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 사라진 사진들

 


  디지털파일로 찍은 사진이 사라집니다. 틀림없이 즐겁게 찍은 사진인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메모리카드가 잘못되었나? 아니면 메모리카드에 담긴 사진을 셈틀로 옮기지 않고 그만 메모리카드 씻기(포맷)를 하는 바람에 봄눈 녹듯 아무런 자취를 안 남기고 사라졌나?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사라집니다. 파노라마사진기를 즐거이 장만해서 낑낑거리고 들고 다니며 우리 아이들이며 우리 마을이며 신나게 찍었는데, 아무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 필름을 거꾸로 끼웠나? 빛을 제대로 못 맞추었나? 때로는 현상소에서 깜빡 하고 한 통쯤 잃어버렸나?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언가 찍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 사진을 찾아보면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불쑥 어느 방(폴더)에서 사진이 ‘나 여기 있네!’ 하고 나타날는지 모릅니다. 현상한 필름이 어느 책더미나 짐 사이에 찡긴 채 몇 해를 묵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여기 있었는데 몰랐니?’ 하고 고개를 내민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찍든 저렇게 찍든 종이에 앉히지 않으면 내 앞에서 안 보이는 사진일까 하고 헤아려 보곤 합니다. 종이에 앉힌 사진을 벽에 붙이고는 날마다 곰곰이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노릇 아닌가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런데, 사진기 단추를 눌러야 사진이 ‘태어난다’고 할까요. 사진기 단추를 누르지 않고도 사진을 ‘빚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맨 먼저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눈을 거쳐 내 마음에 담으며, 내 눈을 거쳐 내 마음에 담은 모습을 내 가슴속 깊은 데에서 샘솟는 사랑으로 살며시 어루만질 때에, 비로소 ‘사진찍기’를 이루지 않나 싶어요. 사랑 어린 마음으로 찬찬히 아로새기는 사진찍기를 하고 나서야, 시나브로 ‘디지털파일이나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사진기를 써서’ 어떤 이야기를 꾸릴 수 있지 싶어요.


  마음속에 있으면 언제나 사진이요, 마음속에 없으면 내 눈앞에 ‘종이에 앉힌 어떤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사진이라 할 수 없는 셈 아닐까 싶어요.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에는 제아무리 이름난 아무개가 찍어 길거리에 큼지막하게 내걸었어도 내 눈에는 안 보여요. 그저 스쳐 지나가며 느끼지도 못해요. 마음에 와닿을 때에는 환하게 떠올리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꽃 피우는 밑바탕이 되어 주는구나 싶어요.


  삶이 있으며 사진이 있고, 스스로 삶을 잃으며 사진을 잃어요. 마음이 있으며 사진이 있고, 스스로 마음을 놓거나 버리면서 사진 또한 놓거나 버리고 말아요. (4345.1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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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1-0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지털 사진의 경우 한 3개쯤 백업을 해놔야 안심이 되는데 요즘은 워낙 사진들 파일이 커서 백업 기기 사는 것도 만만치 않더군요ㅡ.ㅡ

숲노래 2012-11-10 07: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외장하드가 예전 생각하면 참 싼값인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