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27
이선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꿈을 보듬고 믿음을 아끼는 삶
[시를 노래하는 시 34] 이선관,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 책이름 :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 글 : 이선관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00.8.10.)
- 책값 : 5000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아름다이 빛날까요. 나는 어떤 손길로 누구를 아끼면서 살아갈 때에 사랑스레 웃을까요.


  바람이 불어 마당에 놓인 것들을 건드립니다. 바람 따라 어느 것은 소리를 내며 뒹굴고, 어느 것은 이웃집 논 한복판으로 날아갑니다. 어느 것은 새삼스레 우리 집 마당으로 날아들고, 어느 것은 쿵 소리 내며 쓰러집니다.


  바람이 모질게 불던 어느 날에는 팔백 살 넘게 먹은 느티나무 굵은 가지를 부러뜨립니다. 백 살쯤 먹은 나뭇가지가 부러졌을까요. 사람들은 부러진 굵은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낄까요. 아니, 팔백 살 넘은 느티나무 굵은 가지가 부러진 줄 느끼거나 알아채거나 바라보려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스스로 백 살도 못 산다는 듯 여기는 사람들이 천 살이나 이천 살을 너끈히 살아가는 나무를 길거리에 심는다고 애씁니다. 스스로 백 살 겨우 살아내며 좋아라 하는 사람들이 천 살이나 이천 살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을 비싼값에 사고팔기도 하며, 함부로 가지치기를 하기도 할 뿐더러, 자동차 끔찍히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 아무렇게나 심습니다.


  나무는 그늘을 드리웁니다. 나무는 씨앗을 떨굽니다. 나무는 새들 보금자리가 되고, 벌레들 쉼터가 됩니다. 나무는 짐승들한테건 사람들한테건 깊고 너른 넋을 나누어 줍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나무가 나무답게 숨을 잇지 못합니다. 도시에 심긴 나무는 재개발을 할 적마다 파헤쳐지거나 목아지가 뎅겅 잘립니다. 도시사람은 나무를 나무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직 돈값으로 헤아립니다.


.. 신비로운 생명체인 건강한 아이의 / 출생신고가 없다 하네 ..  (체르노빌 2)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은 도시 어른들한테서 어떤 몸가짐을 물려받을까 궁금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린 채 서로 어깨동무조차 못하는 도시 어른들을 바라보는 도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만한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삶을 배울 때에 아름다울까요. 아이들은 사랑을 배울 때에 예쁠까요. 아이들은 꿈을 배울 때에 빛날까요. 아니, 아이들은 더 일찍 영어를 배우거나 더 일찍 대입시험공부를 해야 ‘내 아이’라 하는 ‘내 것’이 되는가요.


  나무는 사람이 애써 심지 않아도 스스로 씨앗을 내어 숲을 이룹니다. 사람은 아무것 할 몫이 없습니다. 사람은 나무 둘레에서 나무를 따사로이 쓰다듬고 해맑게 바라보면 됩니다. 나무는 스스로 퍼집니다. 풀도 스스로 퍼집니다. ‘잡초밭’이란 없습니다. 그예 ‘풀밭’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이 풀 저 풀 아무렇게나 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머잖아 온갖 풀이 골고루 섞이며 숲으로 달라집니다. 나무씨앗 하나 풀밭에서 씩씩하게 자라 우람한 나무로 크면서 풀밭이 어여쁜 숲으로 거듭납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제아무리 바보스럽게 이 나라를 쳇바퀴처럼 만들어 스스로 톱니바퀴 구실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이 틈바구니에서 싱그러이 태어나 해맑은 눈빛이 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은 누구나 나무씨앗 한 알이니까요. 우거진 풀숲에서 천천히 줄기를 올리고 작은 잎을 틔우며 무럭무럭 자라날 나무씨앗 한 알이니까요.


.. 나라마다 무엇을 기리기 위하여 / 일 년 중 하루를 정한답니다 /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구촌을 위하여 / 걱정하고 사랑하며 생각하게 하는 날은 / 일 년 중 왜 이렇게 많은가요 / 가령 일 년 중 / 이월 이일은 세계습지의 날 / 삼월 이십이일은 물의 날 / 사월 이십이일은 지구의 날 / 오월 삼십일일은 바다의 날 / 유월 오일은 세계환경의 날 / 구월 십육일은 세계오존층의 날 ..  (꺼진 불도 다시 보자도 상기하자 육이오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 합니다. 아이들은 환한 앞날 열 빛줄기라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 모두 아이였어요. 푸르딩딩한 눈빛이 되거나 파리한 얼굴빛이 된 어른들 또한 모두 아이였어요. 곧, 누구나 하늘나라로 가야 할 넋이에요. 몸뚱이가 커진 어른이든, 서른 살 어른이든, 쉰 살 어른이든, 일흔 살 어른이든, 누구라도 하늘나라로 갈 만한 숨결이에요.


  여든 살 할머니가 예순 살 딸아들 바라보며 ‘아이’로 여겨요. 여든 살 할머니한테는 당신 딸아들 나이가 예순이 되어도 그저 ‘아이’입니다. 여든 살 할머니한테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아직 살아가시면, 여든 살 할머니 당신은 또 당신 어머니 앞에서 ‘아이’가 됩니다.


  나이가 몇 살이 되든 아이예요.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은 ‘아이’이면서 ‘어버이’일 뿐이에요. 아이로 살아가며 어버이로 살아가기도 해요. 아이다운 꿈과 넋을 건사하며 어버이다운 사랑과 얼을 헤아려요.


  그런데 왜 어른한테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을 안 할까요. 어른은 왜 하늘나라로 갈 만한 넋이 못 된다 할까요.


.. 정말로 소도 가는데 / 관료도 가고 기자도 가고 / 종교가도 가고 예술가도 가고 / 재벌도 가는데 / 정작 가야 할 사람은 가지 못하네 / 아무리 생각해도 / 백성의 정부가 맞는 말이지만 /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 반 년이 흘렀건만 / 정작 가야 할 사람들 / 이 땅의 백성은 가지 못하네 ..  (정말로 소도 가는데)


  아이가 아이다울 때에는 꿈이 푸릅니다. 어른이 어른다울 때에는 사랑이 따뜻합니다. 아이가 하늘나라에 가는 까닭은 꿈이 푸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하늘나라로 가는 까닭은 사랑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꿈을 안고 하늘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나누며 하늘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곧,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으며 차츰 어른이라는 새길로 나아갑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아이한테서는 꿈을 나누어 받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시나브로 꿈을 이루고 누리면서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저마다 가슴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하느님 넋을 알아봅니다.


  하느님은 저 먼 데에 있지 않아요. 하느님은 예배당 십자가나 그림이나 강단에 있지 않아요. 하느님은 성경책에도 있지 않고, 설교에도 있지 않아요. 하느님은 사람들 가슴속에 있어요. 누구나 가슴속에 하느님을 품으며 살아요. 다만,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낄 뿐이에요. 스스로 찾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을 뿐이에요.


.. 여보야 / 이불 같이 덮자 / 춥다 /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 따뜻한 솜이불처럼 / 왔으면 좋겠다 ..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내가 하느님이고 네가 하느님입니다. 내가 하늘과 같고 네가 하늘과 같습니다. 나를 아낄 때에 너를 아낍니다. 너를 사랑할 때에 나를 사랑합니다. 나한테 따순 말을 건네기에 너한테 따순 말 건네는 마음이 됩니다. 너한테 맑은 눈빛을 보내기에 나한테 맑은 눈빛을 보내며 마음을 읽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하는 까닭을 헤아려 봐요. 가는 말이 안 곱다면 오는 말이 안 고울 테지요. 왜냐하면, 내가 곧 하느님이기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안 고우면 ‘나 스스로 나한테 안 고운 말’을 한 셈이니, 다른 사람 입을 거쳐 나한테 돌아오는 말은 마땅히 안 고울밖에 없어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우면 ‘나 스스로 나한테 고운 말’을 한 터라, 다른 사람 입을 돌아 나한테 돌아오는 말은 살그마니 고울밖에 없어요.


  빛은 빛을 북돋우고 어둠은 어둠을 북돋웁니다. 삶은 삶을 부르고 죽음은 죽음을 불러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까닭은 삶을 생각하며 부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죽는 까닭은 죽음을 생각하며 부르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돈만 불러요. 오늘날 사람들은 돈만 부르기에 저마다 ‘돈 쳇바퀴’에 갇혀요. 모두들 돈만 부르니까 돈만 바라보고 돈만 생각하며 돈에 얽매인 채 살아가요. 돈을 부르기는 하지만 떼돈이 찾아오지는 않아요. 오늘날 사람들은 오직 돈 돈 돈 노래를 부르니까, 이래저래 돈을 버는 만큼 다시 돈을 쓰면서 돈에 얽매이는 하루가 돼요.


  나무를 불러 봐요. 내 삶에 나무 한 그루 놓아 봐요. 바람을 불러 봐요. 내 삶에 바람 한 자락 놓아 봐요. 풀 한 포기를 부르고, 꽃 한 송이를 불러 봐요. 햇살 한 가득 부르고, 구름 한 닢 불러 봐요. 개구리를 불러요. 메뚜기를 불러요. 노랑나비를 불러요. 까마중을 불러요. 예쁜 이웃 차근차근 떠올리며 가만히 불러요. 울긋불긋 가을날 빛내는 잎사귀를 불러요. 잎사귀 밑에 깃들어 겨울잠 자는 무당벌레를 불러요. 지렁이를 불러요. 참새와 제비를 불러요. 비둘기와 까마귀를 불러요. 모든 아름다운 동무와 이웃을 불러요. 내 가슴속 하느님을 살며시 불러요.


.. 임금이 있고 / 백성이 있는 게 아니라 / 분명 / 백성이 있고 / 임금이 있는데 / 백성들은 먹지 못하게 하면서 / 임금님의 수라상에만 올렸다는 /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고 / 그 임금은 임금이 아니라고 ..  (아이들에게 말해줘야 해요)


  꿈을 보듬고 믿음을 아끼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꿈을 보듬으며 하루가 즐겁고, 믿음을 아끼면서 언제나 홀가분합니다. 내 아이와 이웃 아이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요. 내 어버이와 이웃 어버이를 마주하면서 빙그레 웃어요. 나부터 나 스스로를 아끼고, 내 마음이 가장 환하도록 북돋아요. 세 치 혀에 어여쁜 말이 감돌도록 생각을 다스려요. 튼튼한 두 손으로 흙을 만지고 풀과 나무를 어루만져요. 씩씩한 두 다리로 들을 걷고 멧길을 올라요.


  바닷물에 발을 담가요. 냇물에 손을 담가요. 바닷물 내음을 들이켜요. 냇물 빛깔에 온몸을 맡겨요.

  수도물을 마실 까닭이 없어요. 냇물을 마실 우리 삶이에요. 수도물 놓느라 애먹지 말아요. 어디에나 싱그러이 냇물이 흘러야 해요. 달동네는 사라져야 해요. 달동네 있던 자리는 예전처럼 숲이 우거진 뒷멧자락이나 앞멧자락 되어야 해요. 달동네 살던 사람은 모두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요. 시골에서 조그마한 집에 조그마한 땅을 얻어 조그맣게 예쁜 살림 일구며 날마다 스스로 어엿하게 살아가요. 냇물 맑게 흐르는 시골마을에서 푸른 숲을 옆에 끼며 함께 살아가요.


  공장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공장은 무엇을 만드나요.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쓸 일이 있나요. 아이들 놀잇감은 나무와 돌로 스스로 지으면 돼요. 나무와 돌은 그저 이 모습 그대로 놀잇감이에요. 천기저귀로 아이들을 돌보면 되지요. 표백제와 형광물질로 허옇게 만든 휴지 아닌 냇물을 쓰면 되지요. 보드라운 나뭇잎으로 밑을 닦아요. 보드라운 풀잎을 냠냠 먹어요. 유기농이란 똥오줌 거름 내는 흙삶이에요. 흙한테서 얻은 먹을거리를 즐기며 흙이 기름질 수 있도록 똥오줌을 다시 흙한테 돌려주면 돼요.


  풀 먹는 짐승 모두 흙한테 똥오줌을 돌려줘요. 풀을 맛나게 먹은 다음 풀이 싱그러이 다시 잘 자라도록 똥오줌을 흙한테 예쁘게 돌려줘요.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지을 집과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람이 품을 꿈과 나눌 사랑은 무엇인가요.


.. 여태까지 준법정신이 지켜지지 않은 나라에서 / 늦게나마 준법정신을 지키겠다고 준법투쟁으로 / 나가겠다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나라와 정부 / 그리고 그 사람들이 국민인 우리들에게 / 막대한 손실을 준다고 비난하는 그들 속에서 / 나는 살고 있습니다 ..  (이상한 나라)


  이선관 님 시집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실천문학사,2000)를 읽습니다. 자그맣게 꾸려 자그맣게 엮은 싯말을 읽습니다. 자그마한 시집에는 이선관 님이 품은 꿈이 알알이 깃듭니다. 자그마한 싯말마다 이선관 님이 나누는 사랑이 새록새록 어립니다.


  즐거이 누리며 꿈입니다. 기쁘게 나누며 사랑입니다. 손길을 내밀어 꿈입니다. 어깨동무를 하며 사랑입니다.


.. 문학은 자기와 타인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 흙 묻은 얼굴은 흙 묻은 얼굴로 검정 묻은 얼굴은 검정 묻은 얼굴로 …… / 그대로 비춰주는 거짓없는 모습 그 모습이 문학이라고 / 또다시 나는 말하고 싶다 아니 노래하고 싶다 ..  (말하고 싶다 노래하고 싶다)


  이 나라 모든 공장이 뚝 하고 멈추는 꿈을 꾸곤 합니다. 이 나라 모든 공장이 하루아침에 몽땅 멈춘다면, 아마 수출이 0이 될는지 모릅니다. 수출이 0이 되면 이 나라 정부는 하루아침에 쫄딱 무너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나라 정부가 하루아침에 쫄딱 무너지기를 꿈꿉니다. 공무원도 교사도 몽땅 사라지기를 꿈꿉니다. 동사무소나 면사무소 공무원이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검사이든 경찰이든, 세무서 일꾼이든 이런저런 공공기관 연구원이든, 하루아침에 모조리 사라지기를 꿈꿉니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대형할인마트나 편의점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삶을 가꾸고 이녁 삶을 돌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스로 제 땅을 일구며 제 살붙이를 사랑할 노릇입니다.


  보육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아이들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어버이가 아이들과 하루 내내 함께 지내야 합니다. 아이들을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입시기계로 내모는 데에 아이들을 보내서 얼마나 망가뜨리려고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삶을 바라보며 배워야 합니다. 어버이 구실을 하는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서 꿈을 느끼며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 여보야 / 우리 얘기 좀 하자꾸나 / 우리가 얘기하기엔 통역이 필요없잖니 ..  (남남북녀)


  삶을 짓고 사랑을 나눌 사람이에요. 돈을 벌거나 아파트를 지을 사람이 아니에요. 삶을 일구고 사랑을 북돋울 사람이에요. 공무원이 되거나 회사원이 되어 자가용을 굴릴 사람이 아니에요.


  경제성장율은 0이면 됩니다. 국민소득은 0이면 됩니다. 웃음과 기쁨과 사랑이 가득하면 됩니다. 이야기와 꿈과 삶이 푸짐하면 됩니다.


  남녘과 북녘이 갈려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도록 내모는 이는 정부 공무원이나 재벌 우두머리가 아니에요. 바로 우리들이에요. 바로 우리 스스로 삶을 찾지 않고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기에, 남녘과 북녘이 갈릴 뿐 아니라, 모든 쳇바퀴와 수렁과 굴레와 톱니바퀴가 생겨나요. 흙을 아끼는 데에는 대학교 졸업장이 덧없어요. 나무를 아끼는 데에는 어떠한 자격증도 부질없어요. 사랑으로 심어 돌보는 먹을거리예요. 꿈으로 가꾸며 보듬는 보금자리예요.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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