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40) 속 38 : 우리의 직관적인 앎 속으로
그런 연습들 덕분에 우리는 긴장을 풀고 우리 몸속으로, 우리의 직관적인 앎 속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르네 네스와 네 사람/이한중 옮김-산처럼 생각하라》(소동,2012) 172∼173쪽
“그런 연습(練習)들 덕분(德分)에”는 “그런 연습들 때문에”나 “그렇게 연습했기 때문에”나 “그렇게 해 봤기 때문에”나 “그렇게 해 봐서”로 다듬고, “긴장(緊張)을 풀고”는 “마음을 가볍게 하고”나 “마음을 조이지 않고”나 “홀가분하게”로 다듬습니다. 이제 “우리의 직관적(直觀的)인 앎”을 고쳐써야겠는데, ‘직관적’이 무엇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국어사전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먼저, ‘직관적’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을 뜻한다 합니다. 그런데 ‘판단(判斷)’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이라 하고, ‘인식(認識)’이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이라 하며, ‘판정(判定)’이란 “판별하여 결정함”이라 하고, ‘분별(分別)’이란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름”이라 하고, ‘판별(判別)’이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구별함”이라 하고, ‘구별(區別)’이란 “또는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갈라놓음”이라 합니다. 또, ‘추리(推理)’는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서 생각함”이라 하고, ‘사유(思惟)’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라 하고, ‘파악(把握)’은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본질을 확실하게 이해하여 앎”이라 하고, ‘이해(理解)’는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이라고 해요.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여러모로 돌림풀이로 나타나는데, 가만히 간추리면 ‘생각하다’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생각을 나누고, 생각을 가르며, 어림해 보다가는, 깨닫는 길로 간다, 하고 이야기하는구나 싶어요. ‘판단’이니 ‘판별’이니 ‘구별’이니 ‘판별’이니 ‘파악’이니 ‘추리’이니 하고, 다 다르다 싶은 한자말을 쓰지만, 어느 한자말이든 ‘생각’과 ‘바라보기’를 가리켜요. 곧, ‘직관적’이나 ‘직관’이란 “(곧)바로 바라보며 생각하거나 깨닫는” 무엇을 가리킬 때에 쓰는 한자말이요, 굳이 이러한 한자말을 쓰기보다는 가장 쉽고 또렷하게 적을 때에 한결 나아요. 이 흐름을 살피면서 “우리의 직관적인 앎 속으로”는 “우리가 바로보며 알아차리고”로 고쳐쓸 수 있어요. “서로에 대(對)한 신뢰(信賴) 속으로”는 “서로를 믿을”로 고쳐쓰면 될 테고요. 다만, 이렇게 고쳐쓸 수 있되 글흐름을 다시금 살피며 새롭게 적어야지 싶습니다.
우리의 직관적인 앎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우리들이 아는 것을 바로볼 수 있었다
→ 우리들이 무엇을 아는지 바로볼 수 있었다
→ 우리를 바로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서로를 믿을 수 있었다
→ 서로를 믿고 하나될 수 있었다
→ 서로를 믿으며 어우러질 수 있었다
보기글을 적은 분은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해 봤기’에 ‘마음을 가볍게 추스르’면서 ‘우리 몸을 스스로 올바로 바라보고 살피’면서 ‘우리가 아는 것을 올바로 깨닫고 살필’ 수 있는 한편, ‘서로가 서로를 믿고 즐거이 어우러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느낍니다.
마음을 꾸밈없이 나타내기를 빌어요. 참으로 내 마음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환하게 그리면서 글을 쓰기를 빌어요. (4345.10.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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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 봤기에 우리는 홀가분하게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바로볼 수 있고, 서로를 믿을 수 있었다
(최종규 . 2012)