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돌보는 넋 (도서관일기 2012.11.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종이책은 몇 천 권이라느니 이만 권쯤 된다느니 하는 말이 있으나, 한 사람이 종이책을 몇 권 읽을 수 있는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스스로 읽은 책을 숫자로 세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숫자로 세는 뜻이 부질없을 만큼 책을 읽거나 안 읽는 사람이 많아요. 따지고 보면 그래요. 내 은행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1억이 있든 1억 100원이 있든 9999만 원이 있든 다르지 않습니다. 100만 원이 있든 99만 원이 있든 101만 원이 있든 다르지 않아요. 곧, 내 은행계좌에 1만 원이 있거나 100만 원이 있거나 1억 원이 있거나 똑같은 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라 할 텐데, 책을 한 권 읽었거나 열 권 읽었거나 백 권 읽었거나 천 권 읽었거나 만 권 읽었거나 늘 같아요.
돈을 더 많이 가졌대서 더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거나 즐거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대서 더 똑똑하거나 슬기롭거나 참답거나 착한 넋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벌어들인 돈을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이 나누거나 쓸 줄 아느냐에 따라 내 돈이 빛이 나거나 흐리멍덩해집니다. 스스로 읽은 책을 스스로 얼마나 삶으로 녹여서 하루하루 누리거나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 내 책읽기가 빛이 나거나 흐리멍덩해져요.
느즈막한 낮나절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에 나로섬에서 책손님이 찾아듭니다. 낮나절이라지만 하늘이 찌푸려 어둡습니다. 우리 서재도서관은 건물 반쪽만 덩그러니 빌렸기에 전기도 물도 쓸 수 없어, 이렇게 찌푸린 날에는 창가에 서도 책을 읽기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서관에 들어와 책시렁 사이를 누비면서 책마다 풍기는 ‘곰팡내’도 맡고, 곰팡내 사이사이 깃든 ‘책을 빚은 사람 넋’을 헤아리다 보면, 책으로 누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 많은 책’이 아니에요. 이 책들 가운데 내 삶을 내 손으로 열도록 이끌 ‘아름다운 책 하나’ 만날 수 있으면 돼요. 곧, 도서관에는 책이 아주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굳이 10만 권 100만 권 1000만 권을 갖추어야 하지 않아요. 다문 열 권이나 백 권을 갖춘 조그마한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이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 마음을 살찌우거나 북돋울 만한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걸맞아요.
으리으리하거나 번듯한 건물을 세워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사서자격증 가진 일꾼 여럿이 지켜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컴퓨터나 인터넷으로 책을 살펴보거나 찾아볼 수 있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도서관이 되려면 오직 한 가지를 갖추어야 해요. 책에 깃든 넋을 책손 누구라도 한 가지씩 받아먹으면서 책손 스스로 삶을 살찌우는 길을 즐거이 열도록 도을 수 있어야 도서관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책방이라 한다면,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책을 사서 읽을 책손’이 책 하나 장만하면서 스스로 삶길을 열도록 돕는 책을 갖춘 데가 ‘책방’이랄 수 있어요. 책을 돌보는 넋이란, 서재도서관을 열어 이웃들한테 이런 책 저런 책 마음껏 돌아보고 만지도록 하는 넋이란, 살가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서로 사랑을 일구는 징검다리가 되듯, 살가운 책 한 권으로 서로 꿈을 이루는 징검돌이 되고픈 빛 한 줄기에 있습니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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