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
[말사랑·글꽃·삶빛 31] 그림책은 어떻게 쓰는가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안 읽으며 아이들한테만 읽히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먼저 찬찬히 안 살피고 나서 아이들한테 쥐어 주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어느 그림책을 아이한테 내밀며 읽으라고 하더라도 어버이인 내가 먼저 그림책을 가만가만 읽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들 눈높이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그림책은 지식인이나 지성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울타리를 세우지 않습니다. 한글을 깨친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읽고 쉽게 생각하며 쉽게 삶으로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를 담아서 그림책 하나 태어납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다가, 책에 적힌 글월을 죽죽 긋고는 아래나 위에 다른 말을 적어 넣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한글을 깨쳐 스스로 읽을 적에 썩 안 좋다 싶은 글월이라면 죽죽 긋고 새 말을 적어 넣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온 다른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펼쳐 읽어 준다 할 적에 ‘책에 적힌 대로만 읽지 않기’를 바라며 죽죽 긋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림과 글이 어울리기도 하며, 글이 퍽 많이 실리기도 합니다. 그림책이 어떤 모양새로 태어나더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넣는 이들은 ‘말’을 나누려고 합니다. 생각을 말에 담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을 그리거나 쓰기 앞서, 이 그림책을 그리거나 쓰는 어른들은 여느 때에 스스로 생각하던 삶을 여느 때에 즐겁게 쓰던 말에 담아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그림책 《꽃섬》(웅진주니어,2012)을 읽다가 “도시는 빠르게 커지고 복잡해졌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같은 글월을 봅니다.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투이니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에도 이 같은 글월이 실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복잡(複雜)하다’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일이나 감정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로 풀이합니다. 한국말 ‘얽히다’를 가리키는 한자말 ‘복잡하다’요, 다른 한국말로 나타내자면 ‘어수선하다’나 ‘어지럽다’입니다. ‘점점(漸漸)’이란 또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보면, “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을 가리킨다 하는데, 국어사전 말풀이에 나오듯, 한국말은 ‘조금씩’입니다. 다른 한국말로 나타내자면 ‘차츰’이나 ‘자꾸’나 ‘꾸준히’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복잡하다’와 ‘점점’이라는 한자말도 쓰고, ‘어지럽다’와 ‘차츰’이라는 한국말도 씁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을 들을 때에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쓸 때에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그림책 《일 년은 열두 달》(시공주니어,2006)을 읽다가 “동장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소식을 전해 줄 거야” 같은 글월을 봅니다. 아이들 앞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이라 말하는 어른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으레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말합니다. ‘동장군(冬將軍)’도 이와 같은 흐름이에요. 아이들하고 나눌 그림책에 적어 넣을 낱말이라 한다면 ‘겨울장군’처럼 적을 수 있어요. “전(傳)해 줄거야” 같은 글월이라면 “알려주겠지”라든지 “들려줄 테지”처럼 손볼 수 있어요.
한 가지를 더 살핍니다. ‘봄소식(-消息)’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한자말 ‘소식’ 뜻풀이를 찾아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정을 알리는 말이나 글. ‘알림’으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소식’은 한국사람이 안 써야 알맞다 여기는 낱말입니다. 다만, 국어사전에서 ‘소식’ 같은 한자말을 찾아보는 어른은 거의 없어요.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한들 이러한 한자말을 씻거나 털려고 애쓰는 어른 또한 거의 없어요.
곰곰이 생각할 일입니다. 한자말 ‘소식’을 씻거나 털려 한다면, 어떤 한국말을 쓸 때에 알맞으면서 즐거울까요.
나는 아이들한테 ‘봄소식’ 같은 말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봄노래’라든지 ‘봄얘기’라든지 ‘봄바람’ 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겨울장군이 차츰 물러나면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노래를 부르겠지요. 봄얘기를 속삭이겠지요.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봄꿈을 꾸겠지요.
그림책 《엄마가 좋아》(한림출판사,1988)를 읽다가 “준비, 시작”이라는 글월을 보고 살며시 책을 덮습니다. 서너 살 어린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엄마가 좋아》인데, 일본사람이 쓴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일본말 “요이, 땅(ようい, どん)”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준비, 시작”으로 옮긴 셈이에요. 자, 생각해 봅니다. ‘준비(準備)’와 ‘시작(始作)’은 한국사람이 얼마나 쓸 만한 한자말일까요. 일본사람이 한자로 적은 낱말을 한국사람이 한글로 옮기면 그림책에든 소설책에든 쓸 만하다 여겨도 될는지요.
우리 집 아이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을 때에 즐거운가 하고 헤아리기 앞서, 나 스스로 퍽 어린 나날 어떤 말을 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1970∼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나와 동무들은 “요이, 땅”을 비롯해서 “준비, 시작”과 “준비, 출발”과 “준비, 탕”까지 갖가지 말을 썼어요. 이런 말을 써야 한다거나 저런 말은 안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 둘레 어른 가운데 우리들이 즐겁게 쓸 만한 말투와 낱말을 알려주는 어른도 없었어요. 이때에 이런 여러 가지 ‘일본말’과 ‘일본 말투’와 ‘일본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옮겨 적은 말투’ 말고,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쓰던 말투도 몇 가지 썼습니다. 이를테면, “자, 가자”라든지 “하나, 둘, 셋”이라든지 “자, 하자” 같은 말을 아울러 썼어요.
이제 그림책을 덮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더 깨끗하다 싶은 말이라든지, 더 아름답다 싶은 말이라든지, 따로 있을까 되새겨 봅니다. 말은 정갈하게 하더라도 삶이 정갈하지 못하거나 넋이 정갈하지 못하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삶과 넋을 어떤 말에 담아서 나타내는 셈일까 곱씹어 봅니다.
그림책을 쓰는 어른들은 아주 마땅히 어린이 눈높이를 살펴야 알맞습니다.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한 낱말을 고르고 어린이한테 걸맞을 말투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알아듣기만 한다면 어떤 낱말과 말투라도 다 쓸 만하지는 않겠지요. 아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낱말과 말투이면서, 어른 스스로 삶을 아끼고 생각을 살찌우는 낱말과 말투가 되어야겠지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사람이 러시아말을 흉내낼 까닭이 없어요. 네덜란드사람이 벨기에말을 따라할 까닭이 없어요. 베트남사람은 베트남말을 하면 돼요. 라오스사람은 라오스말을 해야지요. 중국사람은 중국말을 하고,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하면 됩니다. 곧,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할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그림책을 쓰는 어른들은 ‘무늬만 한글인 한국말’이 아니라 ‘알맹이가 알차고 어여쁘며 튼튼한 한국말’을 스스로 슬기롭게 찾으면서 갈고닦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