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은 괜찮아요 창비시선 287
차창룡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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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말하기
[시를 말하는 시 5] 차창룡, 《고시원은 괜찮아요》

 


- 책이름 : 고시원은 괜찮아요
- 글 : 차창룡
- 펴낸곳 : 창비 (2008.4.21.)
- 책값 : 6000원

 


  시골에서는 깊은 밤에 마당으로 나오기만 해도 별이 우수수 쏟아집니다. 해가 진 이른저녁에 별빛이 하나둘 돋고, 밤이 깊을수록 별빛이 짙어집니다. 시골 고샅을 밝히는 등불이 없는 들판이나 멧자락으로 들어서면 별무리가 한껏 빛납니다. 마당에서도 미리내를 볼 수 있지만, 들판에서 보는 미리내는 더 또렷해요.


  시골에서는 아침마다 환하게 트는 동을 바라보며 고운 기운을 받아들입니다. 도시에서도 아침마다 동트는 하늘 바라볼 수 있다지만, 으레 이 건물에 막히고 저 아파트에 가려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는 지하철이 많이 뚫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가더라도 햇볕 한 줌 못 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터가 아예 땅밑이기도 하고, 높고 큰 건물 안쪽에 깃드느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햇살 한 조각 못 먹는 사람마저 있어요.


  사람은 햇볕을 못 먹어도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땅밑 깊은 감옥에 갇혀도 스무 해나 서른 해나 쉰 해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바람을 마실 수 있고 물을 먹을 수 있으면 어떻든 목숨을 이을 수 있어요.


  그런데 퍽 궁금해요. 목숨을 잇는대서 사람이라 할 만할까요. 목숨만 이으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


.. 토방 대신 마당을 방으로 사용하면, 밤마다 하늘이 더욱 가까이 내려온다. 은하수의 강물이 몸속으로 들어와 뱃속에서 꾸르륵거리고, 별빛은 살갗에 박혀 소름으로 돋는다 ..  (마당방)


  참으로 ‘살아가는구나’ 하고 느낄 때에 살아가는 하루라고 느껴요. 참으로 삶을 누릴 때에 삶을 누리는구나 싶어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에서는 삶도 꿈도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해요. 톱니바퀴 하나가 되어 늘 똑같이 움직이는 삶이라면 사랑도 믿음도 못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 중·고등학교 아이들 입에서 아주 거칠고 막되먹은 말씨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고작 열서넛이나 열대여섯밖에 안 된 푸른 아이들 입에서 어쩜 이렇게 슬프고 딱한 말씨가 튀어나올까요.


  곰곰이 살피면, 이제 서너 살이라 할 만한 아이들이 자동차 이름을 줄줄 욉니다. 텔레비전 우스갯소리를 따라서 하고, 온갖 대중노래 춤사위를 흉내냅니다. 어떤 아이는 너덧 살에 영어로 노래를 부릅니다.


  아하, 그렇지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그대로 아이들이 받아먹어요. 어른들이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그대로 아이들이 말해요.


  어른들을 보셔요. 거친 말을 얼마나 흔히 하나요. ㅆㅅㄲ라든지 ㄱㅅㄲ라든지, 또는 ㅆㅎ이라든지 ㅆㅂ이라든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아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지 않으면서 말해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말해요.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은 ‘듣는 이’ 아닌 ‘말하는 이’ 스스로를 깎아내려요. 막된 말을 뱉는 사람은 ‘듣는 쪽’ 아닌 ‘말하는 쪽’ 스스로를 갉아먹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갉아먹는 줄 모르면서 거친 말을 일삼아요.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벌써 어른인 척해요. 몸뚱이는 크지만 마음그릇은 아주 좁다란 채, 주먹질을 하고 욕질을 하며 발길질을 하고 말아요. 커다란 몸뚱이처럼 마음그릇을 키울 줄 모를 뿐 아니라, 아이들 둘레 어른들치고 ‘큰 어른 몸뚱이에 걸맞는 큰 마음그릇으로 사랑을 나누는’ 분이 몹시 적구나 싶어요.


..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 한때는 야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 한때는 갈 데가 없어 이곳에 왔으나 ..  (고시원에서)


  차창룡 님이 쓴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창비,2008)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시인 차창룡 님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내놓았을까요. 이 시집은 시인 차창룡 님 스스로 이녁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글줄이 될까요.


  차창룡 님이 써서 내놓는 싯말 하나는, 잡지에 실리거나 책에 실리는 글이 아닙니다. 차창룡 님이 써서 내놓는 싯말은 바로 ‘차창룡 님 삶을 스스로 노래하고 누리는 말’입니다. 남들 들으라고 쓰는 시란 없어요. 스스로 되읽으면서 삶을 되새기는 시일 뿐이에요.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스스로를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밝히는 싯말이고 시노래예요.


  어느 잡지나 기관지나 신문에서 시 한 줄 써 달라고 얘기했기에 써서 보내는 시란 없어요. 누군가 나한테 시를 써 달라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없으면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못 써요.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면, 누가 써 달라 하지 않아도 백 줄이나 천 줄이나 기쁘게 써요.


..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 하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뵙기 위한 것일 뿐 // 고층아파트도 있는데 왜? ..  (내가 옥탑방을 선택한 이유)


  차창룡 님이 옥탑방도 아파트도 도시도 서울도 아닌 데에서 살아가면 어떤 시를 썼을까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고시원에서 살아가려 하니까 《고시원은 괜찮아요》 같은 시를 쓸 테지요. 스스로 절집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절집은 괜찮아요” 하고 이름을 붙이면서 새로운 노랫가락을 빚겠지요. 숲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숲은 괜찮아요” 하는 이름과 함께 숲내음 숲바람 숲짐승 이야기가 얼크러진 새삼스러운 노랫자락을 펼칠 테고요.


  삶터가 삶을 빚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려 하는 마음이 삶터를 부릅니다. 스스로 어떤 사랑을 바라는가에 따라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스스로 어떤 꿈을 이루려는가에 따라 마을을 돌봅니다. 스스로 어떤 믿음을 펼치는가에 따라 나라를 세워요.


  이를테면, 아인슈타인 같은 이는 군대를 끔찍하게 미워했어요. 아니, 미워했다기보다 ‘지구별에 없어야 할 첫째 것으로 군대를 꼽았’어요. 좋고 싫고 아끼고 미워하고가 아니라, 군대란 지구별을 무너뜨리려고 어떤 검은 우두머리가 만들어 사람들을 바보처럼 꼬드기는 것이라고 여겼어요. 자,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편지를 쓰며 어떤 글로 이웃들과 사귀었을까요. 그리고, 시인 차창룡 님은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를 내놓으며 이녁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북돋았을까요.


.. 지하철은 참 신기하다. / 상계동에서 상도동까지, 지도로 보면 아득한데, 노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면, 지하를 헤매고 헤매어 건대입구역에서 지상으로 나와 잠시 한숨 돌리고, 다시 지하로 잠입, 나는 어느덧 상도동에 서 있다. 이처럼 신기한 두더지작전을 맨 처음 시도한 사람은 상상력이 참 풍부한 사람이다. 어떻게 우리이 발밑에 길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  (지하철은 참 신기하다)


  시란, 삶입니다. 시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시읽기란, 삶읽기입니다. 글도 삶이요, 글쓰기도 삶쓰기입니다. 사진찍기란 삶찍기요, 사진읽기 또한 삶읽기입니다. 그림그리기일 때에도 삶그리기입니다. 그림보기 또한 삶보기예요. 노래부르기란 삶부르기입니다. 노래듣기란 삶듣기예요.


  모두 삶입니다. 삶 아닌 것 하나 없습니다. 스스로 바라는 꿈이 시와 글과 사진과 그림과 노래에 실립니다. 스스로 되려는 몸짓이 시와 글과 사진과 그림과 노래에 어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내가 쓰는 시’가 달라져요. 어떻게 살고 싶나에 따라 ‘내가 읽는 시’가 달라져요.


  할 말을 쓰는 시입니다만, 할 말이란 살아가고픈 모습입니다. 살아가고픈 모습을 말로 빚으면서 시가 태어납니다.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 시 한 줄로 드러나고, 내가 사랑하는 모습이 시 두 줄로 나타나며, 내가 살아가는 오늘 모습이 곧바로 시로 그려져요.


  꿈을 쓰면서 시예요. 사랑을 쓰면서 시예요. 삶을 쓰면서 시가 될 테지요. 꿈이 있는 사람은 글로도 시를 쓰고 마음으로도 시를 써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글 아닌 노래로도 시를 써요. 삶이 있는 사람은 굳이 글을 안 쓰더라도 눈빛 하나로 아리땁게 무지개빛 시를 쓰고 미리내빛 시를 써요.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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