
 : 찬바람 싱싱 자전거

 


- 늦가을 찬바람이 싱싱 분다. 그야말로 늦가을이로구나 싶다. 인천에서 살 적에는 이런 바람을 보지 못했고,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살 적에도 이런 바람을 만나지 못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은 바다와 가깝다. 저 먼 태평양부터 부는 바람이 맨 먼저 닿는다 할 텐데, 겨울 추위가 다가오니 겨울나기를 슬기롭게 하라는 바람이지 싶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될 때부터는 바람이 조용하고, 거센 비바람이 올 때를 빼고는 이른가을까지 바람이 거의 없다. 이동안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기에 더없이 좋다. 그렇다고 찬바람 싱싱 부는 철에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안 하지는 않는다. 이제 아이들도 나도 찬바람 싱싱 맞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 누군가 나한테 선물로 준 아주 두꺼운 겉옷을 ‘자전거 수레 덮개’처럼 쓰기로 한다. 나로서는 너무 두꺼운 겉옷이라 입을 일이 없는데, 아이들더러 덮으라 하기에 걸맞구나 싶다. 큰 가방을 짊어지고 사진기를 손에 쥐며 자전거를 타기도 하는 사람한테는 두꺼운 겉옷이 아주 거추장스럽다. 얇은 옷을 여러 벌 껴입기만 할 뿐, 두꺼운 옷은 입을 수 없다. 두꺼운 옷을 입으면 따뜻하다지만 몸이 굼뜰밖에 없다. 늘 몸을 많이 움직이며 지내야 하니 나는 두꺼운 옷을 안 입는다. 더구나 자전거를 타니 한겨울에도 아주 춥지 않으면 반바지를 입는다.

 

- 면소재지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마을 들판은 모두 텅 비었다. 따지고 보면 ‘텅 비었다’는 말은 옳지 않다만, 들판을 가득 채우던 나락이 모두 사라졌다. 누렇게 익은 나락이 사라진 가을들인데, 나락이 있을 때와 엇비슷한 누런 빛이다. 나락을 베며 떨어진 볏줄기가 논마다 가득 깔렸기에 누런 빛이다. 일찌감치 나락을 벤 빈 들에는 푸른 빛이 감돈다. 마늘을 심은 데에서는 어느덧 푸른 싹이 돋고, 유채씨를 뿌린 데에서도 어느새 잘디잔 싹이 돋는다. 아직 누런 빈 논이 있으며, 차츰 푸릇푸릇하게 바뀌는 빈 논이 있다. 어느 논은 유채싹도 마늘싹도 아닌 여느 들풀 싹이 돋겠지. 사람들은 유채싹이 무럭무럭 자라서 노란 꽃송이를 터뜨리면 예쁘다고들 말하는데, 내가 보기로는 유채꽃이 한들거리는 모습만 예쁘지 않다. 여느 들풀이 서로 흐드러지면서 나부끼는 모습도 매우 예쁘다. 아니, 온갖 풀이 저마다 푸르게 돋아 활짝 웃는 들판이 가장 들다우면서 예쁘다고 느낀다.

 

- 숲은 숲이기에 숲이다. 이 나무를 심는다거나 저 나무를 심기에 예쁜 숲이 아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은 저마다 스스로 씨앗을 날려 스스로 돋는다. 어떤 사람이 따로 심는다고 해서 이 풀만 자란다거나 저 풀만 돋지 않는다. 풀은 스스로 숲을 이룬다. 나무 또한 스스로 숲을 이룬다. 어떤 사람이 따로 어린나무를 심거나 큰나무를 옮겨서 심기에 숲을 이루지 않는다. 풀도 나무도 저마다 스스로 씨앗을 틔워서 숲을 이룬다.

 

- 사람살이란 숲살이하고 서로 매한가지라고 느낀다. 저마다 스스로 일구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저마다 스스로 예쁘게 빛나는 삶이 아닐까. 나는 나대로 빛나는 예쁜 삶이요,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대로 빛나는 예쁜 삶일 테지.

 

-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수레 비닐덮개를 내린다. 아이들이 몹시 추워 하는구나 싶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며 살짝 나들이를 하니 좋아들 한다.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쐬면 또 재채기질을 할 테니까, 맛보기로만 가볍게 자전거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부랴부랴 저녁을 차려 먹인다. 만화영화 몇 가지 보여주고 두 아이를 재운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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